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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서 '한 달 살기'를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났다. 2월 말, 이곳에 도착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절반의 시간이 지난 것이다. 한 달 살기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지친 삶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

치앙마이, 마닐라, 발리, 다낭 등 동남아부터 파리, 런던, 류블랴나, 트빌리시 등 유럽의 도시까지 나이와 취향에 따라 목적지를 선택하여 한 달 살기를 떠났던 여행자들의 발길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국내로 향하고 있다.

최근 제주도 뿐만 아니라 통영, 여수, 춘천, 경주, 속초 등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곳들이 한 달 살기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신을 충전할 기회를 갖는 한 달 살기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정착된 것이다.
   
산과 호수의 조화
▲ 청초호와 설악산 산과 호수의 조화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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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를 계획하다

직장에서 퇴직한 후 3년이 지나자 생활 반경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자유롭게 여행도 할 수 없으니 매일의 생활이 감옥 아닌 감옥에 수감된 느낌.

매일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TV를 시청하는 것으로 소일하다 보니 마음에 병이 생길 것 같았다. 밥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았고 책을 읽어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때 불현듯이 생각한 것이 '한 달 살기'.

집사람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니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 인간"이라고 지청구만. 시차를 두고 몇 번을 이야기하니 마지못해 승낙하였다.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어디를 가야 할지?',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등 생각이 많아지자 삶의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한 달 살기 카페에 가입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니 마음은 이미 한 달 살기를 떠난 듯하였다. 가고 싶은 지역은 산과 바다를 모두 볼 수 있으며 집세와 물가가 저렴하고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곳. 몇 지역을 비교하여 내린 결론은 '속초'.

속초는 서울 양양 고속도로 개통으로 수도권에서 접근이 쉬우며 설악산과 동해 바다, 호수와 온천, 해수욕장과 항구가 어우러졌고 먹거리 또한 풍부하다. 주말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여유롭게 힐링을 할 수 있는 작은 도시. 더구나 동해안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이나 속초 사잇길이 있어 걷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숙소에서
▲ 풍경 숙소에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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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결정하자 다음은 숙소 예약. 선택 조건은 저렴하면서도 바다를 볼 수 있고 교통이 편리하며 시장이 가까운 곳. SNS에는 민박, 펜션, 호텔 등 다양한 숙소가 소개되었지만 '싸고 좋은 곳은 없다'라는 말처럼 숙소가 마음에 들면 가격이 문제였고 가격이 저렴하면 입지 조건이 좋지 않았다.

어렵게 찾은 곳이 청초호 인근 레지던스 호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숙소에서 설악산과 청초호 그리고 동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것. 물론, 펜션이나 민박과 달리 취사도구가 부족하고 방의 크기가 작아 불편해 보였지만 혼자 살 예정이라 결정하였다.
 
시집 몇 권, 여행 서적 몇 권
▲ 함께한 책 시집 몇 권, 여행 서적 몇 권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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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목적을 가진 한 달 살기가 아니어서 가서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니 막막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도 아니며 등산이나 해양 스포츠를 할 생각도 없으니.

단지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탈피하기 위한 것이 유일한 목적일 뿐. 좋아하는 여행 서적과 시집 몇 권을 가져가기로 하였다. 무엇을 하며 매일을 보낼지는 가서 결정하기로 하고. 미리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고 궁하면 통하는 것이 세상 이치라 믿으며.

한 달 살기를 떠나면서

떠날 날짜가 다가오자 집사람도 밑반찬을 만들고 숙소에 없는 취사도구와 욕실 용품을 챙기면서 나보다 더 바쁜 모습이었다. 혼자 떠나는 나에게 이기적이라고 잔소리를 하였지만 내심 불안한가 보다.

나는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말없이 지켜볼 뿐이다. 떠날 날이 되자 도저히 배낭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캐리어까지 동원했다. 짐의 부피와 무게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승용차로 출발하였다. 배낭 무게와 여행의 재미는 반비례한다는데 언제나 단출하게 떠날 수 있을지!
 
한 달 살기를 떠나면서 꾸린 나의 짐
▲ 짐을 꾸리다. 한 달 살기를 떠나면서 꾸린 나의 짐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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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을 넘어 속초에 도착하였다. 숙소에서 보는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청초호와 동해 그리고 설악산을 모두 베란다에서 볼 수 있었다. 밖을 바라보는 순간 "속초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를 정리하고 시내를 한 바퀴 돈 다음 마트에 들러 부족한 물품을 구입하고 여행안내소에 들러 여행 리플릿을 받아 숙소로 돌아왔다.
 
속초 중앙시장(관광수산시장)
▲ 시장 모습 속초 중앙시장(관광수산시장)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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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첫날 밤
▲ 아경 속초 첫날 밤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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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릿과 인터넷을 검색하여 가야 할 곳을 정리하니 '동아서점, 문우당, 갯배ST, 칠성 조선소, 설악산책, 북스테이 숲 휴게소, 속초 사잇길, 화진포, 해파랑길, 크레프트루트 등' 속초와 고성의 다양한 장소들이 검색되었다. 속초에 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짧은 여행을 왔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보석 같은 장소들이 눈에 띄었다.

국내 여행을 많이 하였지만 한 지역에서 한 달을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 동안 여행자인 동시에 동네 주민처럼 살아야 한다. 한 달 동안 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하였지만 규칙적인 생활, 많이 걷기, 끼니는 직접 해결, 가지고 온 책 다 읽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이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저녁밥을 챙겨 먹고 있자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이곳에 '혼자' 있는 것인가 아니면 '홀로' 있는 것인가? 문법상으로는 명사와 부사의 차이를 제외하고 의미는 같지만 느낌상의 차이는 천양지차.

'혼자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홀로 있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닌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살아갈 날에 대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온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니 위안이 되었다.
 
속초에서 첫 식사
▲ 식사 속초에서 첫 식사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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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께서도 '버리고 떠나기'라는 책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라. 홀로 있어야만 벌거벗은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속초에서의 한 달 살기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올 2월 28일부터 3월 30일까지 속초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습니다.


태그:#속초,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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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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