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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해 국회를 나서며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해 국회를 나서며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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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청사진을 짐작케 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와 좀 달랐다. 국정철학으로 '자유'를 강조했지만, 어떤 정책을 통해 자유를 실현할 것인지, 어떤 자세로 대통령직에 임할 것인지는 찾기 어려웠다(관련기사 : 윤 대통령 "어려움 해결 위해 공유할 가치는 자유" http://omn.kr/1ytim).

윤 대통령은 이날 '자유'란 단어를 35회 사용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는 딱 한번 사용했던 단어다. 윤 대통령은 '자유'를 국내·외의 갈등과 위기를 헤쳐 나갈 보편적 가치로 설정했다. 특히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면서 향후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강화'임을 시사했다.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의 해법이 "도약과 빠른 성장"으로 제시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적시하지 않았다.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와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정도가 정책의 방향을 드러낼 뿐, 오히려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 "모두가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등 '자유시민의 자세'가 강조됐다.

경제성장과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해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약과 빠른 성장'을 위해 '과학·기술·혁신'을 강조하면서 그를 발전시킨 다른 나라와의 연대를 언급했고, '평화'에 대해서도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고 밝혔다.

대(對)북한 메시지는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계획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그나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시한 6개의 국정운영 목표 중에서도 ▲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 ▲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 등 4개 정도가 취임사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 인수위, 47일만에 '110대 국정과제' 발표... 소요예산 209조 http://omn.kr/1yov0).

전임 대통령에 비해 추상적인 취임사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배우자 김건희 여사와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배우자 김건희 여사와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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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대통령의 직무를 어떻게 수행할지 약속했던 여러 전임 대통령과 비교하면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이례적으로 추상적이다.

탄핵 사태를 거쳐서 선출된 문 전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 청산 ▲ 권력기관 독립 및 견제장치 마련 ▲ 재벌개혁 및 비정규직 문제 해결 ▲ 야당과의 대화 정례화 등 소통 및 협치 강조 ▲ 탕평인사 ▲ 한미동맹 강화·사드문제 해결·북핵 해결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 박근혜씨의 취임사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박근혜씨는 취임사에서 경제부흥·국민행복·문화융성 등 3대 국정운영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위해 ▲ 창조경제/경제민주화 추진 ▲ 국민맞춤형 새로운 복지패러다임 마련 ▲ 안전사회 건설 ▲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추진 및 북핵 포기 요구 등의 국정운영 방향을 밝혔다(관련기사 : '개인행복'에 최우선... 5년 뒤 '한강의 기적' 평가받을까 http://bit.ly/YvBHp9).

이명박씨는 ▲ 선진 일류국가의 꿈 실현 ▲ 노사 동반 시대 열기 ▲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 ▲ 교육으로 가난 대물림 끊기 ▲ 비핵개방 3000 ▲ 발전의 엔진 재점화 등 6개 주제로 나누어진 취임사에서 국정운영 기조는 실용주의가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9000자가 넘는 분량으로 대통령 직선제 이후 가장 긴 대통령 취임사였다. 

반지성주의 강조... 야당 겨냥?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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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에서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청사진을 명확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 외에도, 윤 대통령이 이날 극복과제로 반지성주의를 꼽은 것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현 상황을 민주주의 위기로 진단하며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우선 국회가 여소야대(與小野大)인 상황에서 다수 야당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에서 '협치'·'야당'·'소통'·'통합'이란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대화'란 단어도 북한에 대한 메시지 중 한번 사용됐을 뿐이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자칫 사실관계를 놓고 다투는 법정을 민주주의의 장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면서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보다는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우선하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문제를 제시하면서 복지 확대 및 배분 문제를 언급했고 문 전 대통령도 협치와 통합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새로운 대한민국의 상을 정의했는데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굉장히 관념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다수가 상대 의견을 억압하는 것을 반지성주의로 표현했는데 마치 여소야대 국면을 비판하는 것 같은 표현이고 (민주주의와 관련) 과학·진실을 전제해야 한다고 한 부분도 사법주의의 연장선상이 아닌가 싶다"며 "결국, 윤 대통령이 처음엔 강조했던 통합과 협치 등이 취임사에서 빠져 있는 것이 일방적 국정운영을 예고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설명했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역시 "그동안 법치, 공정, 상식을 강조했던 윤 대통령이 이번엔 반지성주의와 자유를 강조해 거론한 게 눈에 띈다"면서 "그간 우리 사회에서 반지성주의가 횡행했다거나 반지성주의에 따른 문제가 있었다는 인식일 텐데 어떤 점에서 그렇게 봤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반지성주의 비판이)행여나 자유로운 사상, 담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쪽으로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반지성주의가 아닐까 싶다. 그런 쪽으로 (반지성주의 담론이) 연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태그:#윤석열 대통령, #취임사, #자유, #반지성주의, #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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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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