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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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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은 모두 지금껏 차별과 억압을 받아왔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받아온 억압과 차별의 무게만큼 목소리가 크고 격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는 그 울부짖음을 두고 "좋게 말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화를 내냐"고 말한다. 그러면서 되레 더 화를 내거나, 아예 들은 체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과연,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그들의 분노를 두고 "너무 심하다" 또는 "너무 거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대학교 교양 과목으로, 심리학 수업 중이었다. 수업 중에 교수님이 한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주제는 '복장과 첫인상'에 대한 것. 내용은 한 남성 모델을 두고, 시민들에게 "저 남자가 데이트 신청하면 받아줄 것이냐?"를 묻는 것이었다. 응답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아마도 주제가 '남성' 모델이었으므로. 나는 그 장면이 꽤 씁쓸했는데, 우리 사회가 '이성애'만을 사랑의 전형으로 생각한다는 방증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영상의 마지막에는 주목할 만한 장면이 나왔다. 같은 질문을 한 남성 시민에게도 한 것이다. "저 (남자)모델이 데이트 신청할 거면 받아줄 거냐?"라고 물었다. 어쩌면 학생들은 그 대목에서부터 꽤나 흥미로웠을 테다. 어쨌든, 그 남성 시민 분은 "일단은 받아들이고 좀... 그래도 지켜는 봐야죠"라고 대답했다. 물론 PD가 의도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남성 모델의 데이트 대상을 오직 '여성'만으로 한정짓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그 장면이 퍽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그 순간, 강의실은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었다. 남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한 데이트에 고민을 해보겠다니, 학생들은 그게 웃긴 거였다. 동성애적 요소를 오직 웃긴 것으로만 치부하는 것. 이는 전형적인 호모포비아(Homophobia)였다. 이성애가 전형이 되는 사회에서 동성애는 늘 이런 식으로 농담 혹은 웃음 거리, 또는 '이상한(Queer)'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 일반적 정서는 커다란 강의실에 울려퍼진 웃음 소리로 실현되었다.

나로선 그 집단 혐오의 장면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토론 발표 시간이 됐을때 앞으로 나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그때 웃었으면 안 됐다. 강의실에 성소수자 학생이 있었다면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느냐"라고. 많은 통계에 따르면 그 비율이 10%라고 하니, 결코 이 강의실에 성소수자 학생이 없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는지, 피식피식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 한 학생이 저 뒤쪽에서 손을 들고 말했다.

"내가 그 성소수자입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아까 기분이 어땠냐 물었고, 그 학생은 다소 감정적 어조로 "X같았다"라고 말했다. 학생들도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숙연해졌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 순간 학생들은 모두 한 개인의 정체성을 비웃은 가해자였으니까.

그 다음 주에 다시 그 수업이 있었다. 지난 주에 손을 들어주셨던 성소수자 학생 분의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발표 주제는 소수자 혐오, 흑인 혐오, 여성 혐오 등 '사회의 각종 혐오'였다. 나는 그 '금기의' 주제가 발표로 나왔다는 것이 참 반가웠다. 그리고 그 학생 분은 연단에서 "저번 주에 정말 기분 X같았다. 여러분들도 정말 다 X같았다"라고 이야기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감히 그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해지는 것이었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기에 함부로 공감을 운운할 수는 없지만, 성소수자가 지금껏 대한민국 사회에서 겪어온 억압과,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처참한 폭력은 내가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발표가 끝나자,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고 그 발표자 분에게 말했다. "X같다고 말하는 당신이 더 X같다", "그래도 공적인 발표 자리에서 너무 말이 심한거 아니냐, 말 좀 가려가며 해라". 심지어는 "발표자 말이 너무 심해서 토론 참여도 못하겠고, 왜 이렇게 피해자만 생각하고 가해자는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나는 이번에도 그 마지막 발언만큼은 참을 수가 없어서, 또 흥분해서 손을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당신들은 가해자가 아닐 것 같냐고, 가해자가 가해를 의도하고 인식할 때에만 폭력이 발생하는 줄 아느냐"고 말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할 말도 제대로 다 하지 못한 채 발언을 마쳐,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학생 분도 발언을 했다. 한 학기 내내 토론 발표를 하지 않았던 학생 분이었다. "발표를 그동안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해야 할 것 같아서 한다"고 하며, 자신도 성소수자임을 눈물로 말하셨다. 그리고 지난 주 수업 영상에서 동성애적 코드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웃었을 때에 정말 큰 상처를 받았다고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너무 분통이 터지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시끄럽지 않은 사회, '가장된' 평화

 혐오는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조용하게 발생한다. 그리고 조용하기만 한 평화로는, 그 혐오를 찾아낼 수 없다.
 혐오는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조용하게 발생한다. 그리고 조용하기만 한 평화로는, 그 혐오를 찾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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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비단 강의실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상처 받고 아파서 울부짖는 피해자들에게 말한다. "그래도 그렇지, 말이 너무 심한거 아니냐"고. "말 좀 가려가며 하라"고. "공적인 자리는 좀 구분하라"고.

그런데 그 피해자는 정말 자신이 느낀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X같았으니까 "X같았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그들의 말에 따라 만약 그 학생 분이 "기분이 나빴다" 정도로 말했다면, 과연 감수성 없어서 그런 웃음으로 공격했던 그 학생들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이해하기나 했을까? 나는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순화하고 조용히 해서도 말을 알아들었다면, 한국 사회에서 모든 혐오 문화는 애초에 사라져야 한다.

게다가 "기분 나쁘다"와 "X같다"는 그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소수자가 아닌 이성애자들은 결코 사회적 성소수자가 겪는 상처의 무게를 알 수 없다. 자신의 정체성이 사회와 타인에 의해 완전히 비웃음 당하고 짓눌리는 고통을 말로 설명이나 할 수 있을까. 나 조차도 결코 알 수 없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고 그래서 이 기사를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아마 덜 감정적인 어조로 "기분 나쁘다"라고만 말했다면, 사람들은 그냥 그 정도로만 '덜' 기분이 나쁜 줄 알았을 것이다.

더불어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도대체 피해자들은 어디에서 이야기나 할 수 있을까. 가해자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소수자를 비웃어 상처를 줘놓고, 왜 공적인 자리에서의 울부짖음에는 격하게 반응하는 것인가. 그리고, 가해자 한 명 한 명은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찾아와 피해 사실을 말해주길 바라는 건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X같다"라는 울부짖음을 들어줄 준비는 되어 있는가?

학생들은 호모포비아적인 웃음을 날려 상처를 줘놓고, 울부짖는 피해자를 "폭도"로 몰아가며 또 한 번 상처를 준 것이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를 줘놓고, '내가 생각 없이 한 행동이 얼마나 상처였으면 (그들의 말마따나) 공적인 자리에서까지 저런 표현을 썼을까, 정말 얼마나 속상했을까, 정말 면목이 없다'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걸까. 왜 상처를 줘놓고, 피해자의 입장은 생각지 않은 채로 언짢은 제 기분만 생각하는 걸까.

분위기가 과열되자 교수님도 수업 마지막에 말을 거들었다. 교수님 역시 그 상황을 '좋게 좋게' 끝내려는 듯했다. "학생들이 훈훈한 분위기를 바라서 그러는 것 같아요"라고.

그렇다. 사람들은 그게 평화인줄 안다. 우리 사회는 늘 그래왔다. 그저 세상이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평화로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평화주의자라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래서 그 학생이 "X같다"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건 얼마나 폭력적인 세상인가.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의 세상을 뒤흔들어 놓고, 그 결과는 평화이길 바란다니.

혐오는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조용하게 발생한다. 그리고 조용하기만 한 평화로는, 그 혐오를 찾아낼 수 없다. 평화를 찾아가기 위해 우리는 시끄러워야 한다. 부디 자기 기분을 생각하기 전에 자기가 저지른 일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회가 되기를. 어떤 일을 저지르기 전에 먼저 그 여파를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주전자에서 물이 끓어 뚜껑이 팔딱팔딱거리면, 왜 그렇게 팔팔 끓냐고 주전자를 탓할 게 아니라, 뚜껑을 열어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사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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