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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라고 하지만 예년과 같지 않은 설 연휴가 끝났다.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자기 자리에서 삶의 질서를 찾아 살아간다. 나이 든 우리 부부야 맨날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번 설은 자녀들과 형제들도 만나지 못해 유난히 쓸쓸한 설을 보낸 날이었다.

자녀들과의 만남과 세배, 모든 걸 랜선으로 했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막내네 가족부터 시작해서 셋째 딸, 둘째 딸까지. 그러나 뉴욕에 살고 있는 큰딸은 통화를 못 했다. 뉴욕에서는 음력을 모른다. 그러니 음력설이 언제인지 알 리가 없다. 큰딸네와 영상통화를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날마다 아침을 먹고 나면 걷기 운동을 한다. 곁에서 보호해 주는 자녀들도 없고 아프면 힘든다. 우리 스스로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운동이다. 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서 동네를 걷고, 그렇지 않고 날씨가 춥거나 미세먼지가 심하면 집 안에서 걷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운동을 끝내고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큰딸에게서 영상통화 벨이 울린다. 맨 먼저 손녀가 보인다. 우리를 제일 반기는 것은 손녀인 카일리다. 전화를 받으며 이제는 영어가 아닌 익숙하지 못한 한국말로 더듬더듬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며 인사를 한다.

우리는 놀라면서 "그래, 반갑다. 너도 잘 있었니?" 하면서 잘 못 알아들을까 봐 또 " How are you" 하고 영어로 인사말을 나눈다. 손녀는 지금은 계속해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고 딸이 말한다.
 
컴퓨터 앞에서 우리가 하는 말, 한글을  검색하고있는 손녀
▲ 손녀  컴퓨터 앞에서 우리가 하는 말, 한글을 검색하고있는 손녀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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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아, 엊그제 여기 설이었다. 모두 영상으로 설 세배를 했는데, 너희하고는 오늘 통화를 하는구나" 하고 말했더니, 딸은 손자 손녀에게 말했는지, 애들 둘이 영상 화면과 멀리서 큰 절로 세배를 한다.

우리 부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박수를 치며 활짝 웃음을 웃었다. 손자 손녀에게 한국말을 듣고 세배를 받다니 기분이 남다르다. 한국의 문화를 알게 되고 우리와 소통을 하다니 울컥해진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소영아, 뉴욕은 어때? 요즘도 시내 사람이 많이 없어?" 하고 궁금해 물어보지만 "우리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생활을 해서 모른다"는 답이 돌아온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철저하게 조심하고 생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먹는 것은 배달시키고, 아이들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소식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선물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항상 뉴욕 소식을 들으면 가슴을 졸인다.

손자 손녀는 한국을 떠날 땐 여섯 살 어린아이였고 우리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우리말을 못하니 친숙할 수가 없었다. 지금, 달라진 모습이 기쁘다. 특히 일 년 전부터 코로나가 오면서 외롭고 힘든 시간 동안 우리를 그리워하고 한국말을 배웠다. 반가운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코로나로 얻는 면도 있다. 사람 사는 일은 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는 것이다. 코로나가 오지 않고 바쁘게 살았다면 놓치고 말았을 일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변하고,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도 변한다. 아주 빨리 디지털 세상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달라지는 세상 속에 나이 든 우리는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부모와 자녀들 관계도 예전과는 다르다. 결혼을 하면 독립된 인격체의 삶이다.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던 때는 지나갔다. 그저 자기 삶을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서로 존중하면서 건강한 거리를 유지할 때 자식과의 관계도 원만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제 나이 든 세대이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며 변화의 물결에 따라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을 살아내는 현명한 생활 방법이 아닐까.

올 설에 자녀들에게 랜선 세배를 받고 달라지는 세상을 체감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낀다. 그 물결에 따라 살아야 한다. 다음에는 어떤 세상이 올지 모른다. 오늘 멀리 뉴욕에서 손자 손녀의 랜선 세배를 받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자녀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손자 손녀, #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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