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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계속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신음소리가 났어."

지난달 새벽, 친한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이후로도 계속 울리는 벨소리에 친구는 잠을 설쳤고, 주변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과 불안감에 SNS 계정을 삭제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최신 정보기술의 대중화 이후 우리 삶은 훨씬 편리해졌다. 한편, 정보 통신 기술을 악용하는 사람에 의해 사이버 공간에서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어쩌면 정보화 시대 화합과 평화의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기에 기획 기사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화두를 제시하려 한다.

'당황하셨어요?'는 옛말, 날로 교묘해지는 전자 금융 사기
 
개그콘서트 '황해'
 개그콘서트 "황해"
ⓒ https://youtu.be/jys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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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각종 유행어를 만들며 인기를 끌었던 <개그콘서트>의 코너 '황해'. 경찰청 사이버 대응 센터에서 직접 소재를 받아 보이스피싱을 풍자했다. 조선족 특유의 말투와 어설픈 실력으로 매번 돈을 받아내지 못하고 코너가 끝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과거와는 달리 전자 금융 사기는 점점 지능화·고도화된 수법을 사용하고 사람들은 방심한 사이 금전적 피해를 입는다.

최근에는 문자로 금융 사기 시도가 빈번히 발생한다. 온라인 구글폼을 이용해 부산대 학생, 가족, 주변 지인 등 50명가량을 대상으로 한 자체 설문조사에서 전자 금융 사기 시도를 받아본 적이 있다고 한 사람들 중 48%가 스미싱을 당했다고 답했다. '스미싱(Smishing)'이란 문자메시지(SMS)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다. 주로 무료 쿠폰 제공, 모바일 청첩장, 택배사 사칭 등을 내용으로 하는 메시지를 인터넷 주소와 함께 보내는데, 이를 클릭하면 악성코드가 설치된다. 무심코 링크를 누르는 순간 소액 결제나 개인 금융 정보 탈취 등의 피해가 발생한다.

스미싱은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그 내용을 변형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코로나19로 정부가 긴급 재난 지원금 지급 발표를 하자, 빠른 시간 내에 지원금을 신청하라는 URL이 포함된 메시지가 확산됐다. URL을 클릭하면 나오는 사이트에 정보를 입력하면 개인 정보가 유출되고 실제 결제가 이루어진다. 그런가하면 가족을 가장하거나, 지인을 사칭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따라서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링크나 앱을 클릭하지 않고, 핸드폰의 보안 설정을 강화해야 한다.

스미싱 다음으로 빈번한 것은 '피싱(Phishing)이다. 피싱은 개인 정보(Private Data)와 낚시(Fishing)의 합성어로 금융기관을 가장해 통화하거나 이메일을 발송한 뒤 금융 정보를 탈취한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A씨는 00 검찰청 소속 검사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대포통장이 만들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현재 사용하는 통장을 확인하기 위해 문화상품권을 구매한 뒤 코드번호를 전송하라는 요구에 따랐고 96만 원의 피해를 봤다.
 
(왼쪽) 가족을 사칭한 스미싱, 강아무개씨 제공 (오른쪽) 택배사를 가장한 스미싱.
 (왼쪽) 가족을 사칭한 스미싱, 강아무개씨 제공 (오른쪽) 택배사를 가장한 스미싱.
ⓒ 안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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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싱은 '황해'와 같이 조선족이 사기 행각을 벌이던 과거와 달리 내국인을 고용하고 문화상품권을 이용하거나 저금리 대출로 현혹하는 등 수법을 다양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현금지급기(ATM)로 유인하면 100% 보이스피싱이므로 절대 응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금융 거래 정보 요구는 일절 응대하지 말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이버경찰청·금융감독원·금융사 등의 기관이 예방법과 대처법을 알리지만 다양한 수법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고, 매년 피해액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대부분은 피해 금액을 보상받지 못한다. 설문조사에서도 전자 금융 사기로 피해액이 발생한 경우는 9.1%였으며 그중 피해액을 보상받은 사람은 0%로 전무했다.

대한민국 형법 제347조와 제347조의 2에 따르면 전자 금융 사기는 사기죄에 포함되며 범죄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2017년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총책에게 처음으로 '범죄단체조직죄'를 물어 징역 20년에 추징금 19억 5000만 원을 선고했다. 이처럼 처벌 수위는 중형으로 높은 편이다.

다만, 피해자가 구제 신청을 해도 피해금을 완전히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피해자 보상책인 '전기 통신 금융 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은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환급률은 꾸준히 20%대를 기록했다.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국정감사에서 "피해금액의 수 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는 등 강력한 척결 대책을 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스스로 전자 금융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예방책을 숙지하는 것과 더불어, 강력한 손해 배상책과 신속한 보상책 마련을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닿을 수 없어 더 불안한 디지털 성범죄
  
디지털 장의사
 디지털 장의사
ⓒ 유퀴즈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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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탐사·심층·르포 취재물 공모 당선작이 공개됐다. 그중 '추적단 불꽃'의 기사로 세상에 알려진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범인들은 신상 공개와 영상 유포를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했고 N번방과 박사방에는 불법 성 착취물이 공유됐다. 특히 박사방을 운영하던 조주빈은 각종 음란·가혹 행위를 지시했는데, 74명의 피해자 중 16명이 미성년자로 밝혀지며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N번방 사건이 워낙 이전에 없던 악랄한 유형이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훨씬 이전부터 정보 사회의 문제로 거론되고 있었다. 불법 촬영(몰래카메라), 몸캠 피싱, 리벤지 포르노 등 그 유형도 다양하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영상이나 사진이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범인 검거와 이미 유포된 영상을 삭제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흔히 '몰카'라 불리는 불법 촬영은 전자 기기로 타인의 신체를 동의 없이 찍는 행위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디지털 성범죄 유형이다. 지하철에서 여성의 하체를 몰래 촬영한 김성준 전 SBS 앵커, 성관계 영상을 동의 없이 촬영하고 SNS에 유포한 가수 정준영의 사례를 비롯해 화장실, 숙박업소 등에서 이루어지는 불법 촬영 행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준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는 신인 걸그룹 에스파의 데뷔를 발표했다. 문제는 실제 멤버들이 각각 '또 다른 나'라는 가상 아바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바타를 활용한 각종 범죄의 가능성, 특히 '딥페이크 포르노'를 우려했다. 딥페이크 포르노란 포르노에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합성하는 것인데, 최근 기술이 발달하며 사진 한 장이면 누구나 가짜 동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됐고,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탔다. 그중 우리나라 여성 연예인을 합성한 영상이 25%에 달하는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네덜란드 디지털 보안기업 딥트레이스의 분석 결과가 발표되며 심각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영상을 넘어 유선상으로 범행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서론에서 소개한 사례의 피해자 B씨는 새벽에 계속해서 울리는 발신번호 표시 제한의 전화를 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받은 전화에서는 작은 소리가 지속적으로 났고 잠시 뒤에는 신음소리까지 들렸다. 몸이 굳어버린 B씨는 그 즉시 전화를 끊었지만 이후로도 전화 시도는 계속됐다. 전화로는 발신자 추적이 불가능해 당장 상대의 신원을 알 수 없었던 피해자의 엄청난 공포는 어느새 주변 모든 사람을 향한 의심으로 번졌다.

결국 범인은 한 달 만에 잡혔지만 B씨는 "경찰관에게 꼭 고소를 해야겠냐는 식의 말을 들어 답답했다"라며 수사 과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실제로 경찰보다 디지털 기록을 삭제해 주는 디지털 장의사에 의지하는 피해자도 많다. 이유는 미흡한 수사와 가벼운 형량에 있다. 지하철에서 여성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김성준 전 앵커는 9회에 걸쳐 촬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7년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추세와 동향 분석 결과'를 보면 범죄자의 최종심 평균 형량은 징역 3년 2개월에 불과했다.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줄 정도로 최종 판결에서 감형되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N번방 사건 이후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범죄의 상습범에 대해 영상물 제작은 최대 징역 29년 3개월, 판매는 27년, 배포·알선은 18년, 구입의 경우에도 6년 9개월까지 선고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개정 최종안은 오는 12월 의결할 예정이기 때문에 N번방 운영자들에게 소급 적용할 수 없다. 심지어 앞서 소개한 아바타 딥페이크 포르노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이윤정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영리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범죄단체에 준할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라며 양형 기준을 더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신상이 모두 밝혀진 피해자만 억울해질 정도로 약한 디지털 성범죄 처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범죄자가 적합한 형벌을 받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시급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기획 기사는 사이버 범죄 중에서도 크게 전자 금융 사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만 다루었다. 한편 훨씬 다양하고 악랄한 형태의 디지털 범죄가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문제가 이토록 심각해지기까지 가벼운 형량, 예방 교육의 부재 등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원초적 원인은 과도한 개인 정보의 수집과 유출이다. 자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자 금융 사기가 발생한 원인을 묻는 질문에 75.0%가 개인 정보와 관련이 있다고 답했다. 신상 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고 유출하는 것을 막을 정책은 분명 필요하다. 더불어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 물결에 휩쓸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 스스로 개인 정보를 털어놓지 않도록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태그:#사이버범죄, #전자금융사기, #디지털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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