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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수진 <코리안 티처>
 서수진 <코리안 티처>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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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4일 오전 9시 4분]

텔레비전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을 보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출연한 외국인들이 어찌나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던지 신기했다. 그들은 거의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었다. 그들의 한국어 구사 능력은 개별적으로 좀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체로 썩 훌륭했다. 한 가지 이상했던 건 외국인 출연자 모두가 남성이었다는 건데, 한국으로 유학 온 외국인은 모두 남성뿐인가?

몇 대학에서 운영하던 한국어학당이 한류 영향으로 한국어에 대한 수요가 늘자 여러 대학에 우후죽순 생겨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저 한국어를 배우러 온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배워 직업을 얻고 한국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고, 유학 비자로 들어와 불법 취업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일까?

서수진의 <코리안 티처>는 한 한국어학당에서 고학력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담아냈다. 소설의 펄떡거림은 아마도 작가 역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일 듯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드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르시시즘의 위험을 극복하고 자신의 페르소나들인 소설 속 인물들과 불가근불가원 끊임없이 거리를 두고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인류학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에 복무한다. 흩어져있는 개인의 뭉쳐진 집단 서사는 필연적으로, 그들의 '사회학적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곤경에 처한 그녀들

<코리안 티처>에서 고학력과 스펙을 탑재한 여성들이 H대 어학당에서 가르치는 대상은 한국어 초급자들이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각기 다른 출신 나라의 사람들은 나라의 차이만큼이나 확연히 다른 문화적 배경, 취향, 나이, 성 정체성 등을 가지고 있다.

문화의 각축장이기도 한 이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들은 놀랍게도 모두 여성들이다. 이들은 수퍼갑 고용주 어학당이 휘두르는 권력의 동심원에서 끊임없이 파동 당하며 안간힘으로 불안정한 삶을 붙들고 있다.

"시험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선이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대출받은 학비를 갚아야 하고 당장 살아갈 생계비도 필요하다. 최저 시급에 학기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불안정한 직장이라도 잡아야 했다.

한국어를 배울 외국 학생을 현지에서 모집까지 해서 어학당 몸집을 늘리려는 H대 어학당은 늘어난 학생만큼 이들에게 배치할 강사가 더 필요했다. 어찌 보면 선이는 운 좋게 강사 자리를 얻은 셈인데, 이 짧은 운도 곧 소멸한다.

선이는 어학당의 남학생이 의도적으로 그녀의 사진을 찍어 SNS에 '코리안 핫걸'로 게시하는 바람에 공포와 난처함을 겪는다. 성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추동하는 태그를 달아 여강사의 사진을 불법으로 찍어 올리는 '불법 촬영' 사건은 가해자의 국적을 불문하고 세계 어디서고 벌어지는 여성인권 침해 현장을 적시한다.

느닷없이 '코리안 핫걸'이 된 선이는 선뜻 경찰에 고발하지 못한다. 신고하는 과정에서 젠더 감수성 없는 경찰이 '코리안 핫 걸은 좋은 뜻 아니냐'며 2차 가해를 벌이는 장면은, 여성들이 불법 촬영 동영상으로 고통받다 겨우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조차 공권력의 폭력까지 감수해야 함을 쓰라리게 보여준다.

불법 촬영 문제를 어학당에 알리자 학교에서 처리할 테니 기다리라는 책임강사의 코멘트는, 3개월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 강사에겐 일을 크게 벌이지 말라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압박감에 고발을 할 수 없었던 선이는 동료 강사들에게 외면당하고 결국 재계약에 성공하지 못한다.

계약 연장을 위해 숨죽이고 노력해도 소모품처럼 내쳐지는 고용불안이 비단 선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불법 촬영의 두려움에 휩싸이고도 고용주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부정의는 주로 여성에게만 일어난다.

미주는 실력이 좋은 강사다. 학생들의 시험 성적 결과로는 언제나 으뜸이지만 학생들이 주는 강의 평가에선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실상 어학당은 시험 성적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학생들의 재수강률만 높이면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좀 덜 잘 가르치더라도 학생들 입맛을 잘 맞춰 재수강을 잘 시키는 게 강사의 본령이라는 압박이다.

학생이 갑이고 강사는 을이라는 어학당 원장의 노골적인 발언은 교육이 이미 시장에 넘어갔음을 드러낸다. 어학원장은 강사들을 길들이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재계약의 목줄을 죈다. 필시 여기에 이름을 올렸을 미주는 불합리한 어학당의 처사에 할 말은 하는 소신을 지키는 대신, 재계약을 하지 못함으로써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미주의 곤경은 이것만이 아니다. 수강생에게 고소당할 위기까지 겹친다. 퀴어 수강생의 성 정체성을 오해했던 미주는 수업 중 세심하지 못한 질문으로 그의 트리거를 당기고 만다. 외양으로 그녀를 판단했던 자신에게, 그리고 "고작 그런 것들 때문에" 비수 같은 언어폭력을 가한 자신에게, 미주는 큰 낭패감을 느낀다.

대학 때 믿었던 동아리 남자 선배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그와 동아리 멤버들로부터 2차 가해를 당했던 미주는, 결코 남성들이 가하는 "폭력과 공포, 그 어느 것에도 질 수 없다고 생각"하며 신념을 지키며 살아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뜻밖의 상황에서 가해자가 되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미주가 처한 이 곤경은, 성 불평등한 사회에서 약자 의식으로 무장하고 강자의 폭력을 돌파하고 대응해왔던 여성이, 가해와 피해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 젠더가 중첩되며 매우 곤혹스러운 지형에 놓이게 된다는 여성의 다층적 억압 상황을 무겁게 던지고 있다.

어학당의 스타 강사인 가은은 학생들로부터 받는 높은 강의 평가로 비교적 안정적인 재계약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버지를 잃은 불행한 기억은 그녀를 늘 이만하면 됐다고 믿게 하는 낙천주의의 외피를 걸치게 한다.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들을 매번 '운'이라는 외부의 힘에 전가하며 자신의 '운' 속에 안주할 수 있다고 자기 기만적 믿음을 키운다.

절실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사회 어디로부터도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약자는 자신의 '운' 외에 기댈 수 있는 게 없다고 믿음으로써 그나마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약자의 운발이 얼마나 긴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매번 "저는 운이 좋은 것 같아요"라며 강의 평가 톱을 유지하는 가은에게 동료 강사들은, 시기심을 은폐하고 목표물을 오인한 부당한 마음의 과녁을 그녀에게 걸게 된다. 정말 겨눠야 할 과녁은, 객관적 지표가 될 수 없는 강의 평가로 강사들의 서열을 매기고, 인센티브로 위계를 세워 재계약의 목줄을 죄는 시장에 포섭된 악랄한 어학당의 구조다.

하지만 3개월마다 계약에 목을 걸어야 하는 비정규직 강사라는 불안정함은 약자들끼리의 연대를 밀어내고 대신 그 자리에 경쟁심과 시기심으로 채우게 한다. 이는 경쟁자만 사라진다면 그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해 누릴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경쟁 지상주의가 어떻게 약자들의 연대를 와해시키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임강사 한희는 이번에 계약이 연장되면 무기 계약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고문당하고 있다. 남편이 외국인이라는 것과 임신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어학당 일을 빈틈없이 처리해내는 한희는 유능하다. 하지만 어학당은 유능한 기혼녀를 선호하지 않는다.

한희만 전혀 숨길 이유가 없는 사생활을 숨겨야만 하는 곤경에 처한 건 아닐 테지만, 결혼이나 임신이 취업과 직장 생활 그리고 진급에 악영향을 끼치는 상황은 오직 여성에게만 일어난다. 한희는 근면하고 유능하지만 기혼 여성의 근면과 유능은 커리어를 부정당하고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소모된다.

기혼의 여성에게도 직장은 생계를 위한 엄연한 노동임에도, "결혼했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해?", "남편이 버는데 뭐", "아기를 키우려면 짧게 일하는 게 더 좋잖아"라며 무자비한 차별 발언을 거리낌 없이 쏟아낸다.
 
"가사와 양육이 주이고, 한국어 강사는 서브로 하는 것. 그러나 환희는 단 한 번도 이 일을 서브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일을 해서 월세와 공과금을 냈다. 잘리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이 일에 뼈를 묻을 생각이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출산하고도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 믿었던 한희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는 어학당의 태도에 직면한다. 자신의 필요를 증명했다고 확신했지만 착각이었다. 언제나 대체 가능한 여강사였을 뿐임을 깨달은 환희는 용기를 내보려 한다. "재계약 안 되면 나 소송할 거야. 그래서 복직할 거고, 정규직으로 채용될 거야".

환희의 용기는 지지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정규직이 되려는 환희의 욕망이 그저 나만 살면 된다는 적자생존 생태계를 공고히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라면, 이는 한 개인의 미완의 성취일 뿐이다.

물론 그가 이룬 법적 성공은 판례를 남겨 개인적으로 법적 투쟁을 벌여야 하는 또 다른 비정규직 여성 강사에게 좋은 선례를 남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환희가 싸움의 형태를 바꾸어 '같이 싸우자'로 연대의 씨를 뿌릴 수 있다면, 그 싸움은 흩어지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뭉쳐진 싸움으로 다른 출구를 열어 오히려, 한희인 개인들을 더 든든히 지킬 수 있는 방어막이 되지 않을까?

가뜩이나 불안정한 고용 시장에 코로나19가 날린 가공할 직격탄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들이다. 남성보다 더 많은 여성이 일자리를 잃었고, 이와 연관됐음에 분명한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 집단적 위기는 혼자만의 절치부심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선이, 미주, 가은, 한희들이 '나'가 아닌 '우리'가 될 때, 홀로 분노의 화염으로 스스로를 태우다 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 "숨도 안 쉬어지고 곧 죽을 것 같"은 동료를 구해낼 수 있는 구조 신호를 발신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희와 같은 한국어 교원들이 고용 불안과 낮은 보수에 시달리는 현실을 고발하고 사회적 지위 보장과 처우를 개선하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코리안 티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께 싸워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부디 건투를 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게시


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은이), 한겨레출판(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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