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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3일자 정부합동 보도자료
 2021년 3월 3일자 정부합동 보도자료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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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고용노동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외국인근로자 근로여건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작년 12월 20일 사업주 제공 기숙사에서 사망한 고 속헹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BBC, AP통신 등 외신도 가세한 보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대책이라 여러 기대를 모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외국인근로자의 근로여건 개선을 위해 내놓은 대책은 크게 세 가지다. ➀건강보험 사각지대 해소, ➁사업장 변경 시 외국인근로자의 책임 없는 사유 확대, ➂주거환경 개선 이행기간 부여 대책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정부의 대책에 대해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이주노동자의 근로여건을 개선시킬 수 있을까?

직장인인데도, 직장건강보험 아닌 지역건강보험 가입?

사업자등록이 없는 농축산어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직장건강보험 가입이 불가능하고, 2019년 7월 16일부터 지역건강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었다. 그런데 입국 후 6개월이 지나야 가입이 가능하기에 6개월 동안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공백이 생겼다. 입국 즉시 지역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하도록 한 이번 대책으로 6개월이라는 건강보험 공백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농축산어업 분야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엄연히 근로자임에도 사용자가 사업자등록이 없다는 이유로 '직장건강보험'으로 편입될 수 없다는 점이다. 비영리민간단체의 경우 사업자등록을 대신하는 '고유번호증' 제도가 존재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의 직장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농축산어업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사용자의 사업자등록 유무와 상관없이 이를 대체하는 제도를 통해 직장건강보험 편입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도 직장건강보험 편입은 빠졌다. 결국 매월 13만 원의 지역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이주노동자는 이번 대책에도 불구하고 매월 10만 원이 넘는 보험료를 계속 내야 한다. 가장 열악한 처지의 이주노동자가 임금대비 제일 높은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는 건 공정하지 않은 처사다.

사업자 변경 자유 없는 사유 확대로 인권침해 막아낸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사안이 세상에 알려질 때마다 '사업장 변경' 사유의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사안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2019년 외국인고용법개정으로 비닐하우스 숙소 제공의 경우 '사업장 변경' 사유로 추가시켰지만 속헹씨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했던 것을 볼 때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개선되지 않은 건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는 사유의 개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단체 활동가도 매년 변경되는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정확하게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주노동자들이 추가되는 새로운 사업장 변경 사유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서 알뜰하게 이용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사실관계에 대해 사용자와 이주노동자의 주장이 다를 때 그 사유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그 신청권을 마음껏 써먹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업장 변경의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이라는 현행 외국인력제도(고용허가제도)의 독소조항이 계속되는 이주노동자가 인권침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기에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이주인권단체의 목소리에 정부는 한 번쯤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4년 10개월로 한정된다. 사업장 변경에 소요되는 시간(2개월 이상)을 4년 10개월에서 빼주지 않기에 인권침해 등의 문제가 없음에도 그 시간을 허비하며 사업장 변경을 감행할 이주노동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허용되면 이주노동자들의 잦은 이직으로 사용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괴담' 수준의 주장에 고용노동부가 설득당하고 있다는 건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6개월 유예기간...기존 가설건축물 숙소에 대한 정당화 기간?

고용노동부는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행기간 6개월을 부여했다. 이행기간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가설건축물' 기숙사 허용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기에 이행기간은 사실상 기존 숙소를 정당화시키는 기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불법 가설건축물'은 이주노동자 기숙사 제공을 금지시키겠다고 하나, 지자체에 신고필증을 받은 가설건축물은 이주노동자 기숙사 제공허용 방침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의원 고영인 의원실의 질의에 답변한 내용과 같이 건축법상 가설건축물은 임시숙소로 사용가능할 뿐 노동자가 거주하는 기숙사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그럼에도 가설건축물의 설치장소가 비닐하우스 '안'인지 '밖'인지를 구별하고, 건축법상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도 설치할 수 있는 가설건축물을 불법, 합법으로 구별하면서 비닐하우스 밖에 설치되고 지자체에 신고된 가설건축물을 이주노동자 기숙사로 계속 허용하는 방침을 유지하는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철회되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기숙사 관련 규정을 둔 근로기준법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되도록 힘을 쏟아야 하는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에 포천시 같은 지자체는 연말까지 유예기간을 둔다고 발표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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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헹씨가 세상을 떠난 지 70일이 지났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1.6 대책에 이어 3.2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대책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과 건강권의 보장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정부의 3.2 대책에 대한 논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나마 이러한 미흡한 대책도 이주노동자들의 희생과 이주인권단체들의 문제제기와 지속적인 대책마련 요구 활동으로 인해 나온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고 속헹님의 죽음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피해와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온전한 권리보장을 실현하는 길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들과 손잡고 함께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속헹씨 죽음 70일...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여건은 개선될 수 있을까? 그건 얼마나 치밀하게 정부에 질문을 던지느냐에, 얼마나 치열하게 정부의 답변을 받아내느냐에, 그리고 얼마나 지독하게 그 답변이 지켜지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태그:#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이주노동자 근로여건 개선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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