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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매곡산 자락에 올해로 개관 한지 42주년이 되는 <국립광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매곡산 자락에 올해로 개관 한지 42주년이 되는 <국립광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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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광주에는 예부터 매화나무가 많았던 '어매(於梅)'마을과 마을의 형태가 황새를 닮았다는 '봉곡(鳳谷)'마을이 있었다. 인접해 있던 두 마을은 서로 합쳐서 한 동네가 되었다. 오늘의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梅谷洞)'이다.

매곡동에는 매화가 땅에 떨어지는 형국과 같다 하여 '매화낙지등(梅花落地登)'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매곡산(梅谷山)이 있다. 나지막한 뒷동산처럼 보이는 매곡산 자락에 올해로 개관 한 지 42주년이 되는 광주·전남지역 문화유산의 보고, 국립광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1978년 12월에 개관한 국립광주박물관은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광복 이후 우리 손으로 지은 최초의 지방 국립 박물관이다. 1976년,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14세기 중국 원나라 보물선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진귀한 보물들이 쏟아져 나오자 이를 전시·보관하기 위해 건립이 추진되었다.

개관이래 100여 차례가 넘는 발굴조사와 상설·특별전시를 통해 명실상부한 호남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문화전당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개관 당시 1000여 점에 불과했던 소장품은 국보 2점과 보물 5점을 포함하여 약 13만 점으로 늘어났다. 전시동만 덩그러니 있던 박물관은 연구동과 교육관을 새로 지어 건물 면적이 약 5500여㎡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국립광주박물관에 들어서면 1층 중앙 로비를 환하게 밝혀주는 명품 석등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국보 제103호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이다
 국립광주박물관에 들어서면 1층 중앙 로비를 환하게 밝혀주는 명품 석등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국보 제103호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이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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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광주박물관을 환하게 밝혀주는 쌍사자석등

호남의 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광주박물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유물이 있다.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지 않지만, 2.5m 높이의 쌍사자석등이 고향인 광양의 지리산 자락 사진을 뒷배경 삼아 1층 로비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국보 제103호로 지정된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이다.

두 마리의 사자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서서 석등을 힘차게 떠받치고 있다. 한 마리는 입을 벌리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생생한 역동감을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듯 한 사자의 사실적 표현과 조각기법이 탁월한 이 석등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과 함께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명품 석등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석등은 부처의 지혜와 자비를 상징하는 빛을 밝히기 위해 불을 켜는 곳으로 하대석(下臺石), 간주석(幹柱石), 상대석(上臺石), 화사석(火舍石)으로 구분한다.
 
 화사석의 화창에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바람막이를 고정한 흔적으로 보이는 못 구멍이 남아있다
 화사석의 화창에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바람막이를 고정한 흔적으로 보이는 못 구멍이 남아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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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주석을 대신해서 두 마리의 수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앞발과 머리로 상대석을 받치고 있다
 간주석을 대신해서 두 마리의 수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앞발과 머리로 상대석을 받치고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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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팔각형의 하대석이 있고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음각되어 있다
 정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팔각형의 하대석이 있고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음각되어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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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팔각형의 하대석이 있고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음각되어 있다. 그 위에 8개의 연잎 문양을 조각한 연화석(蓮花石)을 놓았다. 간주석을 대신해 두 마리의 수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앞발과 머리로 상대석을 받치고 있다.

상대석 받침 위에 불을 켜놓는 화사석이 있다. 8각 1석으로 4면에 직사각형의 화창(火窓)을 냈다. 화창에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바람막이를 고정한 흔적으로 보이는 못 구멍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석등의 지붕, 옥개석은 8각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다. 추녀는 살짝 들어 올려 귀 솟음으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상륜부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보주(寶珠)를 얹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상에서 연꽃이 피어나고 사자가 연꽃을 받치며 연꽃에서 나온 불법이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보는 사람 누구나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독창적 양식의 명품 석등을 만든 미상의 작자는 아마도 신의 손을 가졌던 석공이 아니었을까 싶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박물관에서는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는 석등의 마음을 헤아려 중흥산성이 있는 지리산 자락 사진을 뒷 배경으로 걸어 주었다
 박물관에서는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는 석등의 마음을 헤아려 중흥산성이 있는 지리산 자락 사진을 뒷 배경으로 걸어 주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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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에게 발각돼 미수에 그친 반출사건

1962년 12월 국보로 지정된 이 석등이 어떻게 광주박물관에 오게 되었을까. 이 석등은 원래 전라남도 광양군 옥룡면 중흥산성 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에 3층 석탑(보물 제112호)과 함께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이곳저곳을 떠돌다 지금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1930년의 일이다. 중흥산성이 있던 광양군 옥룡면 옥룡 보통학교 후원회에서는 학교 후원금 마련을 위해 이 석등을 부산의 골동품상에게 팔기로 했으나, 광양군청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불법행위임을 알고 매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후 석등의 가치를 알게 된 일본인 골동품 수집가 오쿠라다케노스(小倉武之助)가 부산의 골동품상과 모의하여 석등을 옥룡 면사무소 앞으로 옮기다 주민들에게 발각되어 석등 반출은 미수에 그치고 만다.

광양군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총독부에서는 일단 석등을 전남도지사 관사로 옮기게 하였고, 이듬해 다시 경복궁 자경전 앞으로 옮겼다. 1945년 광복을 맞아 경무대로 옮겨졌고, 5·16 군사 쿠데타 후에 덕수궁으로 옮겼다.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서 1986년에 중앙청 건물로 이사할 때 석등도 함께 이사를 거듭했다.
   
 원래 석등이 있었던 광양시 옥룡면 중흥사 삼층석탑(보물 제112호) 옆에 모조품 쌍사자석등을 세워 놓았다. 진품의 귀향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다
 원래 석등이 있었던 광양시 옥룡면 중흥사 삼층석탑(보물 제112호) 옆에 모조품 쌍사자석등을 세워 놓았다. 진품의 귀향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다
ⓒ 광양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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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일본으로 넘어갈 뻔했던 석등은 고향을 떠나 60여 년 동안 기구한 사연으로 일곱 번이나 옮겨 다니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1990년 고향 가까운 국립광주박물관으로 돌아와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다.
   
광주 박물관에서는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는 석등의 마음을 헤아려 지리산 자락의 사진을 뒷 배경으로 걸어 주었지만, 여건이 허락된다면 원래 자리였던 광양시 옥룡면 중흥사 삼층석탑 옆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전향적으로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제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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