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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기본법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조문이 현실에 적용되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조문이 현실에 적용되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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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敎育)의 敎는 '가르치다, 본받다', 育은 '자란다'는 뜻을 가진 한자 글자이다. 영어 education도 뜻이 비슷하다. 라틴어 educare에서 유래한 education은 '밖으로'를 의미하는 'e'와 '이끌어내다'를 뜻하는 'ducare'의 합성어이다. 즉 인간형성의 과정이자 사회개조의 수단인 교육은 가르침과 본받음을 통해 어린이의 무한한 잠재성을 밖으로 이끌어내려는 목적 하에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인간행동이다.(주1)

1911년 8월 23일 조선총독부는 '조선교육령'을 공포했다. 조선교육령 제2조는 '교육은 충량(忠良)한 국민을 기르는 본의로 한다'라고 규정했다. 이때 '국민'은 일본국 국민, 忠은 일본 천황(天皇)에 대한 충성, 良은 순순히 복종하는 노예 근성을 가리킨다. 조선교육령은 교육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의 성과를 거두려는 정치적 계산에서 입안된 지배 술책이었다.

전체주의 교육은 개인의 잠재성 무시, 획일화 강조

따라서 일제는 조선교육령 공포 이후 한국인을 우민화하기 위해 일본어 교육과 저급한 실업 교육을 강화했다. 그러한 시도는 1922년 2월의 제2차 조선교육령 공포와 1938년 3월의 제3차 조선교육령 공포, 1943년 3월의 제4차 조선교육령 공포를 통해 점점 노골화되었다.

2차 조선교육령 때는 한국사와 한국지리 교과가 폐지되었다. 3차 조선교육령 때는 조선어가 선택 과목으로 바뀌었는데, 학교 안에서는 일본어만 사용을 허락하고 조선어를 쓰면 처벌하였다. 그리고 덴노(天皇)의 절대 권한을 분명하게 인식시키는 국체명징(國體明徵)‧조선인도 덴노의 백성이라는 내선일체(內鮮一體)‧충성심을 기르기 위해 몸과 마음의 훈련에 각고의 노력을 다한다는 인고단련(忍苦鍛鍊)의 3대 교육강령이 강조되었다.

또 3차 조선교육령 때는 일반사회와 학교의 집회 참석자 모두에게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목청껏 암송하도록 강제했다. '천황의 충성스러운 백성으로서의 맹세'를 뜻하는 황국신민서사는 한국인 이각종이 문안을 만들고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장 김대우가 정책화를 주도했는데, 어린이용과 일반용 두 종류가 있었다.

어린이용 : 1. 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국민입니다. (주2)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 충의를 다하겠습니다.
3. 우리들은 괴로움을 참아 단련해서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일반용 : 1.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 군국(君國)에 보답하련다.
2. 우리 황국신민은 신애(信愛) 협력하여 단결을 굳게 하련다.
3.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여 힘을 길러 황도(皇道)를 선양하련다.

 
대구 현풍초등학교 황국신민서사비의 안내판
 대구 현풍초등학교 황국신민서사비의 안내판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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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조선교육령 때는 조선어가 완전히 폐지되고 소학교 이름이 국민학교로 바뀌었다. 국민학교의 국민(國民)은 '황국신민(皇國臣民)'을 줄인 말로, 덴노 나라의 충성스러운 백성이라는 뜻이었다. 일제가 정한 국민학교라는 이름은 1996년에 이르러서야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어쨌든 그것 하나 바꾸는 데에 55년이나 되는 세월이 걸렸다.

교육계에 끈질기게 살아 남아 있는 일제 잔재

황국신민서사도 이승만 정권 때는 '우리의 맹세', 박정희 정권 때는 '국기에 대한 맹세'로 바뀐 채 여전히 살아남았다. '우리의 맹세'와 '국기에 대한 맹세'는 아래와 같다.

우리의 맹세 : 1.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2. 우리는 강철같이 단련하여 공산 침략군을 쳐부수자.
3.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휘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

국기에 대한 맹세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주3)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식을 보도한 경향신문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식을 보도한 경향신문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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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제정된 '국민교육헌장'도 '국민'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일본 제국주의식 충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집단주의 사고의 잔재로 비판받아왔다. 그러던 중 김영삼 정권인 1994년 이래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삭제되었고, 노무현 정권 때인 2003년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일'도 폐지되었다.

본래 국민교육헌장은 1890년에 제정된 일본의 '교육 칙어'를 모방했다는 말을 들어왔었다. 하지만 1978년 6월 27일 우리나라 교육의 인간화·민주화를 요구하면서 "국민교육헌장은 우리 교육의 실패를 집약한 본보기"라고 주장한 전남대학교 교수 11명이 해직되고 또 구속되는 일이 일어났다. 집단주의 체제에 저항하던 지식인들이 터무니없는 보복을 당한 반민주적 사건이었다.

국민교육헌장 비판 교수들, 해직과 투옥의 고난

'오늘의 교육 지표' 사건은 국민교육헌장 공포 이후 초등학교를 다닌 우리나라 '국민'들의 뇌리에 어린 시절 기억을 재생시켜 준다. 교사들은 수업을 파한 후 학생들의 국민교육헌장 암기 상태를 점검했고, 줄줄 낭송하지 못하면 귀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일찍 교실을 벗어난 아이는 같은 마을 동무가 풀려날 때까지 운동장이나 교문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누워 있는 채로 2005년에 발견된 (대구 현풍초등학교 교정의) 황국신민서사비
 누워 있는 채로 2005년에 발견된 (대구 현풍초등학교 교정의) 황국신민서사비
ⓒ 심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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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 '국민'들은 일제 강점기 때는 황국신민서사 암기를 강요당하고, 1968년 이래 한동안은 국민교육헌장 암기를 강요당하면서 살아왔다. 지금은 어떤가? 교육의 본질을 수행하는 데 충실한 교육이 있어야 참된 인간의 탄생과 올바른 사회의 도래를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오늘도 변함없이 집단주의와 암기 위주 주입식 교수·학습에 매몰되어 있다.

일제 땐 황국신민서사 암송, 독립조국에선 국민교육헌장 암송

2020년 8월 18일 인터넷에 학생 인권 조례 제정 반대 시위 보도가 떠 있는 것도 그 증거의 한 가지 사례이다. 반대 시위대에 교원단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더욱 놀랍다. 교육자가 제자의 인권 신장을 반대하는 세상, 과연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인지 의심스럽다. 인권은 각자의 것인데도, 우리나라의 일부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전체의 일원으로만 살 것을 강요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 찾기를 포기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개인의 삶이 가득한 찬란한 시기를 맞이했는데도 우리는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시작했다.(주4)"는 키에르케고르(1813-1855)의 나치 직전 지적이 생각난다.
 
대구 현풍초등학교 교정의 황국신민서사비
 대구 현풍초등학교 교정의 황국신민서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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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주2) 어린이용은 대구 현풍초등학교 교정의 안내판, 일반용은 <디지털 달성문화대전>의 번역문 인용
(주3) 2007년 7월 이래 '국기에 대한 맹세'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바뀌었다. 문법에 맞지 않는 '자랑스런'이 '자랑스러운'으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로 바뀌었고, '몸과 마음을 바쳐'가 삭제되었다.

(주4)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불안한 날엔 키에르케고르>, 이주영 역, 자음과모음, 2018, 18쪽.

태그:#황국신민서사, #조선교육령, #8월23일 오늘의 역사, #학생인권조례, #내선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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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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