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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언제까지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개가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언제까지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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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 인근 산자락 아랫마을에 중형견 이상의 크기를 가진 20여 마리의 개들이 나무에 묶여 있다. 낯선 사람이 가면 힘있게 짖을 법도 하건만 개들은 매우 무기력해 보였다. 며칠 동안 지속된 폭우를 그대로 맞은 듯하다. 밥그릇과 물그릇도 없었다.

지난 폭염과 길었던 장마 속에서도, 개들은 그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있었다. 묶여 있다 사라지고, 다시 그 자리를 다른 개들이 채우고, 그 와중에 임신하고, 출산하고... 그렇게 방치된 듯했다. 

어렵게 개 주인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그늘이라도 만들어 주고, 밥과 물도 주라고 해 봤지만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란다. 없어진 개들은 어디로 갔냐고 물으면 집에서 잘 키우고 있다고 큰소리친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그냥 근처라고 하는데, 이 동네에서 그 사람 집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대로 구경만 할 수 없어서 뜻있는 동네 사람들 몇이 모여 이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개들도 불쌍할뿐더러 마을을 위해서라도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먼저 구청에 민원을 접수했다. '동물등록법 위반', '동물보호법 위반', '공유지 무단점유'는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담당 직원은 귀찮다는 듯이 '거기 원래 들개들 많은 곳이라 들개들 잡아서 묶어 놓은 것 같은데 왜 그리 신경 쓰냐'고 말했다. 다음 주에 나가서 보기는 하겠지만 기대는 말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아니 들개들은 그렇게 묶어 놔도 된다는 말인가?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니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경찰의 도움이라도 받아보자고 생각해서 '동물학대'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난감해한다. 그 정도만 가지고 학대라고 보기에는 어려울뿐더러 지금 여력이 없단다. 예상은 된다. '사정이 있어서 잠깐 묶어 놨어요. 데리고 갈 거예요. 밥과 물은 사람 없을 때 주고 먹으면 치워요.' 개주인이 이렇게 나오면 끝이다.

이를 뒤집을 만한 근거라고는 주민들의 증언뿐이다. 그렇다고 경찰이 잠복해 있다가 '적극적 동물학대' 증거를 잡아 '적극적 제재'를 해 줄 리 만무다. 동물 전담 경찰 제도도 생겼다고 들은 거 같은데 그건 우리만 아는 거였다.

"그 정도로는 구조 못 해요"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동물보호단체들에 도움을 청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도 거의 동일한 답변이 왔다.

"그 정도로는 구조 못 해요. 보호소는 포화 상태이고, 정말 시급히 구조해야 할 심각한 상태의 동물은 너무 많아서 저희 나름대로 구조 원칙이 있는데, 그 사안은 거기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럼 어느 정도 되어야 구조 가능한가요?"
"아주 적극적인 학대의 증거나 불법행위를 한 증거가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을 했다든지, 그렇게 도살하는 곳에 팔았다든지, 유기견을 무료로 분양받아와서 팔고 있다든지, 굶어 죽은 사체들이 즐비하다든지..."
"도살장 같은 곳에 파는 것 같아 보여요. 그렇지 않으면 왜 이렇게 큰 개들이 계속 바뀌겠어요?"
"심증만으로는 개를 구조할 수가 없어요. 현재로선 최선이 구청이나 시청에 민원을 넣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럼 계도가 될 거고, 달라질 수도 있어요."


그때 깨달았다. 우리 사회에서 동물학대로 신고하려면 그 전에 먼저 우리가 탐정이나 형사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학대 증거'와 '끔찍한 학대 결과'를 제시하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게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우리들이 그들을 구하고 싶어 좌충우돌하며 절망하는 사이, 그 개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 성견이 아닌 듯 보이는 개 두 마리가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언제까지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태그:#동물학대, #동물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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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는 사회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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