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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연극계 권력형 성폭력'을 증언한 주영(가명)씨는 자신의 첫 공연의 회식 자리에서 다른 극단의 대표 A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광주 연극계 권력형 성폭력"을 증언한 주영(가명)씨는 자신의 첫 공연의 회식 자리에서 다른 극단의 대표 A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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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영(가명)씨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산하(가명)씨였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떠나 있지만 그들은 한때 '광주 연극계' 동료였다.

산하씨는 자신이 겪은 '권력형 성폭력' 피해를 털어놨다. 그리고 '공론화를 결심했다'면서 '다른 피해자를 알고 있는지' 주영씨에게 도움을 구했다.

알고 있는 다른 피해자는 바로 주영씨 본인이었다. 저 깊이 숨겨뒀던 심연의 기억이 다시 올라왔다. 산하씨의 결심에 주영씨의 결심이 보태졌다. 두 사람의 결심을 지원하는 '광주연극계성폭력사건해결대책위원회'는 29일 기자회견을 열었고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고소했다.(관련 기사 : 또 터져나온 연극계 미투 "가해자들 5.18과 평화 공연할 때 분노 치밀어" http://omn.kr/1zkp6 )

기자회견 전날인 28일 오후 광주의 한 카페에서 주영씨를 만났다. 그는 산하씨가 가해자로 지목한 3명 중 A를 알고 있었다. 산하씨가 속했던 극단의 대표이자 극작가 연출가인 A는 다른 극단에 속해 있던 주영씨의 기억 속에도 가해자로 남아 있었다.

사정상 연극계를 떠나 있는 주영씨는 '꿈' 그리고 '연극'이란 단어를 말할 때 자꾸 멈칫했다. 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자신의 첫 공연 그리고 그 공연의 시파티(작품의 시작 즈음 여는 파티)에서의 기억은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주영씨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이젠 "용기가 생겼다"는 주영씨는 '안전'을 이야기했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절실한 사람들"이라며 "그 사람들이 안전하게 연극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주영씨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내 첫 공연의 첫 회식"

- 연극배우를 꿈꾼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연극배우가 꿈이었어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우선 연극 대신 돈을 벌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는데 곧장 자퇴했죠. 이후 독립영화에 참여했고 그때 알게 된 배우들이 극단을 만들어 저도 참여했습니다."

- 처음 배역을 맡게 됐을 때 어땠는지 기억하시나요.

"네. <OOO>이라는 공연에서 '△△' 역할을 맡았는데 대사도 꽤 있었습니다(웃음).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해요. '내가 드디어 해냈구나' '내가 꿈꿨던 걸 이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벅찼죠. 연습을 할 때도, 공연을 할 때도 항상 그랬습니다."

- 연기를 시작하고 첫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 피해가 발생한 건가요.

"앞서 말씀드렸던 저의 첫 공연이 제가 속했던 극단의 창단 첫 공연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다른 극단의 선생님들도 같이 오셔서 시파티를 했어요. 그분들에게 조언을 듣고 저희들을 소개도 하는 자리였습니다. 연습실에 10여 명이 둘러앉아 술자리를 가졌고, 그때 극단 '□□□'의 대표 A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후 술을 받는 상황에서 A 옆에 앉게 됐는데, A가 '너 마음에 든다. 나한테 잘 보이면 좋은 배역을 줄 수 있다'며 저를 성추행했어요. 저는 '원래 이런 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머리가 복잡했어요.

극단의 한 선배가 이 장면을 목격했어요. 그 선배는 회식 전부터 'A가 손버릇이 안 좋다.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저는 그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처음 만나자마자 A가 그렇게 행동할 줄은 몰랐어요. 5분 정도 지나 A가 저를 또 성추행했고, 그 선배가 저를 부르는 것처럼 해서 잠깐 연습실 밖으로 나갔죠.

선배는 '무조건 멀리 떨어져 앉으라'고 말했고 저는 애써 A를 피했습니다. 이후에도 A는 반복해 제게 옆으로 오라고 말했고, 화장실을 오가다 마주치면 또 '너 마음에 든다, 배역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 광주 연극계에서 A에 대한 평판은 어땠습니까.

"연극을 잘 만들고, 극단 운영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광주 연극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였죠. 저도 그때 '정말 잘 보여야 하는 선생님'으로 인지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이분한테 잘 보이면 배역을 얻을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 그러한 일이 벌어진 후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들진 않았나요.

"그래서 그날 일을 연극하는 동료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연극을 하면 이런 일을 감당해야 하는 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피해 사실을 이야기했다가 배척되진 않을까 걱정도 컸습니다."

- 꿈을 향해 달려가던 상황이었는데, 그 일을 겪고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연극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여기선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구나' '연극을 계속 하려면 이런 일을 참아내야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렵게 연극을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도 몰라요."

- 연극계에 있는 분들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까.

"그때 친구 몇 명에게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아직도 기억하는 친구가 있더라고요."

"우리는 '안전'해야 한다"
 
광주연극계성폭력사건해결대책위원회가 29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검찰청 앞에서 '광주 연극계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하고 엄중한 수사와 처벌, 성폭력 전수조사 및 징계, 재발방지책 마련, 지지와 연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광주연극계성폭력사건해결대책위원회가 29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검찰청 앞에서 "광주 연극계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하고 엄중한 수사와 처벌, 성폭력 전수조사 및 징계, 재발방지책 마련, 지지와 연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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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곧장 성추행을 지적하거나 신고 등 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만든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환경 자체가 그걸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선생님'이라고 불렸고, 나를 캐스팅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으며, 다들 그러한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다들 심각하지 않은데 나만 심각하면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잖아요."

- 6년 만에 고소를 결심했습니다. 계기가 있었나요.

"(A 등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산하씨가 다른 피해자를 찾고 있었어요. 제게도 연락이 왔는데 제 피해 사실을 알고 연락을 한 건 아니었어요. 대화를 나누다가 저도 피해를 입었다고 이야기했고 함께 고소와 공론화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었죠. 2018년 '연극계 미투'를 보면서 '그래도 바뀔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광주 연극계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 공론화 이후 의도치 않은 상황과 마주할 수도 있을 텐데 걱정은 없었습니까.

"가족 걱정이 가장 커요. 아직 가족들에게 말은 못했지만 공론화 후 가족들이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까지 다 생각하고 선택한 일입니다.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젠 저 혼자가 아니잖아요. 그동안 홀로 참아왔지만 산하씨와 저 그리고 함께 연대해주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들 덕분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 꼭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안전해야 합니다. 남녀 간 성폭력 문제를 넘어 권력과 약자 사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연극계엔 저와 같은 약자는 반항·대응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습니다. 그 구조가 바뀌어야 해요. 뿐만 아니라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폭력이었음을 꼭 인지했으면, 그리고 그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합니다."

- 연극계를 떠나 있지만 '안전해야 한다'는 말에서 여전히 애정이 느껴집니다.

"네. 지금은 사정상 떠나 있지만 언제든 다시 연극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아니어도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절실하거든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간절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이 모두 안전하게 연극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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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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