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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항에서 사망한 고 이선호군의 유족들께서는 평택에 있는 안중 백병원에서 여전히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빈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력 정치인들이 다녀갔지만 앞으로 잘하겠다는 이야기일 뿐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산재예방점검 티에프를 구성하여 산업안전보건청을 신설하겠다, 항만안전감독관을 두겠다는 등의 대책을 언론을 통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고 그러한 선언에서 한 발도 못 내딛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안중 백병원까지 찾아오셔서 유족을 조문하시고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산업안전을 더 살피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더욱이 대통령께서는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이번 사고가 평택항이라는 공공 영역에서 발생한 사고인 만큼, 고용노동부 뿐 아니라 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와 기관이 비상하게 대처해 안전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하신 것으로 보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이후에도 노동 현장에서 산재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고 이선호군 산재 사망 이후인 지난 4월 23일부터 6월 7일까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공식 통계만으로도 51명이 노동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초일류 기업이라고 자랑하는 삼성의 노동 현장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6월 3일 아침 7시 30분경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는 평택시 고덕면의 삼성반도체 건설 현장에서 야광 조끼를 입고 도로 위에서 덤프트럭들에 수신호를 주던 47세 남성이 뒤에서 오던 20톤 지게차의 거대한 바퀴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숨진 그는 삼성물산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당 10만 원을 받는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지게차 기사 역시 삼성물산의 또 다른 협력업체 소속이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고 이선호 군 사고와 크게 다른 것이 없습니다. 위험한 업무가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외주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기업은 비용 절감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위험한 일은 모두 비정규직에게 떠맡기고 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내자는 사회적 요구는 아주 쉽게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습니다. 더욱이 기업은 인력을 감원하고 업무 강도는 높여, 위험 속에 노동자들을 무방비 상태로 내몰고 있습니다.

구의역 김군이 그랬고 태안화력발전 고 김용균이 그랬으며, 건설노동자 김태규가, 청년 장애인 노동자 김재순이 그랬습니다. 스물세 살 고 이선호군의 죽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왜 매번 맞닥뜨려야 하는 것인가요? 노동자들의 목숨과 안전은 기업의 이윤보다 늘 뒷전이어야 하는 것인지요.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양산하는 위험의 외주화를 당장 막아야 합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더욱 더 인력을 충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안전에 더 많은 비용을 쓰도록 해야 하고 안전에 신경 쓰며 천천히 일해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 다른 이선호가 더 이상 다치고 죽지 않도록,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선호군의 영혼이 외롭지 않게, 이선호군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더 이상 노동현장에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로 한 해 2400여 명이 사망하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 1위를 21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뤄낸 경제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왜 우리는 늘 다른 이의 죽음과 고통에 기대어 그나마 이렇게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인지요?

더 이상 제2, 제3의 이선호군과 같은 죽음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 재해를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즉, 원청이 위험을 하청 업체로 외주화하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평택항뿐만 아니라 노동현장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는 불법도급과 불법파견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반드시 재개정해야 합니다. 지금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에나 시행이 됩니다. 그것도 50인 이하 사업장과 50억 이하 건설 공사 사업장은 3년 후에나 시행됩니다. 더욱이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되지도 않습니다.

산업안전법 위반 재발률이 무려 97%에 달하며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장에 대한 처벌 가운데 실제 실형이 선고된 비율이 0.4%밖에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업이 법 위반으로 내는 벌금은 평균 450만 원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재사망 사고가 80%에 이릅니다. 이렇듯 중대재해처벌법을 재개정하고 시행령 속에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고 이선호군의 유족과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대책위원회에서 장례를 치르지 못 하고 49일째 빈소를 유지하며 49재를 이렇게 광화문 앞 정부종합청사에서 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인 김기홍 민주노총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위원장입니다.
<한겨레>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고 이선호, #김기홍, #산재사망사고, #중대재해처벌법,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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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위원장, 평택비정규노동센터 소장, 고 이선호님 산재사망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청소년노동인권교육 강사, 안성의료생협 대의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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