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을 보면 항상 궁금했다. 실제 옛 시대에 창과 칼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은 제 의지로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왔다지만, 제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의 기로에서 달리게 된 말들은 무슨 죄인가.

물론 연출된 사극에서는 말 위에 올라탄 장군들이 서로를 향해 날카롭게 무기를 휘두를 뿐 말이 다치는 장면은 별로 보지 못했지만, 그 시대의 말들은 실제로 많이 다치거나 죽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과거의 일이다. 그 시대를 재현하는 사극 촬영장에서까지 실제로 말이 다치거나 죽는 일이 발생할 필요는 없었다.
 
촬영에 동원되는 동물들
 
KBS '태종 이방원' 동물학대 규탄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가 21일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태종 이방원' 드라마 동물학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태종 이방원'은 낙마 장면 촬영을 위해 와이어로 말을 강제로 쓰러트렸다. 해당 말은 촬영 일주일 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KBS '태종 이방원' 동물학대 규탄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가 21일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태종 이방원' 드라마 동물학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태종 이방원'은 낙마 장면 촬영을 위해 와이어로 말을 강제로 쓰러트렸다. 해당 말은 촬영 일주일 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최근 KBS 2TV 드라마 <태조 이방원>에서 낙마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말에게 와이어를 묶어 강제로 넘어뜨린 탓에, 말이 목이 꺾이면서 일주일 내 숨진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비윤리적인 촬영 방식에 대해 규탄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방송 중단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이어졌다. 

이번 일이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비단 해당 촬영장뿐 아니라 촬영을 위해 동물들을 폭력적으로 다루거나 의도치 않았더라도 동물 학대가 행해지는 일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기 때문에, 쉽고 빠르게 촬영하기 위해서 가장 쉽고 편리한 방법을 차용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결국 촬영장에서 죽지는 않더라도 그 여파와 스트레스 때문에 죽는 동물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동물이 죽더라도 다른 동물로 쉽게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마치 인간을 위한 도구이자 소모품처럼 다뤄지고 있는 셈이다.
 
촬영에 동원되는 동물들의 처우 문제가 불거진 것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8년 전 2014년에도 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에서 토끼를 씻기는 장면이 방송되었는데, 샤워기로 토끼를 씻겨 털이 젖게 만드는 것이 토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이 지적되며 제작진이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게재한 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사례가 없지 않았음에도 방송사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아쉽다. 
 
이번 <태조 이방원> 측에서도 낙마 촬영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사과문을 게재하면서, '시청자분들과 동물을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특별히 '동물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문제제기를 하였거나 불편함을 느꼈기에 사과할 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된 문제다.
 
올바른 가이드가 필요하다
 

이전에 내가 동물 잡지에서 일하던 시절, 동물이 주인공인 표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반려동물을 섭외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동물을 모델로 원하는 사진을 얻어내는 것은 촬영 기술보다 오히려 기다림과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낯선 장소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며 기다리고, 우리가 원하는 구도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고, 사진 작가님이 몸을 낮춰 반려동물과 눈높이를 맞춘 뒤 수백 장의 순간 포착을 통해서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고른다. 그럼에도 동물들이 낯선 사람들 틈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또 그런 우려 때문에 표지 섭외를 거절하는 보호자들도 있었다.
 
동물과 함께 일하는 것은 그 동물의 성향과 기질을 이해하려는 사람의 노력과 배려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사람끼리는 서로의 사정에 맞춰 다소 무리할 여지도 있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린 동물에게 사람의 사정을 일일이 이해시킬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조금 어렵더라도, 혹은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사람의 사정에 동물을 동원해야 한다면 최소한 그 동물의 특성을 이해하고 해가 되지 않는 선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성이 아닐까. 

지난해 7월, 반려동물이 법적으로 '물건이 아니다'라는 지위를 인정하는 민법 개정안이 추진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동물이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이라는 윤리적 의식은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동물자유연대에서는 각 방송사에 '동물복지를 보장할 수 있는 방송 가이드라인' 제작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고 한다. 아직 방송사별 입장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사회 전반에서 반드시 한 번쯤 논의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가치
 
다른 사례로, 오늘날 동물실험이 윤리적으로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과거와 달리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인공장기나 세포를 배양하여 실험하거나, 직접적인 동물실험 없이도 화학물질의 독성을 예측하는 방안들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더 정확한 결과값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쉽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동물실험에 의지하는 일이 관례적으로 이어지다 보면 죽지 않아도 되는 동물들이 죽어가게 된다. 이에 많은 국가에서 이미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2016년부터 화장품 제조 생산 유통 과정에서 동물실험이 금지되었지만 수출하는 국가가 요구할 경우 예외로 동물실험이 허용되고 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욕심과 별개로, 생명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우선으로 채택하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해당 드라마의 경우에도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시간이나 예산이 들더라도 낙마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모형이나 CG를 사용하는 등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었다.

우리는 흔히 '동물보다 인간이 먼저'라는 것이 당연한 명제인 듯 말한다. 그러나 예산이나 편의와 맞바꿀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생명의 무게가 가벼운 것일까. 이번 일로 단순히 한 방송사를 질책하고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동물을 대하는 시선과 방식을 전반적으로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동물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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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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