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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며 임신중단권리 폐기해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같은 퇴보를 막기 위해, 한국에서도 '낙태죄' 폐지 후속 조치를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정 이후 3년, 길었던 공백의 시간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위티 활동가들과 함께 쓴 청소년에게 필요한 성교육의 요소들
 위티 활동가들과 함께 쓴 청소년에게 필요한 성교육의 요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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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하다'는 이유로 말해지지 않은 것들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교육을 하기로 결정했고, 교육을 위한 사전미팅을 진행했다. 미리 가져간 교육안 내용도 대체로 좋다고 하셨고, 화기애애하게 미팅이 끝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끝나기 직전에, 좀처럼 말이 없던 한 담당자가 나에게 요청했다. "좀 민감하지 않게, 부탁드려요."

그 담당자는 이것저것 말을 붙이며 이야기했지만, 결국 결론은 추후에 문제 생기지 않도록, 너무 '민감한' 교육은 삼가달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웃으며 잘 미팅을 끝냈지만, 이후 한동안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민감해지는 일이며, 민감해야만 인지할 수 있는 차별과 폭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민감한 주제'라는 이유로 청소년의 성과 재생산권리를 공론장에 호출하는 일을 아주 오랫동안 두려워해 왔다. '민감함'이라는 표현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대 속에서 소수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해나갈 것인지를 지금 당장 이야기할 필요 없다는 '변명'으로 쓰이곤 했다.  

성을 경험하는 청소년의 존재와 실천은 그렇게 지워져 갔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다른 의미에서 '민감한' 주제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다루기 위해서는 그들의 성을 금기시하고 삶의 결정할 권한을 박탈해온 사회 구조 전체를 짚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감하다'는 것은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말해져야 하는 이유다.

담당자가 지적한 것은 '청소년의 성'을 말하는 것에 대한 민감함인 동시에, '청소년에게' 성을 말하는 것에 대한 민감함이었을 것이다. 섹스 같은 주제는 '청소년'과의 대화 주제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에게 섹스를 '위험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 아닌 '일상적이고 즐거운 것'으로 말하는 건 아주 적절하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섹스는 일탈적이고, 음란하며, 대놓고 얘기할 수 없는 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적 주체로의 청소년은 일상과 분리되지 않는다. 성은 단순히 섹스를 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내가 내 몸을 인식하고 움직이고 감각하는 과정 전반과 연결되어 있다. 

스쿨미투 고발, 'n번방' 사건 등 청소년 대상 성폭력이 공론장에 오르며, 성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교육을 '폭력예방교육'으로만 인식한다. 청소년이 성폭력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성으로부터 차단해야 한다는 발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성폭력을 '예방'할 수도 없다. '민감'하더라도 성적 권리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나는 섹스하는 청소년입니다

2019년 10월경, 위티는 전국 릴레이 청소년 페미니즘 강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나는 섹스하는 청소년입니다'라는 제목의 서울 강연을 주최했다. 해당 강연은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성교육을 넘어, 자신의 욕망과 감각을 인식할 수 있는 대안적 성교육"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해당 강연의 제목을 명기한 포스터가 각종 SNS에 업로드되자, 각종 종교단체나 학부모단체에서 담당자의 연락처로 무분별한 협박문자와 민원전화를 쏟아부었다.

당시 왔던 문자의 내용은 대체로 "동성애 교육 하지 마라", "아이들에게 음란한 섹스를 조장하지 마라"라는 식이었다. 이런 문자와 민원은 결국 사회가 그간 청소년의 섹스, 혹은 섹스 그 자체를 무엇으로 인식해왔는지를 드러낸다. 해당 강연을 진행한 연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겼다. "섹스는 어째서 포르노와 혼동되는가? 우리는 왜 '섹스'에 대해서 발음하면서, '포르노'의 이미지를 답습하는가? 혼동은 어째서 당연함으로 치부되었는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라는 것은 누구의 언어일까?"

이제껏 청소년의 성은 "음란하거나", "위험하다는" 양극단만을 표상해왔다. 그렇기에 청소년에게 성을 교육하는 방식 역시 구체적 권리 보장의 현실로부터 시작되기보다는, 폭력과 중독을 예방하는 '건전하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만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이미 오래 전에 실패했다. 청소년은 이미 성적 주체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오히려 통제와 차단에 기반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청소년은 성적 권리를 침해받는다. 이를테면 청소년은 모텔 등에 출입할 권한이 없어, 비상구, 룸카페 등 위험하고 불결한 공간에서의 섹스를 이어간다. 청소년에게 특수형 콘돔을 불허하는 제도(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특수형 콘돔은 '청소년 유해물건'에 포함돼 판매금지 제품에 해당한다)는 청소년의 콘돔 사용률 자체를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청소년은 사후 피임약이 필요해 응급실에 가도,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만 처방이 가능한 현실을 마주한다.

최근 출시된 비대면 약 배달 서비스업체에서도 사후피임약에 나이 규제를 지정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피임에 대한 권리 전반을 박탈당한다. 하지만 이미 성에 대해 경험하고 실천하는 청소년의 삶과 관계 맺지 않은 채, 바람직한 청소년 상을 규정하고 그에 따른 규제와 금지만을 모색할 때 이 실패는 거듭될 수밖에 없다. 

섹스는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섹스만 그런 것도 아니고, 청소년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청소년들은 섹스가 '위험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어야 한다. 섹스가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자신의 기준에서 즐겁지 않은 섹스, 폭력을 닮은 섹스를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넘어서지 못하는 기존 성교육이 아닌, 성과 재생산 건강을 포함하는 권리적 관점의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하다.

임신한 여성 청소년이 겪는 위험과 낙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속 영주와 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속 영주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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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임신한 여성 청소년이 등장한다. 임신한 여성 청소년인 영주와 그의 남자친구 현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3년, 임신한 청소년이 할 법한 경험을 잘 보여준다.

여전히 임신 중단 약물을 수입 허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특히 임신 테스트기나 피임약조차 일상적으로 구하기 어려운 청소년의 현실에서 현은 불법적으로 임신중단 약물을 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주와 통화한 의사는 인터넷에서 구한 약물은 모두 위험하다는, 진짜인지 확인되지 않은 정보만 준다. 산부인과 의사는 영주가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반말을 한다. 이후 이들은 힘겹게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지만, 비용이 고가여서 부모 몰래 현의 학원비를 사용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이후에도 영주의 담임 교사는 학교를 계속 다니는 일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냐고 묻는다. 담임의 물음은 영주와 현이 앞으로 겪을 일들을 쉽게 상상케 한다. '임신한 아이'를 끝내 낳기로 결정한 것은 꽉 닫힌 해피엔딩이 아니다. 아마 앞으로의 영주와 현은 작은 동네 마을에서 질 나쁜 소문으로 '낙인' 찍히지 않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들이 부모의 허락을 구해야 하거나, 사회적 평판에 더더욱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임신한 당사자인 영주가 여성인 동시에,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보호와 지지 속에 출산 혹은 임신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청소년이 얼마나 될까? 적지 않은 청소년이 가정에서 임신 사실을 밝힌 후 부모의 협박과 폭력을 경험한다. 부모 외의 보호 시스템이 부재한 환경은 청소년이 임신 이후의 삶을 더더욱 결정할 수 없게 만든다. 학교와 가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소년은 지역사회 내의 평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이 임신 이후의 삶에 대해 쉬이 주변과 논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많은 청소년은 암암리에 수술비를 빌려서, 신분을 위조해서 임신 중단 수술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의료권이 침해되거나 의사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더라도 저항하기 어렵다. 임신중단 이후 몸의 상태와 회복에 대해 제대로 안내받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청소년의 임신중지권 보장을 위해선 더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청소년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민감한 것'으로 치부하며 미뤄온 관행은 결국 청소년이 임신, 출산, 연애, 섹스, 양육 등 자신의 일상에서 그 무엇도 선택하거나 고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은 임신중지에 대한 '입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임신중지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 이전에도 이후에도, 혹은 임신중지에 대한 입법이 이뤄진다고 해도 청소년의 성과 재생산 권리가 논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임신중지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일은 청소년이 존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나는 청소년의 성이 '일탈'이 아닌 '일상'으로 여겨지는 세상을 원한다. 청소년이 성적 주체로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고 성적 즐거움을 탐색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청소년이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삶에 필요한 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세상, 임신중지 혹은 출산이라는 선택이 청소년의 삶에 아무런 불이익을 미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없다
 
2020년에 발표한 위티의 임신중단권 보장 논평 썸네일
▲ 누구의 허락도 필요없다 2020년에 발표한 위티의 임신중단권 보장 논평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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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혔다. 생리주기 앱에 남긴 정보가 추후 사법당국의 수사 자료로 쓰일 수 있단 우려로 인해 해당 앱을 지운다는 미국 여성들의 소식을 들으며, 낙인이 두려워 자신의 성경험을 감추는 여성 청소년들의 일상이 겹쳤다. 여성의 성경험을 수치스러운 일로, 청소년의 성을 '일탈'로, 여성의 몸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온 시대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지난 2020년 10월,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청소년의 임신중지에는 국가의 허락도, 법정대리인의 허락도 필요없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여전히 청소년의 임신중지를 위해 부모의 동의를 받거나, 학대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소년이 임신중지를 위해 자신의 학대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시민들의 기본권인 성재생산권을 보장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증명하는 것은 정부와 사회의 역할이지, 임신을 경험하는 청소년의 역할이 아니다.

거대한 퇴보에 맞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지킬 것이다. 여성 청소년의 몸은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으며, 오롯이 그대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유경씨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입니다.


태그:#임신중단, #로대웨이드, #청소년인권, #청소년임신중단, #성적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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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공동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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