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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작은 농촌에서 태어났다. 바다를 연하고 있던 마을이었지만, 인구의 대다수는 농부들이었고, 농부가 아닌 어른들은 선생님이거나 관공서의 공무원들뿐이었다. 부모님은 땅에서 하는 일을 우리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고향을 떠나야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나는 고향을 떠나고 싶었다. 누구나 부모를 떠나고 싶어 하게 된다는 사춘기의 반항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할 줄 아는 나이가 된 후로는 고향을 떠나는 것이 당연했다. 중학교를 마치면서 유학을 떠났고, 그 후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30년을 살았다. 

그후 30년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1962년에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였습니다. 전쟁 이후 일본의 산업화를 교과서로 삼아서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고 있었지요. 저는 1989년에 고향을 떠났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네요.
▲ 1인당 국민총소득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1962년에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였습니다. 전쟁 이후 일본의 산업화를 교과서로 삼아서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고 있었지요. 저는 1989년에 고향을 떠났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네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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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1970년대의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300만 원에 불과했다. 2019년의 통계가 3500만 원으로 나오는 걸 보니, 당시의 대한민국은 꽤나 가난한 나라였다. 나의 고향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웃을 둘러봐도 다들 고만고만하게 가난했다. 하루 종일 밭일에 지친 엄마가 저녁을 준비할라치면, 나는 동전 몇 개를 들고 동네 한가운데의 조그만 시장으로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갔다.

누군가의 집에서 길러 나온 콩나물과 두부가 넉넉하게 쥐어졌고, 엄마의 곤로 위에서 뚝딱뚝딱 저녁 반찬으로 변신했다. 어른들이 밭일이라도 하는 날에는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오는 것도 중요한 심부름이었다. 마을마다 하나씩 있던 양조장에선 우리 동네만의 막걸리가 만들어졌고, 이웃의 정이 넘칠 만큼 가득 담긴 주전자는 집으로 가는 동안 조금씩 흘러넘쳤다.

모두가 가난한 시골마을의 평범한 날들이었다. 저녁 만화를 보기 위해서 하루 종일 들에서 놀던 발을 급하게 씻고, 이웃집 안방으로 쳐들어가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다. 모두가 비슷했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비슷비슷했던 농촌의 풍경을 급하게 걷어내며 여기저기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수많은 공장들을 세웠다. 농업 위주의 마을들은 공장의 굴뚝과 담장을 중심으로 새롭게 변모했다. 1990년대에 국민소득을 1000만 원으로 급하게 끌어올린 동력은 논과 밭을 갈아엎고 세워진 2차 산업의 공장들이었다.

높은 담장의 공장들은 수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공장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들며 도시를 만들어냈다. 상대적으로 쇠락해가던 농촌의 아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야 했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나의 고향마을은 세상의 변화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아이들은 늙어가는 부모에게 고향을 맡긴 채 점점 더 도시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원해서' 고향을 떠난 것일까? 

전혀 다른 고향을 상상하는 이유
 
고향집의 흔한 일몰.
 고향집의 흔한 일몰.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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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턴 전혀 다른 고향을 상상해보자. 코로나19의 위기가 강요하는 '변화'를, 산업화 이후로 쇠락해가는 나의 고향에 대입해 봐야겠다. 대한민국에는 수도권으로 대표되는 대도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그 삶이 이어져온 우리네 시골과 지방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30년 넘게 떠돌이로 살았더니, 고향의 품에서 위로를 받아야겠다. 방법을 찾고 싶다. 

"내려오면 뭘 하려고? 여기엔 일이 없어."

회사를 그만두면 고향에 내려와서 살겠다고 했더니, 엄마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운이 좋아 회사에서 정년까지 다닐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점점 늘어나는 기대수명을 고려하면 은퇴 후의 만만치 않은 시간 동안을 견뎌야 하고, 소득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요즘 이야기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정착되는 것을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고향에서 가능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초등학교 전교생이 30명이나 되나?"

요즘의 시골에는 아이들이 없다. 아이가 없다는 것은 젊은이들이 없다는 것과도 통한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한 반에 50명씩 세 반이나 있었는데, 그동안 많이도 줄어들었다. 지금까지 모든 미래가 도시에서 시골로 전파되었지만,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나라로서의 대한민국'은 나의 고향에서 한참 먼저 시작되었다. 

"젊은이들이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니? 외국인 노동자들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어."

고향에서 일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은, 역시 농업이다. 하지만 농업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일자리가 아니라서 대부분 어르신들의 몫이고,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을 빌려 농작물을 생산한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덕분에 점점 늙어가는 대한민국을 젊게 하는 대안이었던 이민 인구의 유입도, 시골이 먼저다.

"70가구나 되려나? 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살고 있지."

점점 늙어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시골에선 이미 현재형이다. 올해로 일흔여덟이신 나의 엄마도 다른 할머니들에 비해서는 한참 젊으신 편이라, 동네의 다른 어른들을 보살펴야 한다.

초고령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실행해야 하는 정책들이 있다면, 지방에서 먼저 시험해 보기를 원한다. 노인들만 가득한 마을을 기술만으로 보살필 수 있는지,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연습해보는 것은 어떨까?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지역의 사람들하고 섞이지는 못해."

언제부터인가 고향의 산들이 깎여나간 자리에 전원주택들이 들어섰다. 도시생활에 지친 은퇴자들이 제2의 삶을 위해 선택한 곳이라는 게 나쁠 리는 없지만, 고향의 원주민들과 섞여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없다 보니 새로운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원주민들과 이주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일자리를 기대한다. 분명 마을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방에서 먼저 실험해 보는 미래 사회
 
지역에서도 정상적인 노동계약에 기반하여 고용하고, 시골의 빈집들을 숙소로 제공하는 것은 어떤가?
 지역에서도 정상적인 노동계약에 기반하여 고용하고, 시골의 빈집들을 숙소로 제공하는 것은 어떤가?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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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돌아가기 위한 상상을 하다 보니, 쇠락해가는 지방에서 준비해야 하는 미래를 시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금껏 모든 정책 시험에서 도시가 우선이었다면, 이젠 지방으로 눈을 돌릴 때이다. 우선, 초고령 사회에 대한 정책을 확인하자.

지역의 노인들에 대한 돌봄 정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상시 의료체계를 정비해보자. 스마트기기에 의한 원격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현재의 의료체계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시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혹시라도 기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돌봄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여기에 더하자면, 새로운 일자리가 원주민과 이주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지역의 프로그램들을 통해서도 만들면 좋겠다. 그들이 함께 동네의 시장이나 문화행사를 운영하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자, 이제 새로운 일자리의 가능성이 생겼으니, 사람들을 끌어들여보자. 힘든 농사일을 돕기 위해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제대로 된 대우를 약속해야 한다. 정상적인 노동계약에 기반하여 고용하고, 시골의 빈집들을 숙소로 제공하는 것은 어떤가? 혹시라도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동네의 어르신들이 그들에게 마련해 주는 것도 방법이다.

국가가 주도하여 지방이 먼저 맞이한 미래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이를 운영하기 위한 고용을 창출할 수만 있다면, 지방은 잃었던 활기를 되살릴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나이도, 출신 지역도, 국적도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 활기를 찾은 지방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미래는 점차 도시에도 긍정적인 효과로 전달될 것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의 대한민국에는 도시와 농촌이 크게 구별되지 않았다.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것은 공업화 때문이었고,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은 양극화의 한 가운데에서 고통받고 있다. 2020년의 대한민국을 괴롭히는 난제인 고령화나 부동산, 일자리의 문제는, 도시에만 집중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

지방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해법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도시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지방에서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60년의 세월을 돌아, 다시 지방과 도시가 구별되지 않게 해야 한다. 우선 나부터,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제대로 꿈꿔볼까나.
 

태그:#일상 비틀기, #대한민국의 오래된 미래, #고향으로 돌아가기, #대한민국의 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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