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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프 미안·아미르 수피 지음 / 박기영 옮김)
▲ 빚으로 지은집 (아티프 미안·아미르 수피 지음 /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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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에 의존한 성장의 위험성

지난 박근혜 정부 집권 기간 동안 가계부채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016년 말 기준 가계부채는 1342.5조원이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2012년 말만 해도 963.8조 원 수준이던 가계부채는 집권 4년 만에 400조 원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한해 100조원씩, 유례가 없는 속도로 가계 빚이 는 셈이다. 이쯤 되면 박근혜 정부는 '부채주도성장'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사세요!' 정책이 한참인 2014년, 부채에 의존한 성장의 위험을 알리는 책,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 2014년)이 번역 출간됐다. 이 책에서 저자 아티프 미안(Atif Mian)과 아미르 수피(Amir Sufi)는 미국 경제위기의 원인이 바로 가계부채의 급증이었다고 결론지었다.

무분별한 가계부채의 급증은 소비 지출의 감소를 가져오고 불황으로 이어진다. 불황은 가진 것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힌다. 더욱이 가계부채는 빚을 진 가계들의 자산에 타격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 시스템을 돌고 돌아 결국 한 배를 탄 모두에게 손실을 입힌다. 가계부채가 경기 침체의 근본 원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빚은 소비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빚은 압류를 불러오고, 압류가 일으키는 외부 효과는 집의 가치를 더욱 떨어뜨린다. 그리고 집값 하락으로 인한 손실은 빚이 많은 가계에 집중되는데 이들의 한계 소비 성향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가계부채가 증가 및 부실이 소비침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이 과정이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프로세스였다.

새로운 은행시스템을 상상하라, 공유형 모기지

저자가 말하는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현재 채권자와 채무자간의 과도한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금융위기가 채무자에게만 과도한 고통이 가중되어 총수요의 급격한 감소를 통해 일어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채권자와 채무자간의 고통이 분담되는 금융구조개혁이 필요하며 위기 시에는 대규모의 신속한 채무 계약 재조정(부채탕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구체적인 아이디어 중에 하나가 '책임분담모기지'다. '책임분담모기지'는 '담보를 통해 돈을 빌려주는 채권 형태의 대출과 달리 위험과 수익을 공유하는 '주식(equity)' 형태의 모기지다. 채무자에게만 과도하게 위험이 전가되는 기존 대출이 아닌 은행, 예금주, 대출자, 정부 모두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위험을 일정부분 공유한다. 이익이 났을 때도 함께 나누도록 함으로써 부동산 투기를 막는 효과가 있다. 또한 가격 급락에 따른 부도 위험과 시장충격도 함께 줄인다. 은행의 이익만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지만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다.

너무 먼 소린가. 우선 가깝게는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도 당시 도입 시늉만 했던 '손익공유형모기지' 아이디어가 이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은행에서 1%대 장기 저리로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되, 집값 상승과 하락에 따른 이익과 손해를 은행과 대출자가 함께 공유하도록 하는 모기지다. 2014년 도입 당시에는 7000억 원 한도가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2차부터는 정부와 은행의 의지 부족으로 흐지부지됐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부채탕감정책

사실 문제는 정부와 은행의 의지 부족만은 아니다. 빚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금융시스템이 부의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음에도 국민행복기금 중 10년 이상, 1000만 원 이하 연체 채무자의 빚을 전액 탕감해 주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에 당장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이들은 빚 열심히 갚고 있는 채무자들이었다. 이들 중 은행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 언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과도하게 빚에 의존한 현 경제시스템의 전환으로만 가능하다. 과도한 집값 상승과 연동되어 있는 채권자 중심의 금융시스템에도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 저자는 빚에 의존한 경제시스템에서는 일반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큰 효과가 없다고 일갈한다. 과감한 부채탕감정책으로 총수요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불황을 타개하는 주요 거시정책이라고 본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대공황 시절 미국 정부는 채무자를 돕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음을 예로 든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정책은 주택소유자대부공사(HOLC:Home Owners' Loan Corporation의 설립이었다. 주택소유자대부공사는 세금을 이용해서 설립한 정부 소유의 은행으로 민간 채권자들로부터 모기지 대출을 사들여서 채무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 조항을 수정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채무조정, 부채탕감정책의 일환이었다.

촛불시민들은 간절히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기원한다.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새로운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가계부채, 집값 상승, 기득권의 저항 등 만만치 않은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 문제를 과연 문재인 정부가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패러다임과 과감한 도전이 요구된다. 문제해결을 위한 뜻과 지혜가 모아지기를 염원한다.


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열린책들(2014)


태그:#빚으로지은집, #가계부채, #소득주도성장, #부채탕감, #채무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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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존엄하다는 믿음으로 태어나면서 모두에게 주어진 토지권과 주거권을 보장하는 정신입니다. 희년정신을 한국 사회에 전파하기 위해 토지배당, 기본소득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희년함께 희년실천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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