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포스터 ⓒ 티캐스트


명확한 사건에서 시작했지만, 영화는 끝끝내 교차로에 선 주인공의 모습을 비춘다. 판결은 종결됐지만, 여전히 남은 진실공방은 여전히 관객들을 희미한 안개 속에 가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세 번째 살인>은 살인을 자백한 미스미의 판결을 의뢰받은 변호사 시게모니의 분투를 다룬다. 의뢰인보다는 의뢰인의 이익에 더 관심 많은 시게모리 변호사이지만, 진실을 추적할수록 점차 사건의 진실에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파헤칠수록 미스미와 그를 둘러싼 여러 파편을 그를 진실로부터 멀리 밀어낸다.

 미스미의 법조인단

미스미의 법조인단 ⓒ 티캐스트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세번째 살인>은 법정 영화의 형태를 보이며, 다양한 법조인들의 양태를 다룬다. 의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것이라 믿었지만, 법적 판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잣대는 진실의 깊이보다는 법리적 효율성이었다. 사건 당사자 없이 변호사, 검사, 판사가 먼저 모여 사건 의제를 정하고, 재판을 연출하는 장면은 우리가 깊게 믿었던 신성한 법리적 판단의 이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는 영화 속 진실을 밝혀내는 데 방해하는 주요 안티테제는 살인을 자백한 미스미다.

 영화의 첫 장면. 미스미의 살인후 장면

영화의 첫 장면. 미스미의 살인후 장면 ⓒ 티캐스트


시게모니의 추적으로 이쯤 되면 한 발 더 진실에 다가갔다고 믿었지만, 미스미와 시게모니의 접견은 다시금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린다. 법리적 이익보다는 자신에 대한 진실한 이해를 바라는 미스미의 태도. 하지만 끊임없이 이전의 증언을 번복하는 위증하는 상항은 그의 진정성은 물론 영화의 전제였던 그의 자백조차도 의심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미스미와 시게모니가 영화 속에서 만난 7번의 접견은 진실로 향하게 하는 문이라기보다는 주인공의 목적달성을 방해하는 의도된 영화적 장치이기도 하다.

 접견하는 미스미와 시게모니

접견하는 미스미와 시게모니 ⓒ 티캐스트


하지만 접견이 늘어나고, 추적이 진행될수록 미스미란 인간에 대한 탐구는 깊어진다. 미스미가 저지른 첫 번째 살인과 이후의 삶. 곁을 떠나 만날 수 없는 딸에 대해 그리움. 그가 살해한 공장 사장의 딸과 새로운 국면.여러가지 정황과 단서가 겹쳐지면서 영화는 단순히 사건의 진실을 좇는 범죄 스릴러에서 선과악, 구원과 용서, 진실의 진정한 의미 등을 묻는 고차원적 이야기로 확장한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법정이라는 무대를 빌렸을 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여전히 인간에 대한 질문과 탐구로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확장해 본다면 미스미가 자백한 두 번째 살인과 그 진실공방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존재하는 맥거핀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실공방에서 벗어나 영화를 바라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제목처럼 '세 번째 살인'에 도착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속 세 번째 살인은 미스미에 대한 사형선고다. 변호사 시게모니는 의뢰인의 감형을 끝까지 도왔지만 미스미의 모호한 태도로, 중간에 죄를 타인에게 넘길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그의 이중적 태도로 수포가 된다. 두 번째 살인에 집중해 영화를 본다면 미스미의 이러한 태도는 진실을 방해하는 방해 공작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 번째 살인을 시작점으로 영화를 재구성한다면, 일관되게 진행된 그의 모호한 태도는 일부러 사형선고를 받기 위한 미스미의 고난도 심리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디렉팅하는 감독

디렉팅하는 감독 ⓒ 티캐스트


발화되지 않았을 뿐, 어느 순간부터 시게모니가 쫓는 진실 역시 세 번째 살인 동기로 귀착되었다. 미스미는 왜 사형선고를 받으려 하는가? 두 번이나 살인을 저질렀던 살인범은 왜 세 번째 살인으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는가? 마지막 뿌연 안개 속 교차로에 서 있는 주인공의 모습처럼 영화는 그 해답을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세 번째 살인이 법리적 효율성에 의한 제도적 판단이 아니라, 한 인간이 선택한 자신의 운명이라는 점이다.

다양한 인간적 고찰을 한 이야기 전개에 담아 여운을 전달하는 능력은 물론, 감독은 이를 영화적 언어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특히 좁은 접견실에서 이뤄지는 미스미와 시게모니의 대화 연출은 이 영화의 백미이기도 하다. 장르 영화의 특성을 비틀어 자신의 인간적 탐구영역을 확장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는 결코 영화 속 이야기를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세상의 부자유를 받아들이고 그 부자유를 영화 속에서 재현해내는 감독. 그의 영화는 그 존재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세번쨰 살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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