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다. 더 높은 수준의 선수들과 경쟁하고, 선진적인 인프라를 배우고, 열광적인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스스로를 시험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회가 왔다고 해도 소속팀의 상황, 계약 조건, 주전 경쟁, 언어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이를 섣불리 잡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 가시밭길이 될지도 모르는 유럽 무대 도전을 선택한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의 유럽 진출 역사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연희와 박희영(이상 당시 대교 캥거루스)은 독일 분데스리가의 SC 07 바드 노이에나르로 이적하면서 여자 축구 최초의 유럽 무대 진출자로 이름을 남겼다. 또한 다음해인 2010년에는 WK리그 원년이었던 2009년 득점왕과 MVP를 석권한 이장미(당시 고양대교) 역시 이들을 따라 1. FFC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하면서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

2014년 지소연(당시 고베 아이낙)의 첼시 FC 위민 이적 이후 잠시 사그라들었던 유럽 진출은 2018년 조소현(당시 인천현대제철)의 아발스네스 IL 이적과 2019년 2월 심서희(당시 울산과학대)의 1. FC 쾰른 이적으로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김지은(당시 수원도시공사)의 체코 진출 소식이 들려온 것은 이 무렵이었다([WK리그] 수원도시공사 김지은, 체코 리그로 이적 http://omn.kr/1heea).

체코 여자축구 최상위 리그인 체코 퍼스트 디비전의 1. FC 슬로바츠코로 이적한 김지은은 2018-19시즌이 종료된 지난 6월 계약이 만료되어 귀국했다. 그리고 창녕 WFC의 유니폼을 입고 WK리그의 잔여 시즌을 소화했다. 생애 첫 해외 진출부터 국내 복귀까지 여러모로 잊을 수 없을 한 해를 보낸 김지은을 지난 23일 수원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에 응한 김지은

인터뷰에 응한 김지은 ⓒ 윤지영

 
생애 첫 해외 진출, 모든 것이 새로웠던 체코

시즌이 끝나고 만난 김지은은 시즌 때보다 한층 더 밝은 얼굴이었다. 주로 개인 운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는 그는 "한국에서는 늘 동계훈련 등을 통해 팀 동료들과 함께 움직이는 일이 많았는데, 체코 가기 전에는 지금처럼 혼자 몸을 만들던 때라 정말 적응하기 어려웠다. 체코에서 만난 선수들에게 여러 가지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고 밝혔다.

체코 퍼스트 디비전은 체코어로는 1. 리가 젠이라고 불린다('제나' 체코어로 '여성'이라는 뜻이다-기자 말). 김지은을 영입한 슬로바츠코를 비롯해 8개 팀이 팀당 20경기를 치르는데, 이때 레귤러 시즌(Regular season)으로 14경기를 치른 뒤 K리그의 스플릿 라운드처럼 상위 4팀과 하위 4팀으로 나뉘어 각각 챔피언십(Championship) 라운드와 강등(Relegation) 라운드 6경기를 치른다. 챔피언십 라운드 상위 두 팀에게는 UEFA 위민스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주어지고 강등 라운드 최하위 한 팀은 2부리그(2. 리가 젠)로 강등되는 구조다.

김지은은 슬로바츠코 이적이 결정된 뒤 팀 매니저에게 부탁해 슬로바츠코의 경기 영상을 미리 받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체코 리그의 선수들과 직접 부딪혀 본 느낌을 묻자 "우선 경기 템포가 매우 빠르고 압박의 강도도 높다. 선수들이 다들 잘 뛰고 또 정말 많이 뛴다. 체코 국가대표팀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잉글랜드에게 0-1로 아슬아슬하게 질 정도다(필 네빌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9 FIFA 여자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팀이다-기자 말). 아마 앞으로도 더 발전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애 첫 해외 진출이었던 체코 생활은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상위권 팀에는 전업 선수들이 많지만 나머지 팀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투잡(two job) 형태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김지은이 만난 선수들은 퇴근하고 와서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도 정말 열심히 훈련에 참여했다.

"나는 축구선수라면 당연히 축구에만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 선수들은 자신이 축구를 그만두더라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감도 높았다. 그 선수들을 보면서 열심히 산다는 게 무엇인지 느끼고 왔다."

체코 퍼스트 디비전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2018년 8월에 2018-19시즌 전반기 리그가 개막해 11월 말까지 팀당 10경기를 치르고 2019년 3월에 후반기 리그가 개막해 나머지 10경기를 치른다. 김지은이 슬로바츠코에 합류한 시기는 전반기 리그가 끝난 뒤 후반기 리그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김지은은 이적생 신분임에도 3월 16일(현지 시간) 열린 후반기 리그 개막전에 선발 출전해 1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스타트를 끊었다.
 
 슬로바츠코 이적 후 데뷔전부터 선발 출전해 활약한 김지은

슬로바츠코 이적 후 데뷔전부터 선발 출전해 활약한 김지은 ⓒ 1. FC 슬로바츠코 공식 인스타그램

 
시즌 도중 합류한 선수가 데뷔전부터 선발 출전할 것을 예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지은은 이에 대해 "전반기에 뭔가 아쉬운 점이 있었고 팀에 내가 필요해서 영입했기 때문에 감독님께서 내가 최대한 팀에 빨리 녹아들 수 있게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팀에 합류한 뒤 연습경기를 한 차례 치렀는데, 이때 감독님께서도 잘했다고 칭찬해주셨고 내가 느끼기에도 몸이 가벼웠다. 사실 실력과는 별개로 내가 평소에도 자신감이 넘치는 편이다. 아마 이런 점들이 감독님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선발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한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부담 없이 뛰자'였다. 하지만 생각과는 반대로 첫 경기를 준비하는 내내 떨었다고 했다. 신인 드래프트 때와 인천현대제철 소속으로 처음 WK리그 개막전을 지켜볼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슬로바츠코에는 그 경기에서 활약한 선수가 다음 훈련 때 쿠키나 빵을 구워와서 함께 나눠 먹는 문화가 있다. 김지은은 첫 경기가 끝난 뒤 동료들이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건넨 쿠키 구워오라는 말이 농담인 줄 알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고 알겠다고 했는데 동료들이 꼭 쿠키 구워와야 한다고 계속 그러더라.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쿠키도 구웠다. 그렇게 다 함께 쿠키를 먹으면서 감독님과 팀 매니저가 '우리 팀에 와줘서 고맙다'고 해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

새로운 리그, 새로운 팀 외에 김지은에게 찾아온 또 다른 변화는 새로운 포지션이었다. 한국에서 줄곧 윙어로 뛰었지만 체코에서는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었다. 김지은은 새로운 포지션에 대해 "처음에 감독님이 중앙 미드필더를 권유하면서 격려도 많이 해주셨다. 그래서 루카 모드리치(레알 마드리드)의 영상을 보면서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측면과 중앙은 정말 다른 곳이었다. 일단 뛰는 템포부터 다르더라. 측면에서 뛸 때는 스프린트가 많았고 또 뛰다가 멈췄다를 반복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중앙은 일정한 속력으로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볼을 많이 만지고 플레이에 직접 관여하는 정도도 높아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며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리그 챔피언 스파르타 프라하, 난생 처음 느껴본 벽

체코 퍼스트 디비전은 현재 스파르타 프라하와 슬라비아 프라하가 양분하고 있다. 지난 2018-19시즌까지 스파르타 프라하가 20차례, 슬라비아 프라하가 6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지난 시즌 챔피언인 스파르타 프라하는 리그 20경기에서 19승 1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올렸다. 슬로바츠코 역시 스파르타 프라하의 희생양이 되었다(슬로바츠코는 김지은이 합류한 후반기 리그에서 스파르타 프라하와 세 차례 맞붙어 0-7, 0-12, 1-5로 패했다-기자 말).

김지은은 "체코 리그가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라서 그렇게 잘하지는 않겠지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말 그대로 게임이 안 되더라. 선수들이 다들 피지컬이 정말 좋고 잘 뛰고 전술 이해도도 좋았다. 축구를 갓 시작했던 초등학교 시절에나 이렇게 져봤지 나이 먹고 7대 0, 12대 0 이런 스코어는 처음이었다. (스파르타 프라하와의) 첫 경기가 끝나고 스스로에게 실망을 많이 했다. 어릴 때부터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아서 선수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나는 무슨 축구를 해왔나 싶기도 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밀렸고, 볼도 거의 만지지 못한 채 상대 수비수들만 쫓아다니다 끝난 경기였다. 이 정도의 격차는 처음 느껴봤다. 한국에서 인천현대제철을 상대할 때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경기를 뛰거나 벤치에서 보고 있으면 '언제 끝나지?'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선수단 전체가 힘을 냈으면 하는데 계속 실점하니까 그것도 안 되더라. 그렇게 깨지면서 축구는 누구 한 사람이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필드 위의 11명과 벤치의 사람들까지 모두가 잘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스파르타 프라하와의 맞대결을 회상했다.

이적 후 처음으로 리그 1위 팀을 맞이한 경기에서, 김지은은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상대 선수들과 부딪히면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매일 웨이트를 하며 칼을 갈았다. 세 번쯤 만나니 어느 정도 상대하는 요령도 생겼다.

"(스파르타 프라하를) 처음 만났을 때는 우리 팀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끼리 즐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세 번째 경기에서는 나를 쳐다보면서 욕을 하더라. 그걸 들었을 때 정말 짜릿했다. 드디어 그 선수들이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내 플레이가 그들을 괴롭히고 짜증나게 만들었다는 의미였으니까. 처음에는 아무것도 못했지만 그 경기에서는 유효슈팅도 하고 거의 골에 가까운 장면도 만들었다."
 
 체코 리그는 김지은에게 새로움과 동시에 벽 또한 느끼게 해 준 무대였다

체코 리그는 김지은에게 새로움과 동시에 벽 또한 느끼게 해 준 무대였다 ⓒ 김지은

 
아무리 상대가 리그 챔피언이라고는 하지만 큰 점수차로 지면 팀 분위기도 당연히 가라앉지는 않을까. 김지은은 이에 대해 "경기 끝나고 팀 미팅 전까지는 많이 속상해한다. 선수들이 감정표현도 솔직한 편이기 때문에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자주 있는데 미팅이 끝나고 나면 빠르게 털어내고 다음 경기에 집중한다. 체코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점 가운데 하나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하프타임 때 라커룸 풍경도 한국과 많이 달랐다. 한국에 있을 때는 주로 감독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모습을 주문하는 시간이 많았다. 선수들끼리 얘기하라고 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걸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체코에서는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선수들끼리 서로의 플레이에 지적할 점이 있으면 지적하고 감독님이 주문한 내용에도 생각이 다르면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처음 체코에 왔을 때는 이런 문화가 정말 낯설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나도 그렇게 됐다. 지금은 이게 진짜 축구를 위한 소통이고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창녕 WFC의) 신상우 감독님이 이런 소통을 정말 잘 하시는 분이다. 체코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 신상우 감독님을 만나고 한국에도 이런 지도자가 있다는 걸 느꼈다. 한국도 젊은 감독님들이 들어오시면서 팀 문화를 바꾸려고 많이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감독님뿐만 아니라 나를 비롯한 중고참 선수들도 변화를 위해 앞장서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 견디게 해준 것은 독서와 여행, 그리고 교민들의 응원

프라하에서 기차로 서너 시간 달려야 하는 슬로바츠코는 체코 내에서도 변두리에 있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언제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김지은에게도 머나먼 타지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은 큰 적이었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다른 것들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슬로바츠코는 들판이 유명한 곳이다. 운동이 끝나고 시간이 남을 때면 자전거를 타고 들판에 나가서 책을 참 많이 읽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도 시작하고 여기저기 혼자 여행도 다녔다. 슬로바츠코가 국경 근처에 있는 동네라서 기차만 타면 헝가리나 오스트리아로 금방 넘어갈 수 있었다. 경기 다음날은 훈련이 없었기 때문에 원정 경기 중에서도 특히 프라하 원정을 갈 때면 팀에 따로 복귀하겠다고 얘기하고 프라하 주위를 여행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도 했다."

물론 교민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김지은은 "체코에 거주하시는 한국인 유튜버 '아빠 후니'님과 '꾼맨'님이 소중한 인연이 됐다. 체코 이적이 결정된 뒤 인터뷰 기사가 나갔을 때 이를 보고 내게 먼저 연락을 주셨다. 체코에 오게 된 것을 환영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두 분 다 프라하에 사셨는데 먼 슬로바츠코까지 오가며 나를 응원해 준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다시 시작된 도전, 창녕 WFC는 그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지난 6월 2018-19 체코 퍼스트 디비전이 종료되며 슬로바츠코와의 계약도 만료됐다. 김지은은 체코를 떠나 다른 팀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고, 다음 시즌부터 함께 하자는 답변을 얻었다. 공백기가 다소 길었기 때문에 일단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던 WK리그 팀 대부분은 엔트리가 꽉 차 있었다. 그러던 중 엔트리 한 자리가 남아 있던 창녕 WFC의 신상우 감독이 러브콜을 보냈다.

김지은은 "감독님, 스태프, 선수들 모두 반갑게 맞아주셔서 기뻤다. 주장인 (홍)혜지를 비롯해 대부분의 선수들이 정말 어렸다. 언니로서 선수들을 어떻게 이끌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주장인 혜지를 최대한 존중하고 팀에 빨리 녹아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수원도시공사에서 함께 뛰었던 (모)재희나 동기였던 (정)예지가 있어서 적응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며 창녕 입단 당시를 떠올렸다.
 
 창녕 WFC 소속으로 2019년을 마무리한 김지은

창녕 WFC 소속으로 2019년을 마무리한 김지은 ⓒ 김지은 인스타그램

 
이전까지 그가 거쳤던 인천현대제철, 수원도시공사, 그리고 슬로바츠코에 비하면 창녕은 여러 측면에서 낯선 환경이었다. 리그 내에서 상대적으로 전력이 열세에 놓인 팀일뿐더러 자신보다 어린 선수들도 많았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맞이한 또 다른 도전인 셈이었다.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 팀이 전반기 동안 1승도 거두지 못한 상태였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선수들도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우리가 비록 전반기에 한 번도 못 이겼지만 선수라면 언제나 승리를 꿈꾸며 경기장에 들어서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 물론 나 역시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과 함께 뛸 수 있다는 것이 값지고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축구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겪어본 느낌이다. 첫 승리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창녕은 WK리그 15라운드에서 화천KSPO를 맞아 1-0으로 리그 첫 승을 거뒀다-기자 말)."

감격적인 첫 승을 거뒀지만 창녕의 2019시즌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가능성을 보여준 경기도 많았지만 언제나 승리에는 한 발짝 모자랐다. 서울시청과의 전국체전 8강이 특히 그랬다. 1-2로 끌려가던 창녕은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지만 휘슬이 울리기 직전 통한의 역전골을 허용하면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김지은은 "허탈하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며 당시의 기분을 회상했다.

"감독님과 함께 전국체전을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우리가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팀도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진 거다.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에 들어와서 감독님이 '우리는 진짜 할 만큼 다 한 것 같다. 배고프지? 밥 먹자'라고 말씀하시자마자 선수들이 단체로 대성통곡을 했다."

친정팀 수원과의 맞대결도 빼놓을 수 없다. WK리그 20라운드에서 2-2로 비긴 창녕은 27라운드에서는 난타전 끝에 3-4로 패했다. 이날은 김지은의 리그 첫 골이 터진 경기이기도 했다.

"감독님께서 내가 빨리 첫 골이 터져야 기분 좋게 시즌을 마무리할 텐데 하고 걱정하시던 차에 골을 넣을 수 있었다. 수원에 아는 선수들이 많았지만 현재의 소속팀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는데 이 때문에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좋아했던 것 같다(웃음). 동료들도 함께 축하해줬고, 경기가 끝난 뒤 아재크루(수원도시공사 서포터즈)에게도 인사를 했다. 아재크루도 내 이름을 콜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창녕에서 보낸 시간은 김지은에게 매우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창녕에서 보낸 시간은 김지은에게 매우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 윤지영

 
"축구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이 목표. 국가대표 경력이 없는 선수들도 해외 진출 활발해졌으면."

김지은이 체코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반가운 소식들이 이어졌다. 2019년 7월에는 이금민(당시 경주한수원)의 맨체스터 시티 위민 이적, 그리고 EAFF E-1 챔피언십을 앞둔 12월에는 장슬기(당시 인천현대제철)의 마드리드 CF 페메니노 이적 소식이 발표됐다. 슬로바츠코 이적 당시 인터뷰에서 "후배들이 넓은 세계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한국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했던 그의 소감이 궁금해졌다.

"체코에 가서 신기했던 것은 국가대표 경력이 없는 미국 선수들도 유럽에 정말 많이 진출해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 선수들도 그들과 비교해 밀리지 않는 기량을 가졌다. 다만 몰라서 못 나오는 것이다. (이)금민이나 (장)슬기처럼 뛰어난 선수들이 더 큰 무대로 진출하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하지만 내 바람은 국가대표 경력이 있고 유명한 선수들 외에 다른 선수들도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는 것이다. 외국에 나오면 축구 외적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언어도 배워두면 나중에 어떻게든 본인에게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WK리그에서는 매년 많은 선수들이 축구화를 벗는다. 그 중에는 고작 1, 2년만 뛰고 은퇴하는 선수들도 제법 있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 선수들의 은퇴할 때마다 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어느덧 창 밖이 어둑해졌다. 마지막 질문으로는 체코에 다녀온 뒤 본인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와 앞으로 남은 축구 인생 동안의 목표를 물었다.

"체코에 가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거기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봤고 나도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게 되었다. 한국에 온 뒤로 운동하면서 외국어 공부도 같이 하는 중인데, 요즘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진다. 앞으로의 목표는… 축구선수라면 모두가 당연히 태극마크를 꿈꿀 것이다. 최종적인 목표는 미국 내셔널 위민스 사커 리그(NWSL)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축구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자 축구의 가치를 높이고 축구선수로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경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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