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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의 남자가 12살 소녀에게 반해 그의 과부 어머니와 결혼을 하여 소녀 곁에 머문다. 의붓아버지가 된 남자는 고작 초등학교 5학년정도 된 소녀를 성적 시선으로 훔쳐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간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의 이야기이다.

책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를 읽은 후로는 <롤리타>가 끔찍한 '친족성폭력 범죄'를 문학적 장치로 미화하고 포장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친족성폭력 범죄를 소수의 악마가 저지르는 별스러운 짓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 통계에 따르면, 친족성폭력은 매년 15퍼센트의 비율을 차지하며 이중 30퍼센트 가량이 아동·청소년이 피해자라고 한다. 그리고 친족 성폭력을 상담한 이들 중 55.2퍼센트가 처음 상담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2019년 통계)고 한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의 기록
▲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의 기록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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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는 미투의 사각지대에서 살아남은 11명 생존자의 생생한 기록이자 누구나 존엄을 지니며 살아갈 수 있다는 당당한 선언이다. 장화, 불가살이, 김민지, 정인, 희망, 최예원, 엘브로떼, 명아, 푸른나비, 평화, 조제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되어 온 친족 성폭력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서 관심을 갖고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나는 아빠가 내게 어렸을 때 한 짓을 범죄라고 일갈했다. 아빠는 그저 내가 귀여워서 했던 장난이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경험은 그저 개인의 문제일까? 사촌 오빠는 내게 왜 그랬을까? 아빠는 나한테 왜 그랬을까? 내 입을 막은 건 무엇이었을까? ··· 그 사건은 내 인생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내 인생의 너무 많은 부분을 침해하고, 뒤바꿔 놓았다··· 단 한 번도 성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는 아동은 이것이 무슨 행위인지 알지 못할 뿐더러 단지 이상하고 나쁜 짓인 것 같다는 느낌만 들 뿐이다··· 꽤 많은 생존자의 부모는 자식이 성범죄 피해를 겪었을 때, 그것도 친족에게 겪었을 때 오히려 사실을 축소시키거나 은폐하고, 심지어 아이를 비난하기도 한다는 것을 다른 생존자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도 다를 바 없었다. 이것이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우리 모두가 사회에 던져볼 질문이다." - 3장 그때 난 일곱 살이었다_김민지, 46-47p
 

나의 몸을 함부로 침범하는 위협자가 1차 안전망인 가족 안에 있다면? 생존을 오롯이 가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동·청소년의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특히 피해자의 나이가 어린 경우 그 일을 '성폭력'이라고 정의내리기 조차 어렵다.

또한 입을 여는 순간 가족이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해자가 단순히 피해만 준 사람이 아닌 좋은 추억까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발생하는 양가감정은 피해자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

고통의 시간을 인고하며 오랜 혼란과 고민 끝에 엄마나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그래도 가족인데", "왜 즉각 대응하지 못하고" 하며 쉬쉬하고 피해자를 탓하며 2차 가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피해 사실을 발설하면 오히려 '가정 파괴범'이 되거나 가족으로부터 '추방' 당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피해 사실을 발설하지 않으면 피해가 지속되어 '심리적 살해'를 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가부장제 정상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피해자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이중구속(double bind)상태에 빠지게 된다. 친족성폭력 피해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려 처음 상담을 하는데 평균 10년이 걸린다는 통계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현재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와 '친족관계 안에서의 성폭력 사건을 알게 된 때 즉시 신고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친족간 성범죄와 관련한 10여 개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 용기 내어 자신이 겪었던 일을 당당히 이야기 하고, 국민청원을 하여 또 다른 피해자를 돕고, 자조 모임을 만들어 함께 연대하여 발로 뛴 노력들의 일환이다.

이번 법안이 21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하고 친족 성폭력을 방조하는 꼴이 된다. 한순간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가정'이라는 사각지대가 안전한 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법제화를 통한 구조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디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길 기대해본다.

※성폭력 위기 상황 시 도움 되는 곳
-여성긴급전화 1366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
-열림터(성폭력피해생존자들의 안전한 생활과 치유회복 지원)
-청소년자립지원관(1388 , 가정으로의 복귀가 어려운 청소년의 경우 자립지원)

덧붙이는 글 | 브런치 <느리게 걷는 여자> 게재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의 기록

장화, 불가살이, 김민지, 정인, 희망, 최예원, 엘브로떼, 명아, 푸른나비, 평화, 조제 (지은이), 글항아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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