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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경남무역회관에서 경상남도자치경찰위원회 출범식이 열렸다.
 지난 5월 10일 경남무역회관에서 경상남도자치경찰위원회 출범식이 열렸다.
ⓒ 경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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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찰 창설 이후 76년 만에 자치경찰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지난 7월 1일 출범한 지 두 달도 채 못 되는 시간은 경찰 대내외적으로 자치경찰제의 존재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모양이다. 전국 18개 자치경찰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자치경찰제는 중앙집권화된 단일 국가경찰체제가 가지는 한계, 즉 지역 실정에 관계없이 획일화된 치안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이다. 여기서 획일적 치안 서비스는 서울 서대문에 있는 경찰청 중심으로 치안 정책이 결정되는데 기인한다. 그러다 보니 지역 실정보다는 서울에 있는 경찰청 관점이 우선시되고, 자연스럽게 경찰청 중심의 승진체계가 형성되고, 경찰청으로 사람이 몰리고, 경찰청에 경찰권이 집중되는 관료주의적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로 인한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찰조직의 지역적 분산이 필요하고, 자치경찰제는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이다. 자치경찰제 출범으로 18개 위원회에서 각기 서로 다른 1호 사업을 내놓은 것은 경찰청 중심으로 획일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자치경찰제는 2개의 경찰(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누는 이원화 모델로 추진되었으나, 코로나19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을 감안하여 국가경찰 중심의 일원화 모델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자치경찰제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달라진 게 없다. 따라서 어떠한 모델이든 자치경찰제가 추구하는 가치의 실현을 위한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위원회의 설치·운영을 핵심으로 하는 현재의 모델에서는 위원회의 실질화가 특히 중요하다.

위원회는 자치경찰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시도경찰청장을 지휘·감독하는 기관이다. '자치경찰사무는 있으나 자치경찰관은 없는' 현재의 모델은 위원회의 지휘·감독권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사무국을 두어, 자치경찰사무에 관한 인사, 예산, 장비, 통신 등에 관한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그 운영을 지원하게 하고 있다.

또한 자치경찰사무를 담당하는 경찰공무원의 임용, 평가 등을 담당하게 한다. 다만, 이러한 권한도 시도지사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행사될 수 있도록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자치경찰위원회가 유명무실화되면

최근 경찰청에서는 위원회에 파견된 경찰공무원의 근무성적평정(승진의 핵심 요소) 방식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위원회의 개입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경찰공무원법에서는 시도경찰청에서 자치경찰사무 담당 경찰공무원에 대한 승진 등의 임용권을 위원회에 부여하고 있는데, 정작 위원회에 근무하고 있는 경찰관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의 논의는 자치경찰관이 없는 모델에서 자치경찰사무를 관장해야 하는 위원회의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어 매우 우려스럽다.

사실 경찰공무원법에 따른 위원회의 임용권은 (외부에는 막강한 권한으로 알려져있지만) '구두선'에 불과하다. 임용권을 행사하기 위한 구체적 절차, 예컨대 승진을 위한 승진심사위원회 구성권 등이 미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대서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바로 이 점에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겨우 출범한 자치경찰제의 성공을 경찰청은 과연 기대하기는 하는걸까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난해 연말 자치경찰제 시행을 앞둔 시점에 지구대·파출소(지구대)가 종전 생활안전 부서에서 112치안종합상황실로 그 소속이 변경된 사례도 있다. 또한 자치경찰사무의 상당 부분이 지구대에서 수행되어,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치안 서비스 제공의 핵심 기구임에도 소속 경찰관에 대한 인사권을 위원회에서 배제해버리기도 하였다.

문제는 그로 인해 지구대에서 112신고에 대한 출동·대응 이외 범죄예방 활동을 위한 '방범 순찰'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자치경찰제가 역설적으로 지역주민 맞춤형 치안 서비스의 핵심요소인 방범 순찰 및 지역주민과의 협력을 소극적으로 만들게 되었다는 우려와 비판에 직면해있다.

자치경찰제가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는 현장 경찰관들의 뼈아픈 지적이 있다. 적지 않은 현장 경찰관들은 곧 다시 국가경찰제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치경찰제를 출범시킨 경찰청이 역설적으로 위원회의 기능을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국가경찰제로의 회귀에 대한 시그널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있다.

위원회가 유명무실화되면, 경찰은 비대한 경찰조직의 분산이라는 개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위원회의 실질화는 자치경찰제를 살리는 길이자 경찰조직을 유지하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황문규 경상남도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태그:#자치경찰제, #경찰, #자치경찰위원회, #지구대,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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