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고독하다. 우연히 생겨난 이 행성에서 철저히 고립돼있다. 인간의 주위에 가득한 생명체 중 개만이 유일하게 인간과 동맹을 맺었다." - 모리스 메테를링크

모리스 메테를링크 작가는 어둠 속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5월 4일 토요일 오후 7시에 성신여대역 '뜻밖의극장'에서 본 <인트루더>가 바로 그 작품이다. 연극 줄거리는 이렇다. 충실한 청교도 집안의 가족들이 보이지 않은 존재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고 그 교리에 맞게 살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외부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 집안과 집안간의 결혼을 유지하였다. 정은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 여자와 남편은 서로 사촌지간이었다.

극 중 가까운 촌수 간 결혼 때문인지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 중 한 명은 다리를 절고, 또 다른 한 명은 혀가 없어 말을 못했다. 그리고 세 번째 태어난 아이는 팔과 다리가 없고 한쪽 눈은 감겨 있고 울지를 못했다. 자식들의 상태에 정은이는 심한 우울증과 정신적 타격을 받고 자살 기도를 했다. 정은이의 이모는 정은이의 상태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가족들에게 숨기고 종교적인 힘으로 치료를 하려고만 했다. 연극은 치료를 위해 신부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시작이 된다.

이 연극을 쓴 작가는 1911년 노벨상을 수상한 벨기에 출신의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침묵과 죽음 및 불안의 극작가로 불린다. 작가는 학창시절 7년 동안의 생트 바르브 기숙학교 생활을 했는데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이 때문인지 작가는 신을 사랑이 아닌 공포로 군림하는 독재자로 간주한다. 이제 모리스 마텔르링크는 불가사의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인간이 볼 수 없지만 느낄 수 있고 함께 공존하는 것들에 대해 탐구를 하고 글을 썼다.
 
 연극 <인트루더>의 포스터

연극 <인트루더>의 포스터 ⓒ 뜻밖의극장

  
교리가 감추려고 한 진실은 뭔가

연극 <인트루더>는 '침입자 혹은 틈입자'를 뜻한다. 연극 속 인물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집착을 하고 있었다. 삶에서 현실의 무게를 짊어지기 힘들 때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관심을 가지는 심리를 표현하고 있었다. 실제로 삶이 버거울수록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믿음은 커져만 간다. 교리는 인물들을 속박하였고, 교리 내에서 삶을 맞춰 설계하도록 이끌고 있었다.

인물들에게 교리란 현실 그 자체였기에 태어난 자식들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았음에도 올바른 말과 성스러운 신이 나오는 교리를 통해 치료를 하기 원하며 진짜 현실을 어둠에 가둬버렸다. 가족들은 외부사람들의 접촉을 두려워하면서 오로지 종교의 힘으로 현실을 고쳐보려고 한 것이다. 인물들은 자신이 믿는 교리가 추상적인 무엇인가를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다.

인물들은 낮과 밤,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없는 시공 속에 자신들의 모습마저 가리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여기서 유일하게 현실을 보지 못하는 노인만은 뚜렷한 모습으로 자주 내비춰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두운 방안은 노인이 현실을 보지 못하도록 가족들이 일부러 꾸민 무의식의 행동이기도 했다. 노인이 보는 현실은 가족들과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가족이 숨기려 했던 무언가를 그 노인은 편견 없는 시각으로 느끼고 있었고 가족들은 노인이 '진실'을 말할 것을 계속해서 두려워했다.

우리는 때로 눈앞의 현실보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꿈꾸는 것, 존재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보길 원한다. 그래서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고 알 수 없는 그 모호한 대상을 믿고 따른다. 연극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의 그 숨기고 싶은 그 사실들을 눈을 뜨고 똑바로 바라봐야 합니다." 두 소녀처럼 혀가 없고, 다리를 절어도 현실은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기에, 노인과 같은 모습으로 현실을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연극 <인트루더> 배우들

연극 <인트루더> 배우들 ⓒ 뜻밖의극장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현실의 추악함

연극에는 '현실이란 눈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노인을 제외한 인물들은 종교 속에 자신을 바쳤고 꿈속과 같은 공간 속에서 오로지 소리와 서늘한 감각, 냄새만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있었다. 소름 끼친 건, 우리의 잠재의식에 담긴 욕구가 연극 속 무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현실'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다양한 감각들에 잡혀 있는 상태를 설명하는 장치와도 비슷했다.

실제로 현대인들은 많은 모습을 숨기고 살아간다. 연극 속 인물들처럼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현실을 해석해나간다. 인물들이 종교에 갇혀버린 것과 같이, 특정 사회 신념과 편견에 갇혀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편견을 거쳐서만 생각한다. 이것이 진짜 현대인들의 모습인 것이다. 노인처럼 오직 눈이 멀어야만 현실을 볼 수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눈앞의 현실보다 바라고 꿈꾸는 것을 보길 원하는 인물을 보며 '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이들에게 현실은 밝지 않고 흐리멍덩한 꿈 같은 곳이었다. 그렇기에 항상 방은 어둡게 유지했다. 연극 무대는 초 몇 개만이 켜져 있었고 밖의 어둠보다도 더 어두웠다. 마치 야외극장을 생각나게 했다. 연극 무대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들 역시 초들만으로 꾸며져 있었다.

연극은 어둠 자체였다. 어둠은 시각이 차단되기에 더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 가운데 소리는 너무도 뚜렷했다. 바람소리, 종소리, 발소리, 풀줄기 소리들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관객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을 움찔했고,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나 역시 보이지 않은 그 무언가에 두려움을 느끼며 그 어떤 공포 연극보다도 서늘한 시간을 보냈다. 아마 눈에 보이지 않는 각자만의 불안이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들 무의식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임을 다시금 느꼈다.
인트루더 모리스메테를링크 뜻밖의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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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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