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 영화 포스터

▲ <800> 영화 포스터 ⓒ (주)퍼스트런


1937년 제2차 세계대전 중일전쟁 초기, 중국의 중국군(국민혁명군)은 일본군에 거듭 패배한다.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은 상하이에 집결한 주력 부대를 모두 잃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퇴각하는 시간을 벌기 위한 작전 명령을 제524연대에 내린다. 제524연대는 외국인들과 부유한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공동조계 지역 건너편, 수쩌우 강 북쪽에 있는 사행창고에 방어선을 구축한다.

영화 <800>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하이를 지키기 위해 사행창고를 기지로 삼아 2만에 달하는 일본군에 맞서 나흘 밤낮으로 결사항전을 벌인 중국군 제524연대의 '상하이 사행창고 보위전'을 바탕으로 한다. 제524연대의 영웅적인 분투는 중국 교과서에 실리고 대만에선 영화 <팔백장사>(1975)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유명하다. 

영화 <800>은 제작비 8천만 달러를 투입하여 사행창고 전투를 재현한 중국의 블록버스터 작품이다. 메가폰은 지이장커, 장위한, 장양 등과 함께 '6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선정된 <투우>(2009)와 베니스 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노포아>(2015)를 연출한 바 있는 관후가 잡았다.
 
<800> 영화의 한 장면

▲ <800> 영화의 한 장면 ⓒ (주)퍼스트런


영화의 제목 <800>은 제524연대 소속 '800명' 국민혁명군에서 가져왔다. 하지만, 실제 전투에 투입된 군인의 숫자는 452명에 불과하다. 당시 제524연대의 지휘관은 일본군을 속일 속셈으로 군인 숫자를 800명으로 부풀렸다고 한다. 800명도 터무니없는 숫자인데 452명이었다니. 실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작전이었다.

제524연대가 방어선을 구축한 '사행창고'는 당시 상하이의 4개 은행이 합자하여 만든 6층 높이의 건물이다. 은행 건물답게 두꺼운 벽으로 만들어져 수비하기가 용이했다. 옆에는 대규모 가스저장소가 위치하고 강 건너편은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공동조계 지역이라 일본군이 폭격을 감행하거나 중화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이점도 지녔다. 자칫 공동조계 지역이 피해를 입는다면 미국, 영국, 프랑스가 전쟁에 개입할 빌미로 삼을 테니까 말이다.

<800>은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여러 중국군, 그리고 공동조계 지역에 위치한 중국인들을 골고루 조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사행창고 안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용감하게 전투에 나서는 군인이 있는가 하면 겁을 먹고 도망치려는 자도 적지 않다. 스스로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어린 소년들의 모습도 보인다. 

공동조계 지역의 도박장 주인, 교수, 언론인 등 다양한 인간군상도 등장한다. 이들에겐 안전한 곳에 있다는 안도감과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모습이 교차한다. 너무 많은 인물을 보여주는 통에 산만한 느낌도 강하다.
 
<800> 영화의 한 장면

▲ <800> 영화의 한 장면 ⓒ (주)퍼스트런


<800>은 인물의 사연이 아닌, 상황 자체의 힘으로 밀고 간다. 4일간의 격전은 대부분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다. 전투 방식은 지상전, 수상전, 항공전 등 다양하게 펼쳐진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차례나 시각 효과상을 수상한 팀 크로스비 시각 효과 감독과 <매트릭스 2: 리로디드>(2003),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에 참여한 글렌 보스렐 액션 감독은 마치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느낌을 주는 사실적이면서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을 만들었다.

첫째 날, 일본군은 독가스를 살포하거나 기습작전을 벌이며 사행창고를 공격한다. 둘째 날, 일본군은 전날의 실패를 만회할 요량으로 3시간 안에 점령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총공세를 펼친다. 셋째 날, 중국군은 중국이 아직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사행창고 옥상에 국기(청천백일만지홍기)를 올리며 일본군을 자극한다. 넷째 날, 중국군은 훗날을 도모하며 공동조계 지역으로 철수한다.

사행창고의 모습과 달리 공동조계 지역은 평화롭기만 하다 두 지역의 시각적인 대비는 전쟁의 두려움과 처절함을 한층 강화한다. 공동조계 지역에선 매일 밤 휘황찬란한 불빛과 함께 파티가 벌어진다. 일부 사람은 마치 쇼처럼 전쟁을 구경한다. 심지어 누가 이길까 도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 당시 상하이엔 천국과 지옥이 공존했던 셈이다. 바꾸어 말하면 정치, 사회의 분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800> 영화의 한 장면

▲ <800> 영화의 한 장면 ⓒ (주)퍼스트런


<800>은 원래 2019년 6월 상하이 국제영화제 상영과 동시에 중국 극장가에 개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봉 하루 전에 기술적인 이유로 돌연 취소되고 말았다. 개봉은 한 차례 더 연기되었다가 2002년 8월, 13분을 삭제한 후에야 비로소 빛을 볼 수 있었다.

영화나 스틸, 포스터는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걸 피하고 있다(중국 정부가 아마도 영화에 등장하는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 묘사와 오늘날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나오는 장면을 문제 삼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한편으론 공산당이 검열하는 중국 영화에서 국민혁명군과 청천백일만지홍기가 이 정도라도 나온 사실 자체가 놀랍다. 비록 흐릿할지라도 말이다.
800 관후 어우 하오 왕췐웬 장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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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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