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다이는 새 동네로 이사를 옵니다. 엄마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 중이고 아빠는 이삿짐을 정리할 새도 없이 일을 하러 나갑니다. 그래서 다이는 전학날에도 혼자 학교에 갑니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엄마가 있는 병원에도 갑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 같은 건 다니지 않지만 받아쓰기 100점을 받는 똘똘한 구석도 있습니다.

아지트의 추억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중

▲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중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중

▲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중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전학을 온 후 다이에게는 두 명의 절친이 생깁니다. 유진과 민호입니다. 다이가 전학 와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건 이 두 친구 덕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지트에 다이를 데려갑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허름한 컨테이너가 바로 그곳이죠. 이곳은 그들만의 비밀스런 놀이 공간이자 그들을 삼총사로 결속시켜주는 곳입니다.

어른들에게 아지트는 추억의 다른 언어죠. 그곳엔 늘 시간이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 밖에 있지만 바깥 세상과 분리된 채 멈춤과 머무름을 허용해 주는 곳입니다. 내 방에 혼자 있을 때와는 달리 외롭지 않으면서 편안한 곳이죠. 다이와 친구들은 그곳에서 놀기도 하지만 셋이 나란히 누워 낮잠도 잡니다. 달콤한 낮잠의 동지애가 그들의 몸과 마음을 무럭무럭 키워줄 것만 같습니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중

▲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중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받아쓰기 100점 맞은 다이에게 질투를 느낀 재경이가 다이에게 컨닝을 했다며 거짓말을 할 때도 이들의 우정은 발휘됩니다. 유진과 민호는 다이의 편을 들며 재경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죠. 자신을 몰아붙이는 재경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다이에게는 이 두 친구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을 거예요. 이 아이들의 우정은 부러울 만큼 순수하고 정직합니다.

아이들의 세계를 훼손하는 어른

재경이가 다이에게 거짓말을 한 건 사실 재경이 탓만은 아닙니다. 매일 학원에 다니는 재경은 받아쓰기 시험에서 한 문제를 틀리는데요. 그게 맘에 들지 않는 재경의 엄마는 100점을 맞은 다이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는 다이가 컨닝을 했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할 때 저는 재경이 엄마의 태도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주고 받듯 무심히 말하죠. 재경이의 거짓말, 그리고 다이와의 싸움은 이 엄마의 무책임한 발언에서 시작됩니다.

재경이 엄마의 잘못된 개입으로 다이와 재경은 사이가 나빠지고, 급기야 둘이 싸우다 재경이의 안경이 깨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재경이 엄마는 학교에 찾아와 다이에게 사과를 요구하죠. 선생님도, 뒤늦게 찾아온 다이의 아빠도 다이에게 사과하라고 말합니다. 다이는 얼마나 속상하고 슬펐을까요?

이 장면은 어른인 우리가 아이들의 세계를 함부로 재단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 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싸움 자체만 보죠. 그리고 거기에서 누가 힘이 더 세고 누가 당했는지, 거기 까지만 봅니다.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만 말하죠.

그런데 그 아이들이 왜 싸우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에는 소홀합니다. 다이는 자신을 무시하는 재경이 미웠을테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학교로 바로 달려와주는 엄마를 가진 재경이 부러웠겠죠. 재경은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서도 100점을 맞는 다이가 부러웠을 테구요. 다이는 먼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재경 때문에 상처를 받았지만 사과받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이런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재경이가 한 거짓말의 원인 제공자가 자신이라는 그 무거운 진실을 재경의 엄마는 알 수 있을까요?

그들이 사는 세상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중

▲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중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서먹해진 다이와 재경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이 둘의 관계는 어른들은 없는, 아이들만의 비밀스런 여행길에서 자연스레 풀립니다. 예쁜 것을 예쁘게 볼 줄 아는 둘의 공통적인 시선이 그들의 사이를 가깝게 만들죠. 그리고 서로 고마워 합니다. 어른이란 존재가 없는 곳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재생시키는 그 유연함이 참 부럽습니다.

병세가 심각해져 병원을 옮긴 엄마를 찾아 떠나는 다이의 여행길에 친구들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데요. 시아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거리와 버스를 검색하고, 자신의 통장 잔고를 보여주며 다이의 여행 계획을 실천 가능하게 만들어줍니다. 민호는 다이가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앞뒤 재지 않고 동참을 하죠. 재경은 이들의 비밀 여행이 무산될 뻔한 위기에 처했을 때 눈치껏 도움을 줍니다.

이 여행에서 여행자들은 각기 역할과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불안한 시선에서는 세상을 모르고 미숙하기만 한 아홉살이지만, 어른의 시선이 거두어진 그들의 세상에선 어벤져스 부럽지 않은 한 팀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더 많이 사랑한다

어른들은 더 많은 시간을 살았다는 것 때문에 아이들이 세상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다이는 어느 누구도 엄마가 곧 죽을 거란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지만 다이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다이가 멀리 있는 엄마에게 용기내어 찾아가려 했던 것도 다 그 때문이죠. 또, 할머니와 둘이 살던 유진은, 어느날 할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시자 친척 어른들이 자신을 서로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이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재경은 자신의 의지로 친구들과의 비밀 여행에 가담하지만 자신을 야단만 치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는 중도 포기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단지 엄마가 무서워서일까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 어떤 것이든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믿음이 바로 그들이 부모를 사랑하는 방식인 거죠.

이 영화에서 재경의 엄마는 잘못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재경은 엄마의 잘못된 모습을 스스로 걸러내면서 친구와의 우정을 지킬 줄도 아는 아이로 성장합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우리 어른들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잘 성장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이건, 어른인 우리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즐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중

▲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중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아홉살 아이들에게도 즐겁고 재밌는 일만 있지는 않습니다. 죽음, 상처, 원망, 질투, 기다림 같은, 어른들도 겪기 힘들어하는 일들이 이들에게도 있죠. 독서교실 선생님인 김소영 작가는 그녀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 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 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라고요. 그런데 어른들과 다른 점 하나가 있습니다. 그들은 상처를 털고 일어나 즐거울 준비가 되어 있죠. 그 진취성과 역동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잡한 감정들을 곱씹으며 집에 갔다가
다음 날이면 모든 것을 깨끗이 잊고
어린이는 다시 놀이터로 달려나간다.
나는 이런 순간들이 어린이가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61p
덧붙이는 글 기자 본인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https://blog.naver.com/fullcount99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리뷰 아이들의 우정 어린이들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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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떠오르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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