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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ㅈ마트의 아이스크림 냉동고.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ㅈ마트의 아이스크림 냉동고.
ⓒ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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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ㅈ마트의 아이스크림 냉동고.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ㅈ마트의 아이스크림 냉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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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ㅈ할인마트. 아이스크림이 담긴 냉동고 위로 A4 크기의 안내문 두 장이 붙어 있었다. 한 장은 50%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 명단이다. 원래 1000원인 '더위사냥'과 '빠삐코' 등이 5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반면 다른 한 장의 안내문에는 '아이스크림 정찰 고정가'라고 적혀 있었다. 말 그대로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 정해진 가격이라는 뜻이다. 롯데푸드의 '구구크러스트'와 빙그레의 '투게더'는 각각 5500원, '엑설런트'는 6000원이다.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길래 한 쪽은 할인이 되고 또 한쪽은 안 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배경엔 누가 아이스크림 가격을 결정하는가를 놓고 롯데제과, 빙그레 등 빙과 제조업체와 슈퍼마켓, 편의점 등 유통업체 사이의 뿌리 깊은 권력 다툼이 있다. <오마이뉴스>가 그 내막을 추적해봤다.

20년 전에는 제조업체에 '권장소비자가격' 결정 권한

일반적으로 아이스크림은 빙과 제조업체에서 직영 영업점이나 대형 대리점을 거쳐 대형 마트, 편의점 등 일선 유통업체에서 판매된다. 현행 공정거래법의 '재판매가격유지행위 금지조항'에 따르면, 제조업체는 영업점 혹은 대리점에 물건을 팔고 나면 더 이상 판매 가격에 관여할 수 없다. 유통업체가 원래 500원인 아이스크림을 소비자에게 1000원에 팔든 2000원에 팔든, 제조업체가 문제제기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까지 아이스크림 가격을 결정하는 권한은 제조업체에 있었다. 정부가 제조업체에게 제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도록 한 덕분이다. 원재료의 가격이나 배송비 등 거래 정보가 부족했던 당시 소비자와 유통업체를 위해, 제조업체에게 가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도록 한 것이다. 제조업체가 아이스크림의 마지막 가격을 정할 수는 없지만 법의 테두리 내에서 '마지막 가격이 이렇게 팔리면 좋겠다'는 의미의 '희망' 혹은 '권장' 가격을 적을 수는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아이스크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던 상황도 제조업체가 아이스크림 가격을 결정하도록 하는 데 힘을 실어줬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제조기술이 그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자연히 규모가 큰 제조업체들은 유통업체들에 비해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나타났다. 일부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와 담합해 권장소비자가격을 일부러 높게 정하는 등의 '꼼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제조업체는 500원이었던 권장소비자가격을 1000원으로 높게 표시하고,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와 짜고 싸게 들여오면서도 같은 제품을 50% 할인해주는 것처럼 속여 500원에 소비자들에게 판매했다.
 
마트의 냉동고에 진열된 통 아이스크림들.
 마트의 냉동고에 진열된 통 아이스크림들.
ⓒ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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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체로 넘어간 권력... 제조업체 수익구조는 점점 악화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10년 7월부터 제품의 가격을 최종 판매자, 즉 유통업체가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는 '오픈프라이스제'를 실시했다. 제조업체가 더 이상 포장지에 권장소비자가격을 적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오픈프라이스제로 유통업자들이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아이스크림 가격도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시점부터 아이스크림의 가격 결정권은 유통업체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제조 기술까지 발전하면서 상황은 더욱 달라졌다. 많은 제조업체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 이상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거다. 공급이 많아지자 제조업체들은 제 살 깎아먹기식 가격인하 경쟁에 돌입했다. 그 사이 대형 할인마트나 편의점 같은 유통업체들은 덩치를 키우고 가격 협상력을 높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부작용은 있었다. 가격 결정권을 쥔 몇몇 유통업체들이 1+1 등 각종 이벤트를 열고 '권장소비자가격 시절'보다 오히려 높은 가격에 아이스크림을 판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이스크림 가격을 올린 후, 마치 할인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이스크림은 매장에 따라 최대 3배의 가격 차이가 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2011년 아이스크림에 적용됐던 오픈프라이스제를 없앤다.

그런데도 유통업체로 한번 넘어간 주도권은 쉽사리 되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제조업체들은 경쟁업체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유통업체가 요구하는 대로 가격을 맞췄다. 대부분은 제조원가를 겨우 넘기는 수준으로 아이스크림을 판매했고, 몇몇은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아이스크림을 넘기기도 했다.

제조업체들의 실적은 점차 악화됐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2013년 1조9317억원 규모의 국내 빙과시장은 2015년 1조4996억원으로 줄었다. 2년 새 22.3%가 감소한 것이다. 제조업체들은 악화된 수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2016년 다시 한 번 권장소비자가격 도입을 시도했지만, 유통업계와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 수익적으로 벼랑 끝에 놓인 4대 제조업체는 몇몇 아이스크림을 정찰제로 팔기 시작했다. 더 이상 줄어드는 수익을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아이스크림 제조업체들은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한 제조사 간의 할인 경쟁이 더 이상 의미 없다는 판단을 했다. 커피 등 대체 시장이 커지면서 아이스크림 업계가 침체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제조사끼리의 경쟁이 줄어들면서, 모든 가격을 유통업체가 원하는 대로 맞춰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왜 '통 아이스크림'만 정찰제냐면

그렇다면 왜 하필 '아이스크림 바'가 아닌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들만 정찰제 대상으로 선택되었을까?

그것은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의 높은 원가 때문이다. 빙그레 관계자는 "지난해 빙그레가 팔고 있는 다른 아이스크림과 비교했을 때 투게더의 수익률이 유독 많이 떨어졌다"며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은 분유가 아닌 국내산 원유를 사용해서 원가 자체가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제조업체들은 적자폭을 메우기 위해 원가가 비싼 '통 아이스크림'을 정찰제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유통업체의 반발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빙과업계 관계자는 "아이스크림 바는 여름 성수기 미끼상품으로 팔아온 만큼, (이를 정찰제 대상으로 할 경우) 유통업체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태그:#더위사냥, #투게더, #빙그레, #아이스크림, #롯데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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