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더 프롬> 스틸컷

영화 <더 프롬> 스틸컷 ⓒ 넷플릭스

 
과거 잘 나가던 브로드웨이 스타였으나, 이제 손을 대는 작품마다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실패를 거듭하게 된 '디디(메릴 스트립)'와 '베리(제임스 코든)'. 그들은 이미지 제고와 최신 작품 홍보를 위해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을 찾기 시작하고, 우연히 인디애나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레즈비언인 '에마(조 엘러 펠먼)'가 여자 친구 '알리사(아리아나 데보스)'를 졸업 파티에 데려갈 수 없게 되었다는 뉴스를 접한다.

에마를 도와줄 경우 소수자를 돕는 정의로운 이미지를 쌓음과 동시에 뮤지컬 홍보도 가능할 거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달은 디디와 베리. 그들은 역시 과거의 영광에 빠져 사는 동료 '앤지(니콜 키드먼)'와 '트렌트(앤드류 라넬스)'의 도움을 받아 인디애나 주로 향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프롬>은 여러 작품을 연상시킨다.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뮤지컬이라는 점에서는 <헤드윅>을, 하이틴 뮤지컬이라는 측면은 <하이스쿨 뮤지컬>을 떠올리게 한다. 동성애 문제로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십 대의 이야기를 음악을 매개로 다룬다는 점에서는 로건 레먼과 엠마 왓슨 주연의 <월 플라워>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더 프롬>은 <헤드윅>과 <월 플라워>를 따라가기에는 주류 사회에서 차별받는 소수자의 내면을 심도 있게 풀어내지 못했고, 십 대의 학교 생활을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그 디테일이 <하이스쿨 뮤지컬>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작중 음악과 노래의 메시지는 세 작품 모두에 비해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뮤지컬과 하이틴 드라마라는 장르의 환상적인 매력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프롬>은 뮤지컬과 하이틴 드라마라는 서로 다른 장르 안에 각각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평단의 혹평에 시달리는 뮤지컬 배우들이 재기하는 과정은 뮤지컬로 담아내고, 미국이나 캐나다의 고등학교 졸업파티인 '프롬'을 앞둔 십 대들의 이야기는 뮤지컬이 가미된 하이틴 드라마로 다룬다.

두 이야기는 사뭇 전형적이지만, 충분히 효과적이다. 실패한 스타가 다시금 성공을 노린다는 소재는 숱한 작품들에서 사용된 클리셰인만큼 자연스럽게 흥미를 돋우는 도입부로 기능한다. 십 대들의 풋풋한 사랑과 재기 넘치는 학창 생활의 분위기는 <하이스쿨 뮤지컬>을 연상시킨다는 측면에서 그 매력이 증명된다.  

이때 두 장르를 하나로 이어주는 소재는 동성애다. 레즈비언 커플인 에마와 알리사의 파티 참석을 막은 고등학교의 사연이 공론화되자 디디와 베리는 해당 학교로 향한다. 동성애 이슈를 해결해 뮤지컬 흥행의 실패를 덮고 브로드웨이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다시 쌓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줄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장르 간의 만남은 나름 안정적인 봉합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 프롬>을 구성하는 고전적 뮤지컬과 하이틴 드라마는 본래 밝은 톤을 유지하며 궁극적으로 행복과 통합을 성취하는 이야기라는 기본 속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에마의 사연에 도구적으로 접근한 배우들이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진심으로 그녀를 돕고, 에마도 결국 행복한 졸업파티에 참석하는 등 모든 것이 좋게 마무리되는 유토피아적 결말을 보여준다.  

문제는 <더 프롬>이 환상 속에서 진행되어야 할 이야기를 현실의 문법으로 전개한다는 점이다. 사실 춤과 노래를 통한 대화합의 장을 열어주는 고전 뮤지컬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장르다. 2~3분가량을 소요하는 노래들이 다수 등장하다 보니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분량이 줄어들고, 그 결과 스토리가 전체적으로 축약, 단순화되어 현실감을 챙기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영화 <더 프롬> 스틸컷

영화 <더 프롬> 스틸컷 ⓒ 넷플릭스

 
거칠게 말해 '노래만 부른다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느냐'는 식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논리라는 기본 규칙이 단순히 적용되지 않고 사람들이 일제히 춤춰도 아무도 의아해하지 않는 곳"에서 아픔을 잊을 수 있다는 <더 프롬>의 대사가 뮤지컬 영화의 본질적인 목적인 이상 해당 비판은 큰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이는 현실의 상황을 의도적으로 잠시 배제하는 것이 뮤지컬 영화와 관객 사이에 이루어진 무언의 약속이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더 프롬>처럼 노래 가사 안에 현실을 끌어들일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토론회장에 난입한 디디는 주인공이 에마이지 본인이 아니며, 자신들이 인디애나까지 온 것은 홍보가 목적이 아니라면서 정작 무대의 중심에 서서 LGBQT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다고 노래한다. 또한 트렌트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근거를 미러링 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이는 현실의 상황과 떼어 놓고 볼 수 없는, 사실상의 블랙코미디다. <뮬란>의 사례처럼 할리우드와 문화계가 정치적 올바름을 상업적인 이유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또한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는 방식에 부적절함이 있다는 일각의 비판을 반영한 풍자나 다름없다. 

결국 <더 프롬>에서 관객을 환상의 나래로 초대해야 할 도구는 역으로 작중 벌어지는 사건들이 주인공의 단순한 변심이나 각성, 흥겨운 음악과 멋들어진 춤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회구조적 현상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 결과, 온전히 환상 안에서 펼쳐지는 축제인 뮤지컬은 이전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더 이상 노래에 담긴 현실을 외면한 채 영화를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더 프롬>은 하이틴 드라마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정확히 초점을 잡지 못했다. 작중 에마의 서사는 지역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동성애자의 파티 출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학부모회 회장 '그린 부인(캐리 워싱턴)'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오프닝을 통해 영화는 단순히 에마가 '졸업 파티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졸업 파티에 '지역 사회의 반대와 억압으로 인해 가지 못하는' 상황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질 문제라고 분명히 밝힌 셈이다. 따라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수용한 가운데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에마의 이야기는 동성애를 반대하고 혐오하는 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변하고 개선되는지와 함께 제시되어야 했다. 
 
 더 프롬

더 프롬 ⓒ 넷플릭스

 
하지만 영화는 에마의 서사를 단순히 개인의 차원에서 다루는 데 그친다. 학교에서 그녀가 겪은 괴로움은 그저 친구들 간의 사소한 다툼으로 손쉽게 해결된다. 학부모회로 대표되는 인디애나 주의 동성애를 향한 차별과 혐오는 딸인 알리사가 에마와 커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린 부인의 변심으로 인해 간단히 증발한다. 만약 동성애라는 소재를 가족 간의 이슈로 다루었다면, 이러한 전개는 게이로 등장한 베리의 가족사와 어우러지면서 감동을 선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시작부터 지역 사회 전반의 문제를 언급하는 만큼, 그린 부인 한 개인은 물론 그 외의 학부모와 주민들도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보여줄 때 이 영화는 진정으로 결말에 도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밝고 희망에 가득 찬 클라이맥스의 노래가 어딘가 무기력한 메아리로 들리는 이유다. 

최근 많은 장르 영화는 두 개 이상의 장르를 섞어 복합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장르의 결합이 성공적일 경우 신선하고 다채로운 느낌을 줄 수 있는 반면, 실패할 경우 각각의 장르가 지향하는 재미가 충돌하며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도 있다. 뮤지컬과 하이틴 드라마를 더했으나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길을 잃은 <더 프롬>은 후자의 예시처럼 보인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자신이 비판하려는 대상처럼 자기 자신도 동성애라는 소재와 주제의 깊이를 온전히 살리지 못한 채 그저 수단으로써 다루는 듯 보이며, 공허한 외침으로 남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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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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