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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와 종북몰이 마녀사냥의 추억

20.01.21 14:10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얼마전 내란음모 조작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지록위마>를 보고 왔다. 이어서 경순 감독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의 GV도 있었다. 내겐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영화다. 영화는 2012년 경선부정 사건에서부터 종복몰이가 시작돼, 2013년 내란음모 조작으로 이어졌고,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마무리됐다는 관점이 담겨 있다.
 
영화에서 인터뷰한 허재현 전 <한겨레> 기자도 '1년 후에 경선부정의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결론난 사안을 왜 다시 꺼내냐는 주변의 시선에 입열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국정원, 검찰, 언론, 박근혜 정부의 진실왜곡과 마녀사냥에 우리 모두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2013년에 '경선부정부터 잘못 봤고, 이것이 내란음모 조작과 종북몰이에서 우리가 타협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가 주변 동료들에게 '경기동부연합의 변호인' 취급을 받았다. 결국 나는 징계까지 받았고 18년 동안 있던 조직을 나온 개인적 경험이 있다.
 
영화는 통합진보당 당권파, 경기동부연합에 대해서 선을 긋고, 거리를 두면서, 같이 돌을 던지던,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던 당시의 이런 분위기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히 국정원, 검찰, 언론이 만든 프레임 속에 있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에필로그 - 가족들의 인터뷰 부분이었다. 새벽에 수많은 방송카메라와 함께 들이닥친 국정원. 아이를 깨워서 일단 학교에 보내는데 놀란 아이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 전화가 왔다. 몸이 너무 아프다고. 그리고 무작정 다시 집으로 온 아이.
 
엄마는 왜 왔냐고 크게 화를 냈고. 아이는 [이미 끌려간] 아빠가 어디 있냐고 묻는다. 저녁 늦게 압수수색과 체포가 다 끝나고 아이에게 이 상황을 어찌 설명할지 막막했던 엄마. 언론과 검찰과 국정원을 통해 '경기동부, 내란음모, 종북'이라는 막강한 프레임이 전사회적으로 형성된 상황에서 무슨 말로 어떤 설명이 가능했을까. 피해자들은 가깝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상황을 돌아본다. 그 트라우마는 평생 남을 것이다.
 
영화에는 당시를 돌아보는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인터뷰도 담겼다. 거기에는 솔직한 인정과 반성도 있지만 '그 사람들이 일탈을 했고 빌미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라는 여전한 자기검열의 흔적과 앙금도 있다. 그러나 이어진 GV에서 경순 감독과 이정희 전대표는 그런 태도가 또 어떤 상처나 트라우마에서 비롯됐는지 이해하자고 했다.
 
먼저 다가가서 벽을 낮추고 간격을 좁히자는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선을 그으면서 큰 상처를 준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면서 다가가야 한다는 게 오랜 고통의 시간 끝에 다다른 생각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잘못을 인정하면서 손을 내밀지 않는 현실이 그런 결론을 낳은게 아닐까 서글프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마녀사냥을 낳았던 구조와 주역들은 이 사회에 여전하다. 그리고 조건과 상황은 많이 달랐지만 근래 '조국 사태'에서도 그것은 반복됐다고 본다. 여전히 검찰과 언론과 우파가 만들어내는 프레임의 힘은 강고했다. 그래서 이정희 전대표에게도 질문을 던져봤다.
 
이정희 전대표는 구체적 언급은 피했지만 먼저 '어떤 개인의 이름으로 이번 사태를 부르고 역사에 남기는 것부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또 '계급의 문제가 드러났다는 말도 일리있지만, 정당하지 못한 세력이 주도한 게 사실이고 그것에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탤 필요'에 대해 말했다. 조심스러운 것도 이해가 갔고 답변도 공감갔다. 정말 이번에 진행된 일도 '검찰대란'이라고 부르고 역사에 남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종북몰이 혐오사냥의 피해자로서 이정희 전대표의 생각이었다. '혐오 문제를 논의할 때 자꾸 종북혐오를 빼놓는 것부터 적절하지 않다.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혐오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손을 잡아야 한다. 혐오선동을 모두 처벌로 접근해선 안 되지만 핵심대표자나 지도자들에 대해선 달라야 한다. 차별금지법으로 혐오에 대한 규제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 최근 이정희 전대표가 발간한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 책에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심각했고 실질적이었던 종북혐오가 혐오 문제를 논의할 때 자꾸 간과되는 것도 암묵적 편견의 작용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던 차에 더 공감갔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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