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꽃이 만개하고 곳곳에서 황금빛 웨딩마치가 울려퍼지는 사랑의 달 5월이 다가오고 있다. 어린이, 부모님, 선생님뿐 아니라 성년의 날, 부부의 날까지. 소중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기념일이 5첩반상처럼 몰려있는 달이다.

늘 궁금했다.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달인데, 정작 중요한 '나'를 사랑하는 날은 왜 없을까. 심리학 용어 중 '자존감'이 가장 많이 검색된다는 대한민국에 말이다. 자존감이 일상어로 자리잡은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키는 진짜 자존감은 무엇일까?

힘들게 속마음 털어놨는데 더 큰 상처를 받거나, 다른 사람은 멀쩡한데 유독 나만 혼자인 듯 초라해지며 자존감이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 꺼내 보는 그림 한 장이 있다.

귀족 앞에서도 짝다리를 짚은 남자 
 
The Meeting (Bonjour, Monsieur Courbet), 1854
▲ The Meeting (Bonjour, Monsieur Courbet), 1854 The Meeting (Bonjour, Monsieur Courbet), 1854
ⓒ 쿠르베(저작권기한풀림)

관련사진보기

 
남루한 옷차림에 긴 턱수염을 휘날리며 고개를 꼿꼿이 든 위풍당당한 남자가 보인다. 그 앞에 두 명의 신사가 서 있다. 초록색 자켓의 남자는 두 팔을 활짝 펴서 반기는 것 같고, 그 뒤의 남자는 모자를 벗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대체 이 세 명의 남자는 누구일까?

턱을 들고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 요즘말로 스웩 넘치는 남자는 바로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이다. 한눈에 봐도 멋지게 잘 빼입은 신사는 쿠르베의 후원자인 귀족이고, 그 뒤 남자는 하인이다. 작품명은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명화치고는 특별함이 없는 제목이다.

쿠르베가 활동하던 시대의 미술사조는 낭만주의다. 신화 속 인물마냥 몽환적 색채와 분위기로 화폭 속 피사체를 성스럽고 멋스럽게 묘사하며 후원자를 만족시켰던 화풍이다. 신화, 역사, 성서 이야기가 아니면 화가의 등용문인 프랑스 살롱전에 명함도 못 내밀던 시절에 평범한 시골길을 그리며 도전장을 던진 자가 쿠르베이다.

후원해주던 귀족 품을 떠나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생활고를 겪은 모차르트처럼, 그 시절의 화가도 재료비를 대주거나 그림을 사주는 귀족의 후원 없이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 속 쿠르베를 보자. 짝다리를 하고 턱을 든 채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며 산책 중에 만난 후원자 앞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인사받고 있다.

제목은 평범했으나 부제는 기가 막힌다. '부제: 천재 앞에 경의를 표하는 부(富)'라니! 쿠르베는 그런 화가였다. 귀족의 눈 밖에 나면 밥줄이 끊길텐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락한 화실이 아닌 배낭에 이젤과 화구를 가득 넣고 흙먼지 폴폴 날 것 같은 낡은 신발을 신고 거처를 옮겨 다니며 후원자가 원하는 그림보다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진짜 자존감은 이런 게 아닐까? 옛말에 남이 주는 술과 고기를 먹고 남이 주는 관직과 봉록을 받으면 그 사람한테 얽매여 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우연히 마주친 후원자 앞에서도 굽신거리지 않는 쿠르베의 당당함을 보노라면 그의 높디높은 자존감을 자꾸만 훔치고 싶어진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 

직장 생활한 지도 20년이 넘어간다. 한 직장 한 부서에 오래 있다 보니 해가 갈수록 또래그룹이 얇아지고 속 터놓고 얘기할 상대가 줄어든다. 관계가 줄어들면 자아도 쪼그라든다고 했던가. 올라갔으면 내려오는 건 당연하다지만, 갈수록 나를 찾는 이가 적어지면서 내가 쪼그라든다. 그러다, 우연히 지하철 역사에서 본 글귀가 가슴에 꽂힌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사랑해주면 어떨까?'

오구오구, 오늘도 따뜻한 이불 걷어차고 늦지 않게 출근 잘했네. 부서 막내한테 모닝커피 하자고 먼저 말도 붙이고 잘했네. 다양한 시간대 강좌 개설해 달라는 민원에 흥분하지 않고 한정된 예산을 내세워 점잖게 대응하고 잘했네.

누구나 자기 안에 우는 아이 한 명쯤 갖고 있다. 엉엉 울고 싶거나 무기력해질 때 나는 펜을 든다. 쓰레기 배출하듯이, 나를 괴롭히는 불안과 상처를 글로 써내면서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고 위로받는다. 이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존감을 찾아가야겠다. 쿠르베의 그림을 옆에 끼고서.

태그:#쿠르베, #프랑스화가, #자존감, #스웩, #우는 아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두글자 자기소개> 통역: IMF때 한국기업 사냥하는 외국회사 통역사로 BUY코리아에 가담. 회개의 뜻으로 그 후론 한국 회사만 다님. 언어: 3개 구사. 한국어, 영어, 그리고 부산어! 펜대: 통역사로 누군가의 말을 옮기느라 정신없었던 인생 전반전과 달리, 인생 후반전엔 내 얘기를 하고 싶어 펜대 굴리며 작업중. 미술: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보고 예술도, 인생도 미완성으로 완성됨을 깨달으며 미술감상에 맛들임. 미술도 보고 영어도 배우는 ‘미술관에서 건져올린 영어’ 강의를 진행했고, 그에 관한 책 집필을 목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