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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소녀상'은 전시장에 홀로 남겨지고 말았다.
▲ "우리들의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의 "평화의 소녀상" 이번에도 "소녀상"은 전시장에 홀로 남겨지고 말았다.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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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일본의 공공시설에서 관객들과 만나게 된 '평화의 소녀상' 등을 전시하는 '우리들의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부자유전)'가 전시 기간인 11일을 넘겨 종료되고 말았다. 전시 3일째에 있었던 '폭죽 추정물' 배달 소동으로 인해 임시 중지된 후, 재개되지 못한 채 폐막됐다.

이번 전시회는 '평화의 소녀상'을 비롯해 일본 천황제를 다룬 '원근을 감싸 안고'와 아시아의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안세홍 작가의 사진 작품이 전시됐다. 이 세 작품 모두, 지난 2019년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우익의 집중적 공격대상이 됐던 작품이다. 전시 주최단체인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를 잇는 아이치의 모임(아이치의 모임)'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일본이 마주해야 할 어두운 역사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이 세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우익의 방해행위는 애초 어느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그래서 주최 측은 갤러리, 경찰과 안전확보를 위해 거듭되는 협의를 진행했고,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시의 연락망 구축도 면밀히 정해놓은 상태였다. 행사 진행요원 또한 다른 전시회보다 훨씬 많이 배치해 안전에 온 힘을 쏟고, 전시장에도 변호사가 교대로 상시 대기하는 등 만일에 있을 사태를 대비해왔다.

하지만, 전시를 중단하게 만드는 '문제'는 주최 측이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부분에서 발생하고 말았다. 폭죽물로 추정되는 소포가 도착했다. 갤러리 쪽에 도착한 봉투를 주최 측이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끝까지 서로 책임을 떠넘긴 나고야시와 경찰... 그러다 전시는 끝났다 
 
전시 마지막 날인 11일, 전시 재개가 없음을 알리는 나고야시의 최후 통지를 받고 시민들이 나고야 중심가인 사카에에서 긴급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전시 마지막 날인 11일, 전시 재개가 없음을 알리는 나고야시의 최후 통지를 받고 시민들이 나고야 중심가인 사카에에서 긴급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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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폭죽 추정물이 들어 있는 우편물은 경찰의 입회하에 갤러리 관계자가 개봉했다고 한다. 위험한 물건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경찰은 왜 갤러리 관계자가 개봉하도록 나뒀을까? 이 부분에서, 경찰이 안전을 위한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엔 의문부호가 뒤따른다.

전시가 일단 중단된 뒤에도, 주최 측은 이번 사태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안전확보를 통한 조속한 전시 재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나고야시는 '경찰의 안전확보에 대한 확인이 없으면 재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경찰은 '갤러리의 요청이 없으면 개입할 수 없다'면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그렇게 시간만 허비하는 와중에 전시 기간은 만료되고 말았다. 전시 중단에 대한 공식 통보도, 중단이 된 지 하루가 지나 주최 측에 단 석 줄짜리의 통지가 전해졌을 뿐, 자세한 설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2019년의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전시 중단 당시부터, '아이치의 모임'은 시민들 자신의 힘으로 반드시 전시회를 열자고 다짐하고 준비해왔다. 이번 전시회는 그런 시민들의 오랜 노력의 결실로써, 6일 동안 연인원 120여 명 가량의 자원봉사자가 함께할 예정이었다.

앞서 행사의 재정 마련을 위해 한 달가량 진행된 크라우드 펀딩도 전국 각지의 지원으로 처음에 목표했던 100만 엔을 넘어, 최종적으로 120만 엔(약 1200만 원) 이상을 달성했다. 관객들 또한 매회 거의 만원이 돼 중지되기 직전일만큼 많이 찾아왔고, 이틀 동안 800여 명이 넘는 시민이 전시장을 찾아서 성황을 이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과 노력이 있는 전시회가, 폭죽 추정물이 배달됐단 이유로 중단되고 재개되지 못한다면 과연 일본에서 안심하고 개최할 수 있는 전시회가 더 있을지도 의문이다. 안전만큼, 부당한 폭력과 방해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 또한 공권력의 역할이다. 일본의 최고재판소(대법원)의 판례에도 '경찰의 경비에 의해서도 혼란을 막는 것이 불가능한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만 장소 사용의 중지가 가능하다고 제시돼 있다.

하지만, 나고야시는 거듭되는 주최 측의 재개 요청과 행사자의 안전상황에 대한 질문에도 고개를 저었다. '경찰의 공식발표가 없었다' '보도된 내용 이상은 모른다' '위험 상황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답변만 되풀이한 것이다. 결국 나고야시는 전시장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사실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시민 안전'을 내세워 전시를 중단시킨 것으로 보인다.

전시주최 측, 나고야 시청 항의 방문... 우익의 방해로 취소되는 행사들

'아이치의 모임'은 실행위원들은 12일, 나고야 시청을 방문해 항의문을 전달하고, 전시 중단 이후 무책임과 무성의로 일관한 나고야시의 태도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또한 중단된 4일간의 전시를 재개하기 위한 협의에 즉각 응할 것을 요청했다.

이번 18일에는 항의 집회를 열어 나고야시의 재개를 요구하는 한편, 소녀상 실물 크기의 사진과 안세홍 작가의 작품 일부를 설치해 시민들에게 전시장의 일부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그 외에도 전시가 실제로 재개되기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우익들의 방해로 전시회가 중지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번 '부자유전'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중지나 취소는 단지 우익들의 방해 때문만은 아니다. 마땅히 그런 불법적인 폭력행위를 막아야할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자들이, 오히려 나서서 역사를 왜곡하고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발언을 거듭해 온 것 또한 그 배경이 됐다.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만 해도 '난징대학살'을 부정하고, 2년전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 '소녀상'이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다고 발언한 당사자이다. 이런 근본적 문제들이 달라지지 않고 일본 사회에서 온전한 '표현의 자유'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나고야 '부자유전' 전시 중지는, 다시 한번 일본 사회 역사인식의 현주소를 보여준 셈이다.

이런 일본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이 사회에 걸쳐 있는 역사왜곡과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두터운 벽이, 시민들의 노력으로 걷어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나고야시가 주최측에 보내온 단 석줄짜리 사용정지 통지. '시설 안전관리상 지장이 생겨 11일까지 임시휴관한다는 내용이 전부이다.
 나고야시가 주최측에 보내온 단 석줄짜리 사용정지 통지. "시설 안전관리상 지장이 생겨 11일까지 임시휴관한다는 내용이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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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나고야시에 항의문을 전달하는 '아이치의 모임' 대표 구노 아야코씨
 12일, 나고야시에 항의문을 전달하는 "아이치의 모임" 대표 구노 아야코씨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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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마지막날, 나고야시의 전시재개 불가 최종 통보를 받고 회의를 열고 있는 '아이치의 모임'
 전시 마지막날, 나고야시의 전시재개 불가 최종 통보를 받고 회의를 열고 있는 "아이치의 모임"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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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2년전 수난당한 '평화의 소녀상', 다시 일본에 선 날 http://omn.kr/1ucbo
이틀만에 갇힌 나고야 '소녀상'... 두가지 석연찮은 점 http://omn.kr/1ue12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시주최 단체인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를 잇는 아이치의 모임' 실행위원입니다.


태그:#평화의 소녀상, #우리들의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일본 나고야 ,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 #아이치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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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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