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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깻잎 따러 갈래요?"
"싫다. 다리에 힘이 없어." 


올해도 시골 아버지 산소 옆 작은 텃밭에 들깨를 심었다. 가끔 도라지도 심고 더덕도 심어 봤지만 모두 재미를 못보고 그나마 소출이 좋은 들깨를 계속 심어오고 있다. 덕분에 몇 년째 깨와 들기름은 국산이니 중국산이니 하는 걱정은 안 하고 산다.
   
우리집 들깨밭  우리 가족은 아버지 산소 옆 작은 텃밭에 해마다 들깨를 심는다.
▲ 우리집 들깨밭  우리 가족은 아버지 산소 옆 작은 텃밭에 해마다 들깨를 심는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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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난히 지독했던 장마와 태풍에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시골의 들깨는 무럭무럭 자라 깨알이 맺히기 시작했다. 깻잎도 어른 손바닥만하게 잘 자라서 식구들 모두 깻잎을 따서 쪄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사실 엄마가 안 간다고 하실 줄 알았지만 혹시나 하고 전화를 한 것뿐이다. 엄마의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는 계속 현재형인 데다가, 최근에 집 안에 흉사가 겹치다보니 엄마의 에너지는 완전히 고갈되어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은 지 꽤 됐다. 

얼마 전 모시고 간 한방병원에서 '맥이 거의 없어요' 했을 정도로 엄마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엄마의 '괜찮다,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말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이번에는 내가 깻잎찜을 만들어서 엄마께 드려야겠다' 마음 먹었다.  
  
엄마와 깻잎찜 
  
 엄마의 레시피대로 만든 깻잎찜
 엄마의 레시피대로 만든 깻잎찜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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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쯤 엄마가 만드는 깻잎찜은 우리집 별미다. 식구 중에 누구 하나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어린 조카들까지도. 깻잎을 따서 간장에 절여 놓았다가 날이 쌀쌀해지면 파와 마늘에 들기름을 듬뿍 넣고 만든 양념을 얹어 쪄내는 엄마의 깻잎찜은 카스테라보다도 부드럽게 입에 감기는 맛이 최고다. 

엄마는 거의 해마다 겨울에서 이듬해 봄까지 반찬이 궁할 때면 조금씩 꺼내서 쪄 내 식구들의 입맛을 살려 놓곤 하셨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깻잎을 따와서 쟁여 놓으셨던 것일까. 그때는 우리 깨밭도 없던 시절이라 이모네까서 가서 깻잎을 따와서 담그셨는데. 차도 없어서 무거운 깻잎을 지고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오가셨을 것인데.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엄마가 다른 이유도 아니고 '이제 힘이 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단다. 

나는 엄마의 깻잎찜을 보고 또 얼마나 하염없이 울었던가. 유학 초반 시절 시장에도 생필품이 없어 고생할 때 혹시 국물이 샐까 싸고 또 싼 깻잎찜을 인편을 통해 받아들었던 날. 엄마와 식구들이 보고 싶어 깻잎 반찬통을 붙들고 눈이 붓도록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는 유학 생활 내내 깻잎찜을 보내 주셨다. 

나에게 깻잎찜은 그냥 깻잎찜이 아니라 엄마의 손맛이고 그리움이다. 올해 내가 엄마의 깻잎찜 비법을 배우겠다고 설레발을 쳐대는 것도 사실은 '엄마를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내 맘 같지 않은 농사
 
깻잎 보기 좋게 자란 깻잎은 겉만 좋았지 안쪽은 다 노란 곰팡이균에 잠식되었다.
▲ 깻잎 보기 좋게 자란 깻잎은 겉만 좋았지 안쪽은 다 노란 곰팡이균에 잠식되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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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이 언니와 둘이서 깻잎을 땄다. 며칠 전 마지막 봤을 때까지도 멀쩡했던 깻잎이 불과 며칠 만에 노란 곰팡이로 얼룩져서 먹을 수 없게 돼 버렸다. 빗좋은 개살구마냥 멀리서 볼 때만 좋았던 것이다. 

"이거 찔 거니까 먹어도 되지 않을까?" 
"그거 곰팡이래. 따지 마." 


거의 모든 깻잎이 그랬다. '몇해 전에도 이러더니 또... 며칠만 일찍 올 걸.' 농사가 이래서 힘들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거름을 주고 약을 줘도 알 수 없는 병충해로 한 해 농사를 망쳐 버리니 말이다. 

아까워서 벌레 난 것도 어떻게든 먹으려는 농부들의 마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성한 것만 골라 따려니 일은 더뎠고 수확은 턱없이 적었다. 땡볕에서 서너 시간 동안 두 명이서 딴 깻잎이 노란색 배달 바구니 하나를 채우지 못했다. 

세상 복잡한 음식, 깻잎찜

씻은 깻잎 위에 양념을 얹어 찌면 되는 줄 알았다.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웬 걸. 엄마가 알려준 레시피는 꽤나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갔다. 씻는 것도 일이었다. 딸 때는 얼마 안 되던 깻잎이 씻을 때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식초 물에 담갔다가 흐르는 물에 한 장 한 장 씻는 일은 모래알을 한 알씩 집어 담는 것 만큼이나 더디고 지루했다. 다 씻고 나니 손가락은 저리고 다리는 뻣뻣하게 굳어서 잘 굽혀지지도 않았다.

그 다음은 깻잎이 흐뜨러지지 않게 적당한 양으로 요지로 고정시켜야 한다. 어려울 것은 없었지만 역시나 만만치 않게 시간이 걸렸다. 그 다음은 깻잎을 데쳐야 한다. 엄마가 쓰던 20년 넘은 들통에 물을 끓여 찬물에 건져냈다. 어느 정도나 끓여야 할지 몰라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건져냈다. 그렇게 세 번을 삶아냈다. 
      
엄마의 깻잎찜  엄마의 깻잎찜 레시피는 쉬운듯 보였지만 손이 많이 갔다. 요지에 고정시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로 씻는 과정
▲ 엄마의 깻잎찜  엄마의 깻잎찜 레시피는 쉬운듯 보였지만 손이 많이 갔다. 요지에 고정시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로 씻는 과정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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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간장을 팔팔 끓여서 데친 깻잎에 부어야 한다. 간장 양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엄마에게 물어보면 "깻잎 양 보고 적당히 넣어"라고 할 것이 뻔했기에 그냥 간장 큰 통을 다 들이붓고 끓여 깻잎에 부었다. 이제 며칠 동안 삭히기를 기다렸다 쪄내기만 하면 되었다. 

엄마가 일러준 대로 중탕으로 쪘다. 나중에 그릇을 꺼내기 좋게 바닥에 작은 대접을 엎어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삭힌 깻잎 위에 양념을 올린 다음 촉촉하라고 간장도 살짝 따라 부었다. 깻잎 쪄지는 냄새가 제법 냄새가 그럴 듯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기대감으로 뚜껑을 열고 깻잎 한 장을 떼서 맛을 보았다. "아 짜!" 깻잎이 너무 짜서 삼키지도 못하고 뱉어 버렸다. 간장 국물을 꼭 짰어야 했나. 어떡하지.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말았다.  
  
엄마의 깻잎찜  엄마의 레시피대로 만든 깻잎찜. 데쳐낸 깻잎에 갖은 양념을 한 후 중탕으로 쪄낸다.
▲ 엄마의 깻잎찜  엄마의 레시피대로 만든 깻잎찜. 데쳐낸 깻잎에 갖은 양념을 한 후 중탕으로 쪄낸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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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간장 국물 짜고 찌는 거야? 너무 짜."
"그럼. 꼭 짰어야지. 꺼내서 삼발이에 올려 놓고 다시 쪄. 간장물 빠지게."


'간장을 짜야 하는데 간장을 더 부었으니.' 그런데 깻잎을 꺼내 국물을 짜내고 삼발이에 옮겨 담고 다시 쪘더니 양념도 빠져나가고 너무 퍽퍽하게 보였다. 고민하다가 깻잎을 다시 그릇에 옮겨담고 물을 살짝 붓고 쪘더니 김이 있어 촉촉해졌다. 먹어보니 간도 괜찮았다. 

얼핏 보면 엄마가 한 것과 거의 똑같았다. 모양도 맛도. 과정은 어설펐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엄마도 맛있다고 할까? 엄마가 맛있게 잡수시고 기운을 차리시면 좋겠는데…' 엄마에게 한시라도 빨리 가져다 드리고 싶었다. 내심은 자랑하고픈 마음이 더 컸지만. 그런데 이런저런 일로 며칠째 엄마에게 가지 못하고 있다. 
  
엄마의깻잎찜  갖은 양념을 한 후 중탕으로 쪄 낸다.
▲ 엄마의깻잎찜  갖은 양념을 한 후 중탕으로 쪄 낸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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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찜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줄 처음 알았다. 맛있다며 먹을 줄만 알았지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는 생각도 못해봤다. 엄마가 맥이 다 빠져서 아무것도 못하게 된 지금에서야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한다. 참 나쁜 딸이다. 

"엄마가 힘들다는 말을 안 하니까 다 쉬워 보였어?" 

엄마의 질타 섞인 말이 귓가에서 웅웅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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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작가협회준회원, NGPA회원 저서: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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