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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열린 간사단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한 후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열린 간사단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한 후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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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아무래도 마르크스주의자인 것 같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마르크스주의적 유물론자'인 것 같다는 말이다. 

유물론의 화신인 독일의 포이에르바흐(Feuerbach)는 "존재는 주어요, 사유는 술어이다. 사유가 존재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존재가 사유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 고 역설한 적이 있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러한 포이에르바흐 식의 유물론적 관점을 비판적으로 도입하면서,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는 원리를 자신의 기본 입장으로 확립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윤석열 당선자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설파하는 기자회견 석상에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외쳤다. 얼마나 놀랍고도 기막힌 이구동성인가. 그는 마르크스 유물론의 핵심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집무실 용산 이전' 구상이야말로 바로 이러한 유물론적 소신의 소산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나 홀로 결정'의 수준에 이르다

바야흐로 정권교체기에 세계인의 입맛을 돋우듯, 한갓 이사 문제로 정치권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치인은 '인수위법에 따르면 집무실 이전은 인수위 업무가 아니다. 법치를 강조해 온 윤 당선자가 취임도 하기 전부터 불법을 자초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고 을러댄다. 뿐만 아니라 대선 직후임에도 희한하게 군 고위장성들까지 대대적으로 전선에 투입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역대 합동참모의장(합참의장)을 지낸 11명의 예비역 대장들이 앞장서서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이전을 두고 "정권 이양기의 안보 공백을 야기할 수 있다"고 꼬집으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짧은 시간 내 속전속결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당장 다음 달 예정된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훈련)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중론도 뒤따랐다.

이제 곧 야당으로 '전락할' 민주당이 연일 격렬한 공세에 나서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구청 하나를 이전해도 주민 뜻을 묻는 공청회를 여는 법"인데,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사안을 아무런 국민적 협의 없이 결정"한다며 일방통행식 추진방식에 대대적으로 비판을 퍼붓고 있다. 나아가 그들은 '일선 부대를 하나 옮기는 데에도 수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데 국방의 심장을 단 두 달만에 옮기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당선 열흘만에 불통 정권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낸 셈'이라고 맹공을 가하기도 했다. 

게다가 국가 안보와 재산권 침해 우려 등은 물론, 대통령집무실 이전에 '예비비'를 쓰는 것 자체가 인수위 관련 법 등에 저촉된다며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물론 정의당도 나서서 "당선인의 첫 국정행보가 민생이나 코로나대책이 아닌, 광화문이냐 용산이냐에 대한 논쟁이라는 게 대단히 실망스럽다"며 혹독한 비판에 가세했다.

바야흐로 저명한 보수논객 조갑제 대표까지도 참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는 "그것(청와대)를 운영한 사람의 문제를 장소에 뒤집어씌우는 것은 미신"이라고 호통치며, 혹시나 "5년 뒤 어느 대통령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도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고 국격에 맞지 않는다'면서 이전이나 신축 공약을 내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냐"고 따져묻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윤 당선자의 측근들조차 팔을 걷어붙이며 '시간을 갖고 결정하자'며 속도조절론을 개진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밀실에서 의견 수렴절차도 없이 '나 홀로 결단'을 강행한 셈이 됐다.

졸속의 원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후 집무실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계획을 확정하면서 그에 따른 집무실과 주변 공간 구성 방안에 관심이 쏠린다. 윤 당선인과 인수위 측이 20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을 종합하면 국방부 청사 건물에는 대통령 집무실, 비서실과 함께 기자실이 들어선다.  5월 10일 취임식 직후 용산 집무실에 입주하겠다는 구상에 따라 임시 관저는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리모델링 해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청와대 이전 TF 팀장인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설명했다. 사진은 20일 집무실이 들어서는 용산구 국방부 청사(윗 사진)와 한남동 공관부근 모습.
▲ 집무실은 용산, 관저는 한남동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후 집무실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계획을 확정하면서 그에 따른 집무실과 주변 공간 구성 방안에 관심이 쏠린다. 윤 당선인과 인수위 측이 20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을 종합하면 국방부 청사 건물에는 대통령 집무실, 비서실과 함께 기자실이 들어선다. 5월 10일 취임식 직후 용산 집무실에 입주하겠다는 구상에 따라 임시 관저는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리모델링 해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청와대 이전 TF 팀장인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설명했다. 사진은 20일 집무실이 들어서는 용산구 국방부 청사(윗 사진)와 한남동 공관부근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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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이쯤에 이르자, 바야흐로 윤석열 당선자에게 '제왕의 관'이 올려졌다. '제왕적 리더십'을 지니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이 들끓게 된 것이다. 요컨대 그가 국가 백년대계인 집무실 이전 문제조차 여론수렴도 거치지 않은 채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에 편향돼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는 정치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 역시 지니지 못하고 있으며, 게다가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안목으로 타자를 제대로 배려하지는 못하면서도 무속과 역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몰입한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따라서 국가 최고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하다는 날선 비판까지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이와 관련지어 <한겨레>는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윤 당선자의 '1호 결정'이야말로 '불통과 독주'라는 향후 5년 간의 국정운영 리더십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왜 윤 당선자는 황야의 늑대처럼 외로이 집무실 이전만을 애타게 울부짖고 있을까?

여우도 물을 건너려 할 때는 먼저 그 꼬리부터 물 속에 담가본다고 한다. 비슷한 목소리로 시경(詩經)은 '시작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도 끝맺음을 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읊는다. 명심할 일이다.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맺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러하니 '높고 튼튼한 제방도 개미와 땅강아지 구멍 때문에 무너진다'는 한비자의 말씀을 어찌 명심하지 않겠는가.

특히 8.15 이후 우리 사회를 줄기차게 지배해온 규범이 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빨리 빨리, 그러나 아무렇게나' 정신일 것이다. 이러한 '졸속의 원리'는 조그만 도로공사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정책결정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나라 구석구석에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 역시 그 영향에 있었다.

바로 이러한 '대충대충'과 '후딱후딱' 이데올로기가 바로 우리의 정치이념이자 생활철학이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락부락한 한탕주의가 또 그 옆자리에 근엄하게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기 일쑤였다. 

아울러 우리는 참으로 오랫동안 '골인 지상주의'만을 높이 기려왔다. 그리하여 골인 이후에 어떤 꼴사나운 일이 벌어지든 그건 운수소관에나 맡길 일로 치부했다. 가령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려도 그것은 재수 없어 터지는 사고쯤으로 너그럽게 이해하곤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불행 중 다행'이라는 편리한 민간요법을 몸에 익힌 지 오래인 것이다. 요컨대 '삼풍백화점'은 무너졌지만 다른 건물은 멀쩡하니 그만해도 다행 아닌가 하는 말이다. 예전에 유럽을 난생처음 구경하고 온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체험이 있다. 그곳에 다녀와서는 충격을 받은 듯 제일 먼저 신기하다며 꺼내는 말이 대체로 '거, 유럽의 집들에는 울타리가 없어' 하는 식이었다. 담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미숙련 삽살개 정도면 충분히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수준의 나지막한 울타리가 전부다.

그에 비해 우리의 것들은 어떠한가? 유럽과는 판이했다. 요즘은 좀 보기 힘들어졌지만, 시멘트로 험상궂은 장벽을 쌓아올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날카로운 유리조각들을 담 끝에 촘촘히 박아놓고는 또 그 위에 철조망을 이중삼중으로 둘러쳐 마치 토치카처럼 보이던 주택들이 특히 우리 도시에서는 흔히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왕왕 '맹견주의'라는 엉터리 경고판까지 터억 하니 걸려 있기 일쑤였다. 가히 완벽한 안보체제 구축이라 할만 하였다.

우리는 범람하는 군사문화 속에서 우리의 정신까지 이렇게 완전 무장시키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렇게 요새 같아 보이는 담벼락도 일단 뛰어넘기만 하면 안방까지의 진입은 식은 죽 먹기 식이었다는 사실이다. 창문 고리나 현관 출입문의 개폐장치가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은 정반대다. 부질없는 그 담장을 보고 안방의 보석함이 내 손안에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낙관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대개 하루 종일 열려 있기 일쑤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울타리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진출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정은 성이다'라는 영국의 격언이 있긴 하지만, 안채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성채처럼 버티고 있다. 완벽에 가까운 자물쇠 장치와 물 한 방울 새어들지 않을 정도의 빈틈없는 창틀이 맹위를 떨치기 때문이다. 요컨대 형식은 어수룩하게 보이지만 내용은 튼실하다.

우리는 정반대다. 겉은 맹수처럼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속은 새우처럼 물러 터져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형식주의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현실의 흐름 곳곳에도 폐수처럼 의연히 녹아들어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겉으로는 당당히 활개 치는 듯 하나 속으로는 연신 곪아터지고 있는 일들이 어디 한둘인가.

언제까지 진실이 아니라 꾸밈에만 매달려 있어야 할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9일 새 대통령 집무실 후보지인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를 직접 답사하고 있다.

당선인 대변인실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이날 오전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과 답사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9일 새 대통령 집무실 후보지인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를 직접 답사하고 있다. 당선인 대변인실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이날 오전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과 답사에 나섰다.
ⓒ 국민의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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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도로 표지판이다. 노자 선생도 '진실한 말은 꾸밈이 없고, 꾸밈이 있는 말엔 진실이 없다'고 가르쳤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나 진실이 아니라 꾸밈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 와중에 우리는 큰 불행에 대해서는 쉽게 체념하지만, 조그만 기쁜 일에 대해서는 되레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역설을 배우기도 했다. 유장(悠長)하고 깊은 흐름보다는 짧게 솟구치는 단말마 같은 행운이 높이 숭상 받았다. 돈을 벌어도 한목에 왕창 벌어야 하고, 망해도 일시에 폭삭 망하려 한다. 약도 '만병통치약'이라야 한다.

아울러 사회적 '싹쓸이 수법'이 범람하기도 한다. 우리는 준비체조도 없이 바다에 먼저 뛰어들어 수영경쟁을 벌이기 일쑤다. 사회적 심장마비 증세가 도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기적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컨대 지난 IMF 위기는 역사적 심근경색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최고지상주의, 한탕주의가 이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실존철학'으로 군림하게 됐다.

나는 지금 윤 당선자도 혹시나 이와 유사한 증세가 있는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왜냐하면 그 역시 이러한 병적인 실존철학에 지극히 심하게 병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집무실 이전구상은 한탕주의의 소산인 것처럼 여겨지며, '빛 좋은 개살구' 스타일의 형식주의의 산물로 비친다. 

집무실 이전에 몇백 억의 돈이 들는지 지금은 정확한 액수를 판가름하기 힘들긴 하다. 그러나 그 정도 돈이라면 양로원과 어린이집 몇백 채 정도는 너끈히 건립할 수도 있으리라. 게다가 울진·삼척 산불로 불탄 산림 3300ha와 소실된 주택 90채도 제대로 복구해 산불피해자들의 눈물과 한을 어느 정도는 잠재워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윤 당선자가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과 "국민 소통"을 목청껏 절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가 구구단처럼 우렁차게 외쳐대는 '국민소통'은 정작 '불통', 그 자체다. 그러므로 그가 그토록 열망하는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과 '국민 소통'은 오로지 아전인수격인 집무실 이전을 종식시킴으로써만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호성씨는 서강대 정외과 명예교수입니다.


태그:#윤석열, #대통령집무실, #용산, #이전,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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