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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돈을 뵙고 싶어도 우리 사위는 밥을 한 번도 안 사주네요."

올해 설 연휴 때 어머니의 휴대폰 너머로 들리던 장모님의 웃음 섞인 목소리였다. 두 분이 이런저런 자잘한 안부를 물으시던 중에 어머니께서 '식사라도 한 번 해야 하는데요'라고 묻자 그렇게 농담 삼아 맞장구치신 것이다.

뜨끔했다. 평소에 어머니께는 안부 전화를 드리면서도 장인·장모님께는 연락이 뜸했던 게 사실이었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두 분도 내심 서운하셨음이 분명했다. 한 번 날 잡아 내려가서 양가 어른들 모시고 식사 한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4월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내려가기 전날 퇴근길에 어머니와 장인·장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미리 연락드리면 약속이 있다고, 내려오지 말라고 하실 것 같아서였다.
처음엔 '주말이라 피곤할 텐데 일부러 혼자 내려오느냐, 그냥 애들이랑 집에서 맛있는 거 먹고 쉬어라'라고 말씀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말이 "그래도 보고 싶으니 얼른 조심해서 내려오너라"로 들렸다.

토요일 오후 업무를 마치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한걸음에 내려갔다. 먼저 군산에 도착해 어머니를 모시고는 장인·장모님이 계시는 전주로 차를 몰았다. 어른들을 모시고 먹을 저녁 메뉴를 정하는 데는 아내의 훈수가 도움이 됐다.

우리 집은 으레 설이나 추석 명절에 음식 장만하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형수님, 아내를 위해 점심 한 끼는 외식을 한다. 상을 차리는 수고를 덜어드리고 싶어 금강하구둑 관광단지에 있는 칼국숫집에 들르곤 했다. "오늘은 제가 바지락칼국수 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맘껏 드세요"라며 생색도 냈다. 어느 날엔가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아내의 말을 듣기 전까지 몰랐다. 내가 눈치 없는 아들이었는 줄은.

"여보~ 어른들은 칼국수 안 좋아하셔. 고기를 좋아하시지."

 "여보~ 어른들은 칼국수 안 좋아하셔. 고기를 좋아하시지."
 "여보~ 어른들은 칼국수 안 좋아하셔. 고기를 좋아하시지."
ⓒ fl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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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우전문점으로 세 분을 모셨다. 나도 모처럼 큰 사위 노릇 하는구나 싶었다. 준비해온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기념사진도 담아드렸다. 내 흥에 취해 떠들다 보니 아뿔싸, 장인어른이 자리에 안 계시는 거다.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계산대 앞에 선 장인어른은,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듯이, 공중에서 신용카드를 휘두르고 계셨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제가 계산할 거라고 뒤늦게 지갑을 꺼내 달려들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비싼 한우 사드리고, 점수 좀 따려 했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장인어른은 나름 명분이 있었다. 오랜만에 안사돈과 식사 자리인데, 본인이 내는 게 도리라고 말씀했다. 그래도 맏사위는 음식값을 내지 못해 못내 서운했다.

지난 7월 말 장모님 생신에 맞춰 아내와 찾아뵙겠다고 처가에 연락을 드렸다. 장인어른은 어머니를 지난 번처럼 모시고 같이 식사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어머니, 이번 주에 장모님 생신이셔서 전주 내려가는데, 장인어른이 어머니 모시고 같이 식사하고 싶다고 하시네요."
"그냥 두 분만 모시고 식사해라. 처음은 멋모르고 따라갔지만, 혼자는 멋쩍다."


안 가겠다고 버티셨다.

"너희 작은 형네랑 같이 가면 모를까..."
"어머니! 한우전문점은 비싼 데라 작은 형 네 식구까지 가면 고깃값 많이 나오는데."
"그러니까, 두 분만 모시고 식사해. 올라가기 전에 반찬 가지러 잠깐 들르고."


어머니는 밀당의 고수다.

"알았어요. 그럼 작은 형에게 시간이 되는지 한 번 연락해볼게요."

오랜만에 다시 상견례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멤버도 그때랑 비슷하다. 아버지의 자리가 비고, 조카들을 위한 자리가 생겨났을 뿐이다. 장모님은 어머니가 예전보다 허리가 더 많이 굽으셨다고, 어쩌냐고 어깨를 감싸 안으셨고, 어머니는 장모님이 많이 여위셨다며 두 손을 맞잡아주셨다.

북새통이던 고깃집을 뒤로하고 장인·장모님 댁 근처 카페에 모두 모여서 차를 마셨다. 후텁지근한 밤공기를 한차례 소나기가 흩고 지나간 후였다. 카페 주변에 고즈넉한 바람이 살랑거렸다.

유자차가 뜨거운 탓인지 세 분은 입김을 불어가며 천천히 드셨다. 언제까지나 곁에 머물고 싶은 내 마음처럼 찻잔에서 천천히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치인문학 문예지에 중복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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