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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 매주 한 번 '저축의 날'이 있었다. 학교에 통장과 돈을 가져가면 은행에서 학교까지 출장 나와 예금 업무를 처리해주었다. 학기별 가장 많이, 자주 저축하는 학생에겐 '저축왕'이라는 상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돈은 저금하는 것으로 배웠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수업은 없었다. 현재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저축의 날은 없지만, 돈을 어떻게 벌고 쓰는지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도 여전히 없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IMF가 찾아왔다. 텔레비전에서는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고, 사람들은 "식사하셨어요?"라는 인사보다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를 더 자주 하게 됐다. 돈이 많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인식이 짙게 깔리는 시대의 상징을 표현하는 인사말이었다.

지금은 "행복하세요"라는 인사말이 유행이지만 행복의 전제에 돈은 빠뜨릴 수 없는 개념이 되어버렸다. 물론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자위를 하곤 한다.

결혼을 하고 가끔 부부싸움을 한다. 부부싸움의 이유 중 돈 문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한정된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논쟁이 생긴다. 어릴 적 돈을 쓰는 경험이 부족한 나는 지출을 가급적 하지 않는 편으로, 아내는 필요한 것은 쓰는 편에 서서 대립한다. 필요한 것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고, 아내는 불편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잠깐이나마 필요한 것도 사야 한다는 논리였다.

 
행복한 어른이 되는 돈 사용설명서 표지
 행복한 어른이 되는 돈 사용설명서 표지
ⓒ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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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어른이 되는 돈 사용설명서>를 쓴 미나미노 다다하루는 타인, 사회, 자연환경에 대한 성찰이 있는 돈의 지출이 있을 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답게', '현명하게' 삶의 목적에 대한 고민은 돈을 의미 있게 쓰는 데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게임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도록 하며 시작한다. 특별히 답을 알려주지도 않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스스로에게 답을 구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돈과 사회,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전달한다.

청소년들에게 나답게 사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알려주면서 자립을 위한 도전과 실패를 강조한다. 성장통이 필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에서 선택과 소비의 가치관 형성과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실습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처음 <행복한 어른이 되는 돈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저축은 잘하고, 지출은 최소화하여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습관을 형성하는 것을 안내하는 책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이 책은 '살아 있는 돈'을 강조한다. 선택과 소비가 미래 사회를 결정하는 하나의 '투표행동'이라고 말하며, 어떻게 돈을 사용해야 하는지, '나답게'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을 강조한다.

세상에는 양심적인 기업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소비자로서 현명하게 구분하여 선택과 소비를 한다면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기업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바른 기업은 성장하게 된다는 뜻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이 세상을 만든다.

돈의 소유의 측면에서 공유의 관점으로 확장하는 폭넓은 시야를 제시하여 돈을 바르게 씀으로써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말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돈의 사용법을 익혀야 된다는 것이다.

제한된 '돈'을 두고 싸우는 일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는 길이다. 현재 빈부의 차, 부의 쏠림 현상은 가진 자도 가지지 못한 자도 행복하지 못하게 만든다. 가진 자는 더 가지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들고, 가지지 못한 자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다가 상처 받는 불행에 시달리기도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설 수 없을 때에는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을 상황에서는 흔쾌히 돕는 사회를 어려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작은 돈을 바르게 쓰고, 모으는 방법과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나는 가끔 학교에서 학생의 푸념을 듣는다.

"돈만 있으면 할 수 있을 텐데, 전 돈이 없어서 무리예요."

돈의 탓으로 돌리는 그가 안쓰럽기도 하고 그런 세상을 산다는 것이 개탄스럽기도 하다. 실제 돈의 힘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 친구는 방학 때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비싼 과외도 한다.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내가 살기 위해서 서로 도와야 하고 '함께'라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돈을 얻기보다는 사람과 교류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소유의 개념보다 공존, 공영을 위한 공유의 개념이 중요한 시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돈의 탓으로 돌리는 그가 위로받으면 좋겠다.

10대를 위한 경제적 자립 수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청소년의 경제적 자립을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운영 중인 독서IN(www.readin.or.kr) 홈페이지 독서카페에 중복 게재합니다.


행복한 어른이 되는 돈 사용설명서 - 10대를 위한 경제적 자립 수업

미나미노 다다하루 지음, 홍성민 옮김, 공명(2017)


태그:#황왕용, #행복한 어른이 되는 돈 사용설명서, #돈, #경제,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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