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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공정 사회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 속에 탄생한 '촛불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어떤 개혁을 완수해야 할지 여러 의견을 소개합니다. '반환점 돈 문재인 정부에 바란다' 기획은 모든 시민기자가 참여할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대학입시와 공고한 학벌구조도, 학부모의 맹목적인 치맛바람과 사교육비도, 서열화한 고등학교의 현실도,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순례하는 아이들의 지옥 같은 무한 경쟁도, 우리 교사들의 수업과 잡무 부담까지도, '촛불 혁명' 이후 지난 2년 반 동안 학교가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잖아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접었다는 한 젊은 동료교사가 푸념처럼 내뱉은 말이다. 그는 탄핵 정국이던 2016년 겨울을 온통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며 보냈던 30대 청년이다. 그에게 당시 '촛불 혁명'은 난생 처음으로 시민이 함께 나서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을 일깨워준 계기였고, '촛불 세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게 너무나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선거 공약을 일일이 챙겨본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예전엔 TV 토론과 주위 사람들의 평판만으로 대충 후보자를 선택했는데, 지난 대선 때는 누가 당선되느냐보다 그들이 내놓은 공약에 더 눈길이 갔다고 회상했다. 수백만 촛불은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충분한 동력이 될 테니, 누가 더 촛불의 외침을 정확히 공약에 담아내고 있는가가 중요했다는 거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뽑아만 놓고 나 몰라라 하는' 촛불 시민들의 무심함을 탓했다고 한다. 대통령을 나무라는 지인들에게 부러 '사람들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고, 투표가 끝나자마자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는 프랑스 사상가 루소의 말까지 건네며, 대통령의 공약 실천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설득하기도 했단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노력은커녕 현 정부의 무능과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입장에 섰다. 특히 교육에 관한 한 철학도 비전도 없이 조변석개하는 여론의 추이에 따라 모순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조국 사태'로 대학입시 공정성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느닷없이 정시 확대 지침을 꺼낸 게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교사는 2018년 여름 '혁신 교육의 아이콘'이었던 김상곤 초대 교육부 장관이 석연찮은 이유로 경질될 때부터 이미 교육개혁은 물 건너 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상곤 전 장관은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과 유치원의 영어수업 금지, 자사고와 특목고의 특권 폐지 등을 추진하다 여론의 반발을 사 물러났다. 비등한 여론이 문제였을 뿐, 그의 경질 사유는 후임인 유은혜 현 장관이 여전히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그는 현 정부가 교육개혁에 관한 '빅 픽처'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을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실적에 연연하다 보니, 여론에 과민하게 반응해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대 측의 주장을 논거를 제시해 설득하기보다 '소통'을 한답시고 공약과 상반된 그들의 주장을 수용한 게 패착이었다는 거다.

"'짬짜면'을 내놓으면 둘 다 만족시킬 줄 알았나 봐요. 자사고와 특목고의 특권도 인정하면서 일반고를 살리고, 수능과 내신을 상대평가로 유지하면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고, 정시의 비중도 확대하면서 학종도 살리겠다는 앞뒤가 안 맞는 대책은 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걸까요? 이렇듯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방식으로 하는 교육개혁은 백년하청일 뿐이죠."

그는 정부가 되레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것들을 마치 상호보완적인 것인 양 포장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나무랐다. 교육 문제는 결코 교육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교문 너머에서 들여다봐야 학교 문제가 훤히 드러나듯, 교육 문제의 해결책을 교육의 울타리 안에서만 찾으려는 건 어리석다는 거다.

"교육개혁 큰 그림 없이, 여론에 따라 모순된 정책들 나와"
 
 지난 15일 오전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고교 3학년 수험생들이 전국연합학력평가 응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시험은 대입 수능을 한달여 앞두고 마지막으로 치러지는 학력평가다.
 지난 15일 오전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고교 3학년 수험생들이 전국연합학력평가 응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시험은 대입 수능을 한달여 앞두고 마지막으로 치러지는 학력평가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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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교사들은 모두 '초심'을 이야기했다. 길을 잘못 들었다 싶으면, 그곳에서 새 길을 찾아 헤매기보다 멀어도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거다. 촛불 시민들의 바람을 공약에 담았고 선거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선택받았다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소걸음으로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도,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치는 이도, 공약집 첫머리에 '교육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명시한 문구를 잊지 않고 있었다. 당시 우편물로 배달된 선거홍보물을 아직까지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이도 있었다. 스마트폰 바탕 화면에 가족사진 대신 그 문구를 깔았다면서, 당시 교육개혁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었다.

당시만 해도 '총론'이 명확하니 '각론'은 톱니바퀴 맞물리듯 원활하게 작동될 것이라고 여겼다.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한다는 것부터 초등학교 종일 돌봄 교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고교학점제, 공교육 혁신과 대학입시 단순화, 대학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 등이 마치 생애주기에 맞춘 기승전결 식의 완벽한 공약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치'는 '교육'을 가만두지 않았다. 정치는 정부의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일이긴 하지만, 교육정책에 사사건건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서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반복됐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정책을 손보게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한유총 사태'로 해묵은 색깔론 논쟁이 벌어지는가 하면, 돌봄 교실 운영 문제가 애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단계적으로 자사고와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은 수년째 수월성 교육과 하향평준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마다 보수 언론은 앞 다퉈 정부의 무능을 탓했고 여론은 날로 악화되었다.

수능 전형과 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 이렇게 세 가지로 대학입시를 단순화시키겠다는 것도 학생부종합전형이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에 휩싸이며 혼란을 거듭했다. 덩달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 고교학점제의 도입도 한 해 두 해 미뤄졌다. 이 와중에 터진 '조국 사태'로 공교육 정상화라는 대의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대학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 개혁도 가물가물하긴 마찬가지다. 당장 학령인구의 대폭 감소로 대학 정원의 감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공고한 대학 서열화로 인해 지방 소재 대학이 직격탄을 맞을 게 불 보듯 환해, 통폐합과 폐교를 앞둔 대학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공약을 다듬을 당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부가 이러한 갈등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예상하지 못했다면 진짜 무능한 것이고, 예상했음에도 갈등이 첨예하다는 이유로 공약을 포기하는 건 무책임한 것이다. 공약은, 말 그대로, 실천해야 할 목표일 뿐, 이해 당사자의 눈치를 보며 양보하고 타협하는 수단일 수 없다.

정치에서 독립된 교육부 필요... 대학서열화 혁파하는 정공법 절실

따박따박 나오는 봉급에 만족하며 일하는 월급쟁이가 아닌, 진정 우리 교육의 미래를 고민하는 교사라면, 가슴 설레게 했던 2년 반 전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을 모두 알고 있다. 첫째, 사위어 가고 있을지언정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 시민의 힘을 믿을 것. 둘째, 교육개혁의 '총론'에 충실할 것. 마지막으로 '정치'와 '교육'을 철저히 분리할 것.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고교서열화 정책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이상 '단계적으로' 접근할 문제일 수 없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듯, 법적 안정성 운운하며 시간 끌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아가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성적과 정비례하는 현실에서 강력한 경제적 양극화 해소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부의 세습을 막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교육개혁 방안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미 일반화된 고교학점제의 도입이 시급하다면, 그에 맞춰 교육과정을 정비하고 교원의 역량 강화에 '올인'하면 된다. 개개인의 흥미와 적성을 고려해 진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건, 공약은 물론 교육의 본령에도 부합한다. 하물며, 뜬금없는 정시 비중의 확대 방침은 이러한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는 '자해 행위'다.
 
10일 남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0일 앞으로 다가온 4일 오후 서울 노량진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 10일 남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0일 앞으로 다가온 4일 오후 서울 노량진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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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학입시의 개편이 교육개혁의 고갱이일 순 없다. 이미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이기는커녕 계급 재생산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곧, 대학입시에 매몰된 교육개혁은 필패할 수밖에 없고, 대학 서열화라는 현실을 인정한 대안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한낱 정시와 수시의 비중을 두고 애면글면하기보다 대학 서열화를 혁파하는 정공법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도록 교육부를 독립기구로 분리해야 옳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 교육은 그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했다. 교육과정은 정권의 심기를 경호하며 개정되었고, 대학입시도 덩달아 무시로 표변했다. 명실 공히 교육이 백년지대계가 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입안되고 시행될 수 있도록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 2년 반 동안 오락가락을 반복하면서 교육개혁을 추진할 동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점이 안타깝다. 개혁적인 젊은 교사들마저 정부의 의지와 능력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철 지난 공약을 낡은 레코드판 마냥 틀어대는 보수 야당을 지지할 리는 없지만, '우리 교육은 구제불능'이라는 냉소가 퍼질까 그것이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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