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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편집자말]
어느 모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에 대해 물었다. 선뜻 대답을 못 했다. 생소했다. 아니, 여행이란 단어를 한동안 잊어버렸다. 그들은 자신의 여행경험을 돌아보며 여기가 좋았고 저기는 의미 있었다며 어느 한 곳을 고르는 게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부러웠다. 그들이 말 한 곳을 나 역시 갔었는데 지금 아무런 감흥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맞아요. 기억나요. 참 좋았지요. 또 가고 싶다"며 맞장구쳤을 텐데 아무 말도 못 했다. 여행이란 단어가 낯설게 다가오며 가슴이 울컥했다.

2019년 여름, 동유럽을 갔다. 엄청 걸었다. 나를 혹사하기 위해 간 것 마냥 걷고 또 걸었다. 허리협착으로 엉덩이가 아파오고 목디스크로 찌릿찌릿 어깨 통증이 왔음에도 보도블록 위를, 돌바닥을 미친 듯이 걸었다. 내 다리는 마른 장작처럼 뻣뻣해갔다.

뜨거운 태양이 온몸을 파고들어 기진맥진할 때까지 걸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에서 몸부림치다가 말라 죽어가는 벌레처럼 되었을 때 멈췄다. 팔과 다리가 고장 난 로봇처럼 따로 놀았다. 머리는 서야 한다고 말했지만, 쉴 새 없이 나사를 조여야 했던 찰리 채플린처럼 내 몸은 무언가에 계속 떠밀려가고 있었다.

두 아들과 함께 간 배낭여행

20년 전, 걸어도 행복한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한빛과 3학년 한솔을 데리고 갔던 2000년 유럽배낭여행. 그때도 엄청 걷고 걸었다. 언어가 안 되고 외국 여행은 처음이라 모든 게 두려워 걸을 수밖에 없었다.

로마에서 종일 걸어 지친 상태에서 '진실의 입'을 찾아야 했다. 콜로세움을 지나자 오후 4시도 안 됐는데 겨울 로마는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힘들어서 징징대고 위기감을 느낀 나는 지나가는 청년을 붙잡고 한국어로 "여보세요. 이거 어디 있어요? 트루 마우스!" 하며 내 입에 큰 주먹을 집어넣었다. 너무나 세게 집어넣어 입 가장가리가 얼얼했다. 뱅뱅 돌며 지나쳤던 바로 옆 교회 입구에 있었다. '진실의 입'에 손을 쑥 집어넣는 사진 한 장 찍고는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로 향했다. 칸트가 그 길을 매일 산책했다고 했다. 비가 조금씩 뿌리는 고성을 돌아보고 긴 강을 건너 찾아간 철학자의 길은 계단으로 된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헉헉대며 올라갔다. 어린 애들과 앞다투듯 젊은 외국 청년들도 씩씩대며 올라갔다.

빙 돌아 내려오던 오솔길. 이렇게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려고, 의정부 아파트 뒷산에도 있는 산길을 걸으려고 멀리 독일까지 왔나? 이 시간에 유적지 하나를 더 돌아보는 게 현명하겠다 하며 터덜터덜 걸었다.

하지만 도시를 끼고 흐르는 긴 강과 다리, 고성과 어울려 있던 알록달록한 지붕, 물안개 뒤로 펼쳐진 조용한 도시는 가슴을 떨리게 했다. 가위바위보를 하며 뛰어 내려가는 두 아이를 보며 여유도 찾았다. 그러나 이 역시 내 욕심이었다. 어린아이들에게 칸트가 뭐라고?

그래도 그때는 걷는 게 쉼이었고 여유였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걷는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지었다. 그랬기에 20년이 지나도 화려했던 유적지보다는 걷고 걸었던 유럽의 도시가 내 지친 발걸음과 함께 선명하게 기억난다. 물론 가슴 벅찬 행복감과 함께.

한빛이 떠난 후 슬프게 인식 된 여행
  
 그때는 걷는 게 쉼이었고 여유였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걷는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 행복도 한빛을 잃기 전까지만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그때는 걷는 게 쉼이었고 여유였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걷는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 행복도 한빛을 잃기 전까지만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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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행복도 한빛을 잃기 전까지만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지금은 여행이란 말 자체가 사치스럽다. 여행하면 떠오르던 설렘이나 떨림도 물론 전혀 없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여행에 대해 대답을 못 했고 한빛이 떠난 후 여행이란 말도 슬프게 인식됨을 인정했다.

한빛이 떠난 후 나를 혹사하듯 동유럽을 걸으면서 걸은 만큼 한 줌이라도 덜어지겠지 했다.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더 엉클어졌다. 어디부터가 실마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안간힘을 쓰며 걷고 걸었는데 몸도 마음도 다 가누기가 힘들었다.

그날도 몸을 끌면서 다뉴브 강가를 걸었다. 강이 끝나는 지점이 있으리란 허황된 오기로 걷고 걸었다. 5시간 정도 지나자 털썩 주저앉아야 했다. 아파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노력하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이쯤 되면 내 손 잡아줘도 되는 거 아냐?"하며 엉엉 울었다. "언니, 저기 봐. 정말 멋지지?"하며 내 눈치를 살피며 감탄할 곳만 찾아주던 후배는 저만치서 강물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가진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붙잡고 걸었는데. 옛날처럼 걷기가 쉼이고 정리이고 걸으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니 최소한의 위로라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빛은 분명 엄마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걸은 만큼 잘 버티고 있고 걸은 만큼 잘 견디어낸 거라고, 버티고 견디어 낸 것 자체가 덜어진 것이라고. 비록 나의 억지일지라도 한빛은 항상 그랬듯 엄마에게 희망을 응원할 것이다. 한빛은 여전히 내 핸드폰에는 '나의 희망'으로 저장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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