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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메일 주소 두어 개쯤 갖고 있을 거다. 내게도 몇 개 있으나 그중 두 가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주로 사용하는 것이 다음과 네이버 메일인데, 초창기에 만든 다음 메일은 스팸 메일도 많아서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왜 그 메일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사람 대 사람 간의 텔레파시인 것인지.

모르는 발신자 이름으로 "안녕하세요. 기자님"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보통 알지 못하는 발신자일 경우 체크하고 삭제하기 마련인데, '기자님'이라는 호칭을 보고 시선이 멈췄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를 보고 보낸 메일 같아서 열어보게 되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얼마전 글에 대해 무수히 달렸던 악플이 떠올랐다. '무슨 악플을 메일로도 보내나' 싶어 일순, 긴장이 되었다.

온 몸의 세포가 반응한 독자의 이메일
 
보통 알지 못하는 발신자일 경우 체크하고 삭제하기 마련인데, '기자님'이라는 호칭을 보고 시선이 멈췄다.
 보통 알지 못하는 발신자일 경우 체크하고 삭제하기 마련인데, "기자님"이라는 호칭을 보고 시선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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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자님. 저는 네이버에서 기자님의 글을 읽은 25살 학생입니다. 갑자기 놀라고 당황스러우실 텐데 기자님께서 쓰신 '망설이지 말고 후회하지 말지어다'라는 글을 읽고 위로와 용기를 얻어 메일을 보내게 됐어요"라는 첫머리로 시작하는 비교적 장문의 메일이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다.

'25살이 되도록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대학 4학년이 되어 막상 취업을 생각하니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평생 해온 일과는 전혀 다른 직업에 흥미가 생겼다. 그 일을 하려면 다시 전공을 공부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다 보면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보다 늦어지게 될 거라 이것저것 끝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내 글을 읽게 되었는데, 글에 나온, '후회하지 않는 게 먼저가 아니라 망설이지 않는 게 먼저다. 그때 하고 싶었던 일들을 그렇게 고민하지 않고 했었어도 큰일 날 일은 없었다'라는 문장들이 자신에게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좋지 않은 결과로 선택을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망설이는 걸 멈추는 게 먼저라는 걸 알았으니 그냥 해보겠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모든 선택과 결정을 할 때마다 나의 글을 떠올릴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계속 좋은 글을 써 달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벅찬 감동에 온 몸의 세포가 반응하는 것만 같았다. [관련기사 : 망설이지 말고 후회하지 말지어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로 하려고 쓴 글이 아니었다. 우선 나 스스로도 여전히 흔들리며 사는 삶이라 그럴 깜냥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난 그저 훨씬 총기 있고 주관이 뚜렷한 요즘 젊은 세대를 부러워하는 많은 기성세대 중 하나일 뿐이다.

그저 100세 시대에 절반에 가까운 인생의 전반부를 살아오면서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후반부를 맞이하는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와 다짐의 글 정도였다. 나를 위한 글이 다른 누군가, 그것도 내 나이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젊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니, 이 어찌 벅차지 않겠는가.

미래와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다는 것 자체가 젊은 시절이라는 증거이겠지만, 해 오던 길과 다른 길을 가게 될 상황에서는 얼마나 두려울 것인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치열했던 나의 20대를 돌아보면 불확실한 미래와 가진 것 없는 젊음은 얼마나 버거운 것이었는지. 그래서 그 시기를 즐기라는 기성세대의 말은 너무 무책임해 보여 하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게다. 살고 싶기 때문이다. 지푸라기 하나가 큰 도움이 될까마는, '고작' 그것 하나에도 살기 위한 버둥거림에 더 힘을 내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위로하는 글이 생각지도 못하게 다른 누군가에게 '지푸라기'의 역할을 해 줄지도 모른다.

나를 위로하는 글은 다른 누군가도 위로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쓰시는 모든 분들께 당부드리고 싶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글을 쓰셨다면 여러 SNS 채널에 연동시켜 두시라고. 블로그든, 페이스북이든, 인스타든. 마음이 담긴 정선된 언어와 문장으로 다듬어진 글은 방황하고 힘든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누군가에겐 불쏘시개가 될지도 모르니까.

다시 25살 젊음에게 내 온 마음을 다해 응원을 해드렸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일 년 동안 매진해서 보았던 나의 진로를 향한 첫 시험에서 떨어지던 날, 꿈이 깨어지는 것 같던 그 막막함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학생의 마음에 고스란히 빙의되는 느낌에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당부도 드렸다. 결과의 실패 여부를 떠나 최소한 3년은 온 마음을 다해 매진해 보라고.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을 다해 걸어본 과정은 또 다른 길을 열 수 있는 배짱을 길러줄 거라고. 그리고 열심히 가는 길 위에는 가보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또 다른 길이 보일 거라고.   

25살 학생에게 감사해야겠다. 읽고 그냥 감흥을 얻고 말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메일로 정성스럽게 써 준 그대의 정성으로 인해 주말 하루 내내 행복했노라고. 언택트 시대에도 사람 간의 마음이 연결될 수 있음을 알려주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고민하고 방황하던 나의 20대 시절 같은 모든 젊음에게, 다시 한번 온 마음을 다해 응원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시될 글입니다.


태그:#언택트시대, #이메일, #마음연결하기, #위로가되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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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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