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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9.13 주거안정 대책 발표 후 첫 주말이었던 지난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부동산 중개사무소의 모습.
 정부의 9.13 주거안정 대책 발표 후 첫 주말이었던 지난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부동산 중개사무소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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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명절 연휴 때 친척이나 지인들과 나눈 화젯거리는 단연 '부동산'이었다. 대화의 시작도 끝도 하나같이 치솟는 집값에 대한 것이었다. 안부를 채 묻기도 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떤 자리에서건 단도직입적으로 서로의 집값부터 확인하려 들었다.

몇 해 전 어렵사리 장만한 아파트가 1년 만에 3억이나 올라 기쁘긴 한데, 연봉보다도 6배 높은 이득을 얻어 당황스럽기도 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 2억이나 '공돈'이 생겼으면서도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한 대출을 받아서라도 한 채 더 샀어야 한다며 아쉬워하는 목소리까지, 즐거운 비명이 이어졌다.

부동산 중개업소 벽면에 나붙은 거래가격을 보고 연신 볼을 꼬집어봤다는 한 지인은 기분에 고급 외제 차를 할부로 '질렀다'고 말했다. 밥 안 먹고도 배부른 느낌이 꼭 이럴 거라면서, 그는 들떠있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어떤 이는 1억도 채 오르지 않았다며 되레 울상을 짓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만난 사람들 중에 '오른 집값'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는 없었다. 모두 한두 채씩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여전히 집을 장만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이가 끼어있었다면 애초 집값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부동산'에 빠진 평범한 사람들

그들은 이구동성 '부동산 불패'를 외쳤다. 수익의 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둔 아파트와 토지가 '배신'하는 법은 없다면서, 부동산에 '막차'라는 건 없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여느 때 같으면 여기저기서 섣부르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을 법도 한데, 그런 반응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명절날 주식으로 재미를 봤다는 이야기가 약방의 감초처럼 돌았는데, 이번 추석에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내로라하는 증권사들조차 직원들을 무더기로 내쫓고 있다면서 (주식의) 호시절은 갔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이 부침을 계속하는 동안에도 부동산만큼은 굳건하지 않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한, 모두가 평범하고 선한 이웃이고 선후배들인데, 부동산에서만큼은 하나같이 투기꾼을 방불케 했다. 신문을 펼치면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게 부동산 시세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정도다. 웬만한 공인중개사 뺨칠 만큼 부동산 관련 지식이 풍부하고 투자 전망에 환하다.

그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는 흡사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생소했다. 은행 대출과 관련된 것부터 경매와 계약에 대한 용어에 이르기까지 알아듣기 힘든 말투성이였다. 한 사이버대학교의 부동산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는 한 후배는 커리큘럼을 소개하면서 공부를 권유하기도 했다.

'세금 폭탄론'은 민망하지만... 정책에 대한 신뢰는 '글쎄'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동산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발표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한승희 국세청장,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이 참석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동산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발표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한승희 국세청장,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이 참석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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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를 끼고 대출받아 집을 사는 게 이른 시간 목돈을 쥘 수 있는 방법이라거나,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사람이 모여드는 서울과 경기도, 대도시라면 아무리 외진 곳이라도 집값이 떨어질 리 없다며 무조건 사서 묵혀두면 언젠가는 대박이 나게 돼 있다는 조언 아닌 조언도 들었다. 한 자리에서 두 시간 넘도록 오간 건 온통 부동산 이야기뿐이었다.

대화 도중 모서리가 헤진 주택 청약 통장을 보여주며 알뜰살뜰 저축해온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고, 빤한 월급에 투자라곤 매주 복권 사는 것뿐이라며 민망해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대학시절 운동권으로 이름을 날린 후배도 있고, 대학 졸업 후 위장 취업 이력이 있는 머리 희끗희끗한 선배도 있다. 과거의 삶이 어떠했든, 부동산만이 미래의 보증수표라는 것에는 모두 공감하는 눈치였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최근 정부가 치솟는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9.13 대책'으로 모아졌다.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상향 조정한다는 취지에는 모두 동의한다고 했지만, 내심 자신에게 튈 불똥에 대해선 주판알을 튕겨보며 민감해했다. 그럼에도 야당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꺼낸 '세금 폭탄론'에 대해서는 낯 뜨거운 주장이라고 이구동성 말했다.

일각의 '세금 폭탄' 주장은, 집 몇 채 소유한 수십억 부동산 부자가 기껏해야 몇십만 원, 몇백만 원 오르는 세금에 호들갑떤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원래 부자일수록 푼돈에 민감한 법이라며 눙치기도 했다. 더욱이 보수언론마다 앞다퉈 대변해주니 여론도 반신반의하다 부화뇌동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만약 집 소유주라면, 아무리 세금 부담이 커진다 해도 치솟는 집값이 주는 행복감을 넘어설 수 없다고 단언했다.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역대 정부의 부동산 세금 정책은 늘 '종이호랑이'였다면서, 이번이라고 다르겠냐는 거다. 고위공직자들이야말로 진정한 부동산 부자들인데 어느 누가 '자해 행위'를 하겠느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것은 범죄"... 바로 들어온 '반박'
  
정부의 9.13 부동산 대책을 앞둔 13일 오후 서울 도심에 밀집해 있는 아파트의 모습들.
 정부의 9.13 부동산 대책을 앞둔 13일 오후 서울 도심에 밀집해 있는 아파트의 모습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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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혼자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가 된 듯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햇수로 17년째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주식은커녕 그 흔한 로또 한 번 사본 적이 없는 나는 그들의 삶에 조금도 공감할 수 없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던지 나를 '남산골 샌님'이라며 놀려댔다.

"부동산은 말 그대로 고무줄처럼 늘이고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어차피 거래는 '제로섬' 게임이죠. 누군가 이익을 봤다면, 어느 누군가는 꼭 그만큼의 피해를 받게 된다는 거죠. 곧, 치솟은 집값만큼 집 없는 이들의 내 집 마련 기회는 더욱 멀어지는 거잖아요.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부동산으로 돈을 번다는 건, 거칠게 말해서, 범죄라고 생각해요."

작심하고 내뱉은 이 말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썰렁해졌다. 한참 동안 혀끝으로 굴리며 꺼낼까 말까 망설였지만, 입 다물고 있으면 그들 생각에 동의한 꼴이 된다 싶어서 용기를 냈다.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서먹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남들 다 진흙탕에서 뒹구는데, 혼자 고결한 척하면 자신만 손해죠.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잖아요. 대책은 정치인들이 만드는 거고,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남들 하는 대로 따라 가야 하지 않겠어요? 공연장에서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혼자 꿋꿋이 앉아있는 건 바보 같은 행동 아닌가요?"

"부동산 투자를 범죄로 보는 건 지나치다고 봐요. 수많은 관련 정보를 모아 예측하고, 모험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은 엉뚱하지만, 복권처럼 운도 크게 작용하는 걸 보면, 조상이 내린 복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들 앞에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꾸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칫 큰 다툼으로 비화될 것 같아 부러 그만둔 것이다. 그들의 의견은 다양했지만, 정리하자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는 것과, '사람들의 눈이 하나인 사회에서는 눈이 두 개인 사람이 비정상'이라는 것.

재미있는 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들 모두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 후보에 투표했다는 점이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생각은 적어도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과는 관련이 없는 셈이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세태는 부동산 투자에 관한 한 우리 사회의 불문율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2017년 4월 24일 오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주거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 문재인 "집 걱정 안해도 되게" 지난 2017년 4월 24일 오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주거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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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확대와 부동산 보유세율 인상은 문재인 후보의 부동산 정책 관련 핵심 공약이었다. 또, 부동산 투기 등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환수해 노동 의욕이 꺾이는 걸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를 선택했다는 건, 그런 그의 공약을 지지하고, 공약을 실천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는 의사 표시다.

그런데 투표만 하고 자기 할 일 다 했다는 식으로 강 건너 불구경하는 건 성숙한 시민이라고 할 수 없다. 하물며 공약 실천에 동참은커녕 방해해서야 되겠는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아니 적어도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만이라도 부동산 투기로 돈 벌 궁리를 버릴 순 없는 걸까. 지금도 어느 종편 채널에선 서울의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를 거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태그:#9.13 부동산 대책, #부동산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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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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