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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료사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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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7일 이메일]
부회장님과 GS 미팅 전 논의할 보고서 초안입니다. 해외 자문사 활용 계획이 핵심 내용입니다.
 
검찰 : "증인. 부회장이 보셔야할 보고서를 왜 제일모직에서 삼성증권으로 보내주고 또 이걸 상부에 보고하나요?"

변호인 : "잠시만. 검사가 질문할 때 너무나 당연하게 부회장과 GS 간 미팅이 있었다고 전제합니다."

(중략)

검찰 : "아니 증인과 변호인까지 부회장 이야기만 나오면..."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박사랑 권성수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4차 공판. 오전 재판 마무리께, 실무진 메일 속 첨부된 보고서 하나를 증거로 채택할지 말지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메일 속 부회장님 앞 숨은 주어는 '이재용'. 'GS'는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의 해외 경영 자문사인 '골드만삭스'였다.

엘리엇 출현 시점, 이재용은 왜 골드만삭스 만났나

첨부된 문건의 이름은 '엘리엇 대응계획'이다. 보고서의 작성 주체는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의 간부 황아무개씨. 증인으로 나선 삼성증권 IB 출신 한아무개씨가 제일모직 간부로부터 받은 문건을 미전실에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상사에게 송부하며 작성한 메일이다. 삼성물산 지분을 7.12% 보유한 주주이자,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적극 반대하며 합병의 불공정성을 제기한 상황이었다.

삼성증권은 삼성물산 주주인 엘리엇에 대한 대응 논리를 왜 제일모직 간부에게 요구하고, 또 이를 미전실에 전달했을까. 또 이 부회장이 골드만삭스와 만나기 전, 왜 이 보고서가 논의돼야 했을까. 검찰의 의문이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이 시기 합병 무산 여론이 확대되자 골드만삭스와 관련 대응을 논의하는 등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소장에선 해당 메일이 오고간 다음날인 2015년 6월 8일, 이 부회장이 골드만삭스 미국 본사 소속 직원과 대책회의를 진행, "합병 성사를 위한 대응 전략을 검토했다"고 파악했다.

증인은 제일모직이 이 과정에 개입된 이유에 대해 "엘리엇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도 양사 합병을 준비하고 있었고, IR(기업 설명)은 공동으로 한 것도 많아 긴밀하게 협조해온 것 같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해당 문건 작성에 증인도 관여한 것으로 보고, 대응 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공판에선 엘리엇의 등장으로 합병을 급박히 추진한 과정에서 나온 그룹 안팎의 우려가 공식 문건들을 통해 제시됐다. '제일모직만을 위한 합병'의 대표적인 근거로 꼽히는 삼성물산 자기주식 KCC(제일모직 2대주주) 매각과 관련, 대형 로펌 김앤장의 '법률 리스크' 의견이 대표적이다. 김앤장은 해당 문건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처분 관련 대법원 판례는 없다"며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각에 법률적 우려를 삼성증권 측에 전달했다.
 
- 매우 짧은 기간에 매각돼 엘리엇 대응 방안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음
- 자사주 매각 자체가 경영권 분쟁 중 행위로 비춰질 가능성 높음
- 자사주 매수자는 선의로 매수했다고 주장하기 어려움
- 이사회가 부당하게 주주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것으로 판정될 수 있음
- 자사주 매각은 처분 공시 1일 후 가능하기에 엘리엇 측에서 더 높은 가격으로 매수하겠다고 삼성물산에 제안하며 처분 의미 퇴색할 가능성
 
검찰은 이 같은 법률적 우려에도 미전실이 엘리엇 출현 이후 무리하게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을 추진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날 증인에게 "엘리엇 등장 이전에도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게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 있냐"고 재차 따졌고, 증인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검토한 적은 없다"고 했다. 다만 증인은 "시장에서도 엘리엇이 들어와 경영권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자사주매각도 그 일환으로) 아이디어를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번호부터 주소까지... '삼성물산 주주 명부', 합병 과정에 쓰였을까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2020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2020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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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전실과 소통하는 삼성증권 실무팀이 PB를 동원한 삼성물산 주주 의결권 확보방안에 대해 사내 법무팀의 의견을 구한 흔적도 등장했다. 삼성증권 간부가 증인에게 요청한 자료다. 법무팀 관계자는 "PB들이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 관련 고객들에게 찬성 취지로 의결권 행사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에 "불가하다"고 판정했다.

▲대주주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 ▲이해상충권리의무위반 ▲불건전 영업행위 ▲신의성실의무위반 등이 그 이유로 제시됐다. 다만 증인은 "고객 정보로 직접 의결권 권유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정보 제공 동의를 받아 삼성물산에 넘겨주고 (주주들과의) 미팅을 마련하거나 접촉하도록 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취지로 검토됐다"고 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삼성증권 PB를 동원, 삼성물산의 고객정보를 합병 과정에 불법적으로 이용했다고 봤다. 검찰은 특히 이날 삼성증권 실무자가 증인에게 보낸 메일 속 첨부된 '주주명부'를 제시하기도 했다. 해당 명부에는 주주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 개인 정보가 표로 기재되어 있었다. 파일명은 '주주명부분석', '3천주, 5천주 개인-법인 특정 PB' 등이었다.

검찰의 "개인정보가 담긴 명부를 받아 이용하는 것에 법률적 문제가 있는 지 확인했냐"는 질문에 증인은 "주주 명부를 분석해 그 구성과 개괄이 어떤지, 이런 작업을 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변호인 측 "삼성증권 입장에선 삼성도 고객일뿐"

이날 공판에선 피고인 측 반대심문도 진행됐다. 변호인들은 삼성증권 미전실로부터 명령을 하달받은 소속사가 아니라, 자문사로써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반격했다. "삼성그룹도 하나의 고객으로 관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증인도 이 같은 기조의 질문에 줄곧 "맞다"는 답변을 이어갔다.

변호인 측은 또한 다른 그룹의 매각과 합병을 자문한 것과 마찬가지로, 삼성 측도 삼성증권과 자문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방식으로 자문료를 지급했음을 강조했다. 반대심문에 앞서 변호인이 "짧게는 6년, 길게는 10년 전 일이라 증인이 기억을 잘 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언급한 대목에선, 검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편, 한아무개 증인에 대한 변호인의 반대심문은 오는 10일과 17일에 걸쳐 다시 이어질 예정이다. 검찰의 재주신문까지 이어 진행될 것을 감안하면 한아무개 증인에 대한 심문은 6월 내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태그:#이재용, #삼성전자, #합병, #불법승계, #경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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