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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월 20일 열린 시흥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
 지난달 4월 20일 열린 시흥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
ⓒ 시흥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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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를 둘러싼 법적 쟁점

지난 달 20일 시흥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는 <시흥시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아래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를 각하했다. 주민조례발안법 제4조 제1호, '법령을 위반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사유에서였다. 법제처 의견의 요지는, 현행 법 체계에서 '출생 확인'과 관련된 내용을 규정하는 법은 '가족관계등록법'인데,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의 내용은 가족관계등록법이 위임한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초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는 기존의 법적 출생 등록을 지자체가 대체하고자 하지 않았다. 다만 아동이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든 출생 즉시 존재사실을 확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시흥시 아동복지의 시작점으로 만들자는 취지였다. 지자체 차원의 복지 정책에 연결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자 과제였다.

지자체장 명의의 출생확인증은 기존에 없는 증서이자 새로운 개념이었다. 새로운 법적 시도이기에 당연히 기존 법제도 하에서는 위임한 바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법제처는 기존의 '출생 확인'과 관련된 법의 틀 안에서 해석했고, 불가하다고 답변했다.

지난 1월 확인 된 법제처의 의견에 대해 의회사무국은 총 4개 법률자문기관에 자문을 받았고,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 운동단은 2명의 법률 전문가에게 자문 의견을 받았다. 조례 운동단 측의 법적 자문 의견들은 모두 조례 제정이 가능하다는 의견이었다. 의회사무국이 자문받은 기관 4곳 중 3곳은 법제처와 같은 입장을 전했고, 1곳은 청구 취지대로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 제정이 기존의 가족관계등록법의 목적과 효과를 저해하기보다 오히려 원활한 실행에 도움이 되는 규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조례 제정 범위'에 속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보수적인 법해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의회사무국
스스로 생각하고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 시의원들


법제처의 의견에 대해 법령을 위반하지 않고 오히려 법적 사각지대를 지자체가 주민의 복리를 위해 보완하는 조례로서 제정 가능하다는 의견이 3건, 불가하다는 의견이 3건인 상황이었으나 의회사무국은 법제처 의견까지 4:3으로 위법하다는 의견이 더 많으므로 위법하다고 판단된다고 결정해버렸다. 그리고 자치행정위원회 5명의 의원들은 위법하다고 결론 내린 의회사무국의 판단에 따라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했다. 스스로 사안을 알아보고, 정치적 판단을 하는 시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만 의회사무국의 판단을 따를 뿐이었다.

심지어 자치행정위원회의 회의를 이끈 위원장은 회의 중 '위법'과 '위헌'도 혼동하며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에 대해 '위헌'이라는 말을 남발했고, 주민조례발안법 시행으로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가 의회에 넘어온 것에 대해 시집행부 차원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의회에 넘겼다고 질타했다. 잠시 그 발언을 살펴보자.

"과장님. 그런데 그 과장님한테 의견을 물어봤을 때, 말씀하시는 게 참, 좀 이해가 안 가는 게, 위헌은 좀 있지만 아동복지와 관련해서는 좀 우리가 받아들일 게 있다. 그렇게 말하면 집행부는 아주 천사가 되는 거고, 의회 의원들은 아주 악마가 되는 거예요. 왜 그런 식으로 처리를 하세요. 그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뭐만 판단해요. 우리는 이거 수정도 못하잖아요. 우리는 수정을 해주고 싶었어요. 여러 번 미팅을 통해서나 간담회를 통해서 이 자체를 해주려고 노력을 했는데, 주민들이 가져온 이런 발의안은 수정안이 없대요, 그렇죠? 그래서 이걸 각하 아니면 수리 두 개 중에 하나 처리를 하라는 양갈래 길 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런데 위법에 의원들이, 법을 다루는 의원들이 위법을 해서 이 법을 통과시켜라? 주민들의 대표성을 가진 여러분들이 통과시켜주면 우린 하겠다? 이런 무책임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럼 집행부를 하면 안돼요. 중간에서 끊어줄 수도 있어야죠. 중간에 우리가 지금, 아까 과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동복지 부분에 대해서 담을 부분이 있어서 우리가 충분히 논의하고 주민대표라는 분들한테 이건 우리가 수정안이 안되니 이 부분을 각하시키고 우리가 위원회 발의로 이런 부분을 담아서 해드리겠다고 얘기한 것까지 아세요?"

"주민들이 가져온 이런 발의안은 수정안이 없대요"라는 발언도 보자. 파악의 주체가 위원장이 아니다. 의회사무국이 설명해 준 내용이다. 그러나 이건 반쪽짜리 사실이다. 수리 전 조례의 내용은 자구수정 이상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게 맞다. 그러나 일단 수리하면 이후 심의 과정에서 문구를 수리할 수 있다. 구 지방자치법, 현 주민조례발안법 상 주민의 권한은 발의까지이고, 이후 심의와 제정의 권한은 의원들이 갖고 있다.

즉 위법하다고 판단할 수 없는 조례에 대해 제정 가능성에 정치적 의지를 두고 조례안을 일단 수리하면, 그 이후 시의회 심의 과정에서 조례안은 얼마든지 수정 가능하다. 그러나 의회사무국은 대표단과의 사전 미팅에서 이미 단순다수제의 논리로 조례가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있었으며, '위법한 청구조례 초안을 수리하라는 의견을 의원들께 드릴 수 없다'는 입장이 아주 확고했다. 대신 의회사무국은 <시흥시 아동권리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대신 의원발의로 제정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출생을 확인한다는 보편적 출발선을 만들 수 없는, 실효성 없는 내용의 조례안이었다. 공동대표단은 수용하기 어렵고, 8대 의회에서 내용에 대한 시간적인 한계 속에 정치적 의지를 내기 어려우니 9대 시의회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회기에 조례안을 올려 각하했다.

2021년 8월 26일부터 11월 25일까지, 코로나 시국에 2만 명이 넘는 주민이 서명에 동참하고 8285명의 유효한 서명인 수에 1만6405명으로 청구요건을 초과 충족하여 시흥시의회에 어렵사리, 정말 어렵사리 올라간 조례였다. 그러나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는 빈틈없는 의회사무국의 보수성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고 의회사무국이 알려주는대로 판단하는 의원들이 합세한 결과, 결국 각하되었다.
  
한숨부터 나오는 6.1 지방선거의 대진표

끝내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를 각하로 이끈 시의원 5명 중 4명은 오는 지방선거에 재도전 한다.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으로 당선되었다가 음주운전 삼진아웃으로 탈당하여 무소속 의원으로 활동한 이상섭(무소속) 시흥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 위원장. 이 의원은 LH 사태 이후 아내가 개발 지역 투기 의혹을 받고 시의회 윤리위원회에도 회부되었지만 당초 결정되었던 '출석정지 30일'도 가혹하다는 동료 의원들의 엄호 속에 '공개회의석상 구두 경고'만 받고 무사히 위원장으로 임기를 마무리 한다. 그리고 오는 6월 1일, 3(다)선거구(신현동·연성동·장곡동) 국민의힘 도의원 후보로 나온다. 1명 뽑는 선거에 민주당 1명, 국민의힘 1명이 나온다.

이금재(국민의힘) 부위원장은 2(나)선거구(과림동·매화동·목감동·능곡동)에 국민의힘 시의원 후보로 나온다. 2명 뽑는 선거에 나오는 후보는 민주당 1명, 국민의힘 2명이다.

송미희(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다)선거구(신현동·연성동·장곡동)에 더불어민주당 시의원 후보로 나온다. 2명 뽑는 선거에 민주당 1명, 국민의힘 1명. 선거운동 하지 않아도 당선되지 않는 구도다.

안돈의(국민의힘) 의원은, 1(가)선거구(대야동·신천동·은행동)에 국민의힘 시의원 후보로 나온다. 4명 뽑는 선거에 민주당 2명, 국민의힘 2명, 정의당 1명이 나온다.

오는 6.1 지방선거 시흥시의 대진표를 보며, <풀뿌리 민주주의, 양당 독식 깨야 '꽃'핀다>는 제목의 한겨레 기사(2022.04.27.)에서 정의당 관악구의원 이기중씨가 인터뷰 했던 내용이 너무 절절하게 공감되었다.

서울 관악구의회 정의당 이기중 의원은 "특정 당 혹은 거대양당이 지방의회를 독식한 상황에선 질적 저하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역 공천만 받으면 100% 혹은 50% 이상 당선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의정활동을 제대로 할 이유가 없고 '줄서기'만 잘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이로 인해 지방의회 의원이 거수기 역할을 하며 중앙당이나 집행부의 하수인이 되는 상황마저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국회만 못 넘고 있는 '차별금지법'을 생각하며…
그래도 정치에 변화를, 더 나은 정치인을 바란다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 운동의 과정에서 마주한 지방정치의 무능과 무책임, 정치적 의지와 책임, 판단의 총체적 부재를 경험하며 국회 앞 단식 농성장을 떠올렸다. 2020년 6월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이미 응답자의 88.5%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던 법, 제정을 위한 모든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 있는 그 법이 지금 국회의 문턱만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도 해도 오직 국회라는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해 두 명의 활동가가 생명을 걸고 국회 앞을 지키고 있다. 객관적으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한 마음을 쳤을 시간이 절로 떠올려졌다.

아픔과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인지상정인 변화의 길이, 어떻게든 함께 해결책을 마련해보자고 함께 팔 걷어붙이고 나설 일이, 정치라는 벽만 만나면 그 가능성이 무시되고 짓밟힌다. 안하무인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치의 결과가 되면, 그 정치를 견디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고통 속에 놓인다.

어린이날이 저물었다. 오늘 하루 온갖 정치인들은 길 위에서, 매스컴에서 '어린이를 위한 00'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다고 얘기한 정치인 중 단 한명이라도, 이 사회에 태어나 살면서도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채 유령처럼 살아가는 아이를 위한 정치를 고민하고 있는 이가 있을까.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권력의 요새에 가둬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무능에 빠지지 않길, 제발 가만히 가만히 보지 않으면 어둡고 낮은 곳에 있어 보이지 않는 자들의 존재도 알아채는 예민함을 갖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자들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청구 공동대표이자 우리동네연구소 운영위원입니다. 우리동네연구소 회원 에세이 꿈틀대기에도 함께 올라간 글입니다. 꿈틀대기 글을 우리동네연구소 홈페이지(https://dongnealab.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그:#시흥시의회, #시흥시, #출생확인증, #주민청구조례,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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