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책표지.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책표지.
ⓒ 오픈하우스

관련사진보기

물건이 흔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만큼 오래 쓰는 물건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손에 익어 이제 좀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어 정들만하면 망가져 쓰지 못하게 되거나, 불과 몇 달 만에 구닥다리가 되고 말아 아쉬운 물건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소소한 물건이랄 수 있는 수세미만 해도 워낙 많은 제품이 있다 보니 하나 고르고자 고민하는 시간도 늘었습니다. 나름 심사숙고해 샀으면서도 얼마 못가 스스로 시시해져 밀쳐두고 마는 물건들도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만 그럴까요?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오픈하우스 펴냄)의 주인공들은 남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잡아끄는, 오래도록 써도 물리지 않는 그런 물건들입니다.

쉽게 사서 잠깐 쓰고 버리는 물건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손에 익어 오래 쓰게 되는 물건도 있더군요. 입소문 이유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물건들도 있고요. 좀 비싸게 샀다 싶었는데 쓰면 쓸수록 그 가치가 느껴져 도리어 싸게 샀다고 생각하는 그런 물건들도 있고요.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거의 매일 아주 유용하게 쓰는 물건들도 보이고요. 몇 년 째 다른 제품을 곁눈질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선택해 쓰고 있는 그런 제품도 몇 개는 있더군요. 이처럼 남다른 물건들을 '생활명품'이라고 정의, 어떻게 나온 어떤 물건이며, 어떤 점이 좋은지, 그 제품만의 독자적인 역사 등을 소소하게 풀어쓴 책입니다.

'얕은 바닷물에서는 기둥을 세우고 김발에 포자를 뿌려 양식하는 '지주식'을 즐겨 쓴다. 간만(干滿)의 변화로 수위가 달라져 김발이 공기 중에 드러나고 잠기길 반복한다.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생장하므로 자연 김의 생태에 근접한 양식법이다. 추울수록 생산량은 적지만 맛 좋은 김을 얻게 된다. 다른 방법으로는 '부유식'이 있다. 김발을 바다 위에 띄워 양식한다. 너른 면적으로 펼칠 수 있어 생산량은 높지만 맛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어느새 우리나라 전역의 김 양식 어민들은 부유식 양식법(일본에서 도입된)을 쓴다.

어떤 양식법이건 장단점이 있다. 어떤 방식이건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 김 양식의 골칫거리인 파래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래가 붙은 김은 상품성과 맛이 떨어지게 된다. 파래를 제거하기 위해 쓰는 약품이 있다. 바로 강산성의 독극물 염산이다. 김발에 염산을 뿌리면 파래만 선택적으로 제거되는 효과가 있다. 먹는 김에 무차별 살포되는 화학약품의 양은 상당하다. 우리가 먹는 김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이다.' - 271~274쪽에서.

책이 소개하는 물건들은 신발, 옷, 우산, 문구, 먹거리, 캐리어, 안경, 화장품, 보일러, 등긁개, 보온병 등과 같은 45개 생활용품들. 이들을 ▲일반적인 제품들에서는 볼 수 없는 기능 한두 개 더해진 것만으로 생활이 훨씬 편해지는 물건들과 ▲변화가 빠름에도 불구하고 오래 정들이며 함께 하고 싶은 디지털 기기들 ▲취향이나 기호가 강하게 반영되는 물건들 ▲입을 즐겁게 하고 몸과 마음에 포만감을 주는 음식 등 5부로 나눠 소개합니다.

그중 가장 솔깃하게 와 닿은 것은 '무산 김' 이야기입니다. 십여 년 전, <생명과 환경의 수수께끼>(조홍섭, 2005년)란 책에서 김 양식으로 인한 이와 같은 바다 오염,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읽은 이후 한동안 밥상에 올리지 않을 정도로 충격이 컸기 때문입니다.

책에 의하면 '김 양식에 살포되는 염산 오염이 얼마나 심한지 김 양식장 부근의 바다에서는 고기가 잡히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오래전 우리가 먹었던 김들과 달리 쓴맛이 미세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입맛이 변해서 또는 먹을 것들이 흔해져서가' 아니라, 파래만을 죽인다고 살포되는 염산 때문이라고요.

십여 년 전에 읽은 책 저자는 염산을 쓰지 않고 손과 정성을 많이 들여 양식하는 김 한 톳 값은 당시 십여 만 원.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예 계약해 놓고 먹거나, 일본에 수출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값비싼 먹거리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서 맘이 좀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불편한 존재인 '김'이었습니다.

'장흥의 김 양식 어민들이 먼저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전국에서 제일 먼저 염산을 쓰지 않는 양식법을 실천했다. 장흥에서 생산되는 김의 이름을 '무산(無酸) 김'으로 부르는 이유다. 산을 쓰지 않는 대신 김발을 바닷물 위로 들어 올려 공기 중에서 노출시키는 번거로운 작업이 필연 추가된다. 김은 햇빛과 바람을 이겨내고 파래는 죽는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염산을 뿌리면 이 과정이 줄어들지만, 무산 김은 더 많은 노동력과 비용을 감수하고 염산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지켜본 김의 생산 과정은 지난했다. 작업 강도가 고되고 반드시 시간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효과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 방식을 확신해도 혼자서 고집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테다. 바닷물에 뿌린 염산이 확산되어 퍼지면 개인의 노력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흥군청에서 무산 김 생산 어민들을 지원한다. 조합을 결성한 어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배려한 조치다. 100군데가 넘는 장흥의 김 양식장 모두가 무산 양식을 선언하게 된 바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초는 공동 가공을 거쳐 시장에 풀리게 된다. 제법 큰 시설을 갖춘 공장에서 건조와 후가공이 이루어진다. 장흥에서 생산된 김은 모두 '무산 김'이란 브랜드로 통용된다. 다른 지역 김과 구분하기 위한 조치다. - 274~275쪽에서.

그런데 이 책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에 의하면 이처럼 염산을 뿌리지 않고 양식하는 김도 있다고 하네요. 다행스럽고 반갑게도! 아마도 이 책에서 다루지 않았다면, 아니 읽지 못했다면 '무산이란 지역에서 생산하는 김이라 무산 김' 정도로 지레 짐작하며 그 가치를 몰라 여전히 지나치고 말았겠지요. 김에 대한 찝찝함을 여전히 가진 채로 말입니다.

우리 밥상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김. 여유 있게 구입해 놓고 반찬이 왠지 부족하다 싶을 때 입맛 살려 먹기에 좋은 국민 먹거리. 그래서 더욱더 참으로 다행스러운 소식인데요. 더욱 다행스럽고 반가운 것은 고흥군 어민들도 무산 양식에 동참하기로(책의 시점) 했다는 소식입니다. 염산을 쓰지 않는 어민들께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책은 저자의 생활명품 시리즈 세 번째 책입니다. 저자가 앞서 썼던 두 권의 생활명품 책 그중 한 권(관련기사: 마르고 닳도록 쓴 게 명품이라고?)을 읽었는데, 책 덕분에 자주 사용하면서도 특별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와 함께 살아가는 물건들을 헤아려 보게 되고, 나아가 물건을 신중하게 고르는 노력과 안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소비자로서 다양한 물건들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 쓸 수 있는 것도 생활 속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무 물건이나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물건을 선택할 때마다 고민하는 분명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내가 쉽게 사서 쓰고 쉽게 버리는 그만큼 생활공간이 오염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것일지라도 꼭 필요한 것만 신중하게 선택하자. 쓸 만큼 쓰고 버리자'인데 여러모로 흡족한 물건 고르기가 쉽지 않더군요.

우리의 생활공간이 오염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화학제품들이 방출하는 유해물질들 때문이라고요. 그렇다면 우리 모두 생활환경 오염을 줄이는데 기본적인 노력만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물질 풍요로 인한 생활환경 오염을 염려하는 분들에게, 그리고 오래도록 정들이며 쓰고 싶은 물건들을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덧붙이는 글 | <윤광준의 新생활명품>(윤광준) | 오픈하우스 | 2017-03-27 ㅣ정가 16,000원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윤광준 지음, 오픈하우스(2017)


태그:#무산 김(장흥), #염산, #도플러(우산), #생활명품, #윤광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