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광진구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증발> 언론시사회에서 김성민(왼쪽) 감독과 최용진 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2일 서울 광진구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증발> 언론시사회에서 김성민(왼쪽) 감독과 최용진 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인디스토리

 
"안 들어오는 거예요. 다음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제가) 미친 사람이 되었죠. 전단을 만들어서 뿌리고 또 뿌리고…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 지나고, 3개월이 지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배낭 메고 무조건 나가는 거예요.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고."

실종된 둘째 딸을 찾아 헤맨 아버지 최용진씨가 느릿하게 한마디씩 말했다.
 
20년 전 사라진 여섯 살 딸의 행방을 쫓는 아버지와 그 과정에서 일상이 붕괴하는 가족의 삶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증발> 언론시사회가 2일 서울시 광진구의 한 영화관에서 열렸다.

2000년 4월 4일 당시 6살이었던 최준원(현재 26살) 양은 청재킷과 주황색 쫄바지를 입고 친구 집에 다녀오겠다고 나선 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평범한 낮이었다. 개방된 집 앞 놀이터가 마지막 목격 장소다. 하지만 뚜렷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가족은 준원이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용진씨가 지금까지 기록한 수사 노트만 5권 분량이다. 방송을 보고 준원이와 비슷한 아이를 봤다는 시민들의 제보가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준원이를 데리고 있다면 돈을 요구하는 등의 거짓 제보를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용진씨의 가족은 상처를 입었다.
 
 
 다큐멘터리 <증발>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증발>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도 지쳤다. 딸을 잃은 고통 속에 엄마는 이혼을 하고 따로 살고 있다. 첫째 딸은 준원이를 찾는데 열중한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가족의 고통을 혼자 감내하면서 아버지와는 서먹서먹한 사이가 돼버렸다.
 
최용진씨는 "슬하에 딸이 셋이다. 준원이는 둘째 딸이다"라며 "마트에서 물건을 도둑맞은 것도 아니고 바로 눈앞에서…어제 있던 애가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멈췄다. 그날 이후부터…"라며 "실종 아동들의 가족들이 표현만 안 했을 뿐이지 하루하루를 지옥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 큰애가 보통 마음이 무너진 게 아니다"라고 했다.
 
준원이의 행방을 수사하는 강성우(서울경찰청 장기실종수사팀) 수사관은 "아버님이 20년 동안 준원이를 찾다가 실망한 게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이 들었다. 실종자들의 가족들이 제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아픔들이 있겠다는 걸 느꼈다"로 말했다.

 
 2일 서울시 광진구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증발> 언론시사회에서 김성민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일 서울시 광진구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증발> 언론시사회에서 김성민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인디스토리

  
다큐멘터리를 만든 김성민 감독은 실종사건으로 인해 가족들이 아픔을 겪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는 "아동실종사건이 가족을 해체하는 게 문제다"라며 "그 가족을 한순간에 와해하는 게 아니라 서서히 무너뜨리는 게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님과 가족분들이 기화해서 날아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꼈다. 서서히 균열이 가고 이 균열이 언젠가는 가족과 가족 구성원들의 삶을 붕괴시킬 것 같다는 생각을 촬영·편집 내내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13년 11월에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가족들의 허락을 맡고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었을 때 장기실종수사팀에서 준원이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촬영을 연장했다. 그렇게 하면서 7년 만에 완성했다.

 
 다큐멘터리 <증발>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증발>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김 감독은 "어느 순간이 되니까 언제까지 촬영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저도 아버님과 가족을 옆에서 계속 지켜보니까 제가 촬영을 그만하는 게 준원이를 찾는 게 그만두는 것처럼 스스로 느꼈다. 그런 고민하는 그 시기에 장기실종수사팀에서 준원이 사건을 재수사하게 되었고 재수사 과정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장기실종아동 사건들이 해결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역시 사람들의 관심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궁금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준원이는 어디로 갔지?' '다른 실종아동들은 주변에 또 누가 있지?' '부모님들은 어떠실까?'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경찰이 수사는 어떻게 하고 있지?'라는 궁금증을 가져주실 수 있다면 그게 곧 관심이고 그 관심들이 이어져서 제도적인 개선이 일어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해 제보해줄 수 있고 실종 아동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기적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김성민 감독)
 
강 수사관은 "경찰이 노력하지만 다른 기관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시민들이 관심을 두시는 게 작은 단서에서부터 시작돼 해결되는 사건들이 굉장히 많다. 사회 구성원들 전체가 작게나마 이해하고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 장편상 수상작. 115분. 11월 12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증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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