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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고 이젠 좀 안정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19 덕분에 실업자가 되어 휴식 시간은 더 길어졌지만 탓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가고 있다.

무력하게 침투하는 노년의 신체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며칠을 밤새 즐기며 날을 새며 놀고도 출근할 수 있었던 이십 대를 그리워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이순(耳順)이다.

나름 열심히 산다고 해도 후회는 따른다. 연말에 한해를 정리하면서 가장 많은 생각은 여유를 갖는 것이었다. 강박증에 가까운 성향인 탓에 메모를 해야 했고 계획을 세우면 계획대로 해야만 했다. 손님을 초대하고 메뉴를 정하고 음식을 만들고 나면 세팅을 하는데, 음식 담길 그릇마다 메모장을 붙여 놓고 순서대로 진열해야 직성이 풀려 그제야 끝났다는 신호로 박수를 한 번씩 치곤했다. 유별나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도와준다는 지인들의 손길을 감사히 거절하면서 혼자 음식을 만들었다.

한번은 초대된 수녀님 중 한 분이 점심 식사를 다 하고 나서 소감을 말했다. "손님을 초대했는데 음식냄새가 거의 안 나서 '뭐지 식사 초대가 아니었나, 음식을 배달하나'라며 의아해 했다"라며 웃었던 적이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해놓고 세팅까지 마치고 데워서 바로 먹을 수 있게 식탁에 차려놓았던 그릇과 음식을 보고 놀라워하며 말했다.

세 자녀를 키우고 자식 된 도리로 시댁 친정에 의무를 다하며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열심히 살아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내 시간은 많아지겠지'라는 희망을 갖고 사는 게 힘이 되었다.

세상만사 어디 뜻대로 되는가? 그럼 너무 심심하겠지! 라고 놀리듯 삶은 언제나 뒤틀리면서 사연을 만든다. 마흔 다 되어 늦둥이가 태어났고, 시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언어 장애와 신체 장애를 갖게 되셨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장남 며느리의 의무가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며 사업을 하겠다는 가장의 선전포고는 공포 그 자체였다. 사십대 중년의 위기였다.

일상에 파고드는 불행이란 그림자는 고통이란 자의식을 갖게 하며 힘들게도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살기 위한 지혜가 자라나기도 한다. "신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기 위해 때로는 길을 잃게 한다"는 말처럼, 다가온 일들을 거절하거나 도망치거나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듯 살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리고 땅은 굳어지고 단단한 반석이 되어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건강한 열매가 달리고 수확의 계절이 오듯 아이들은 잘 성장해서 자신만의 둥지를 만들어 떠난다. 그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건강만이 살길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가족 모두는 건강했다.

"유치원 때부터 절약하면서 궁상떠는 엄마가 보기 싫어 짜증도 많이 냈었지, 덕분에 저축왕도 되었는데 말이야. 엄마가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면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요즘 엄마를 보면 부럽다. 나도 그런 날이 오겠지."
 

초등학생과 중학생 딸을 키우며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두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동분서주하는 큰딸의 고백이다. 엄마의 마음이 그렇듯이 자녀들을 키우면서 교육비가 최우선이 된다. 매달 빠듯한 생활비를 조금씩 남겨 세 아이 이름으로 비밀저축을 했다. 초, 중, 고, 대학을 졸업할 때면 모은 돈으로 새 학기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 해주곤 했었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면서 극성스럽게 열심히 살아온 젊음 날과 중년 시절이 있었기에 노년에 들을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연말을 보내면서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목표를 세우고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과 결심들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며 며칠을 보냈다. 외면하고 싶었다. 너무 치열하게 살아온 스무 살의 암울했던 가난과 결혼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침을 여는 새로운 오늘이다. 고요한 거실에서 나만의 공간을 즐기며
▲ 나만의 공간 아침을 여는 새로운 오늘이다. 고요한 거실에서 나만의 공간을 즐기며
ⓒ 이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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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아침 '아! 행복하다.' 평생 이런 날이 언제 오려나 꿈꾸며 살아온 날들이 무색하리만큼 오늘이 좋다. 새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너무 오래 살아온 집을 팔고 이사 온 임대아파트지만 글을 쓰고 독서를 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 거실을 밝게 비추는 햇살과 창밖으로 보이는 들판과 바다가 보인다. 꿈꾸던 나의 "슈필라움"이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이 어느 순간 망설임 없이 헛소리가 아닌 노래처럼 말이 되어 나왔다. 평생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비바람 부는 날 나뭇가지들이 부딪히는 소리만큼이나 쉬지 않고 들려왔던 내면의 외침이었다.
 
뜨는 해와 지는 해의 차이는 마음의 소리로 결정한다.
▲ 해를 바라보며 뜨는 해와 지는 해의 차이는 마음의 소리로 결정한다.
ⓒ 이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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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그렇듯이 새해가 밝았다. 변함없이 해는 뜨고 진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선택은 내 몫이다. 이제는 마음에 끌려 다니고 싶지 않다, 오늘부터 내 마음을 데리고 다니면서 내려놓고 버리는 연습을 더 열심히 즐겁게 하는 게 목표라면 목표가 되었다.

가벼워진 마음 밭에 "감동과 감탄과 감사의 씨를 뿌리며" 자유롭고 편안하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일 것이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순응하며 살고 싶은 게 2021년 새해 나의 소망이다. 가벼워지면 더 높이 더 멀리 갈수 있지 않겠는가!

태그:#새로운 시작, #더 높이 더 멀리, #감동 감탄 감사, #자유와 선택, #무계획이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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