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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새벽, 현대미포조선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고용승계에서 제외되어 해고를 당한 이성호·전영수씨가 울산 북구 염포동 현대중공업 출근길에 있는 성내삼거리 인근 20m 교각에 올랐습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철폐와 하청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대량해고 중단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시작하여 지난 7월 26일 고공농성 107일 차에 고용승계에서 배제된 조합원들의 복직 합의를 이루어내고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여름 무더위와 열대야 속에 힘겨운 고공농성을 이어온 노동자들에 대한 격려와 복직 합의가 잘 이행되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고농농성 100일 이야기와 두 노동자가 땅으로 내려오던 날의 이야기를 두 차례에 나누어 게재하고 이성호·전영수씨의 고공농성 투쟁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기자 말

새벽 3시에 시작된 100일

지난 7월 19일, 울산 고공농성 100일이 되는 날이다. 아침에 휴대폰을 여니 국민안전처 명의로 발송된 폭염주의보 긴급재난문자정보 문자메시지가 와있다. 울산 날씨를 확인해 보니 35도에 육박할 것이라 한다.

컴퓨터를 켜자 전날 이성호씨에게 요청했던 사진이 들어와 있다. '이성호, 전영수씨가 최근에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 하여 요청했더니 부지런한 성호씨가 새벽인 오전 5시 47분에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100일 날 새벽에 촬영한 사진 속에 담긴 두 사람의 얼굴은 얼떨떨한 표정에 많이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이날 밤 성호씨와 통화를 했다. 필자는 일주일 전에 그에게 100일 인터뷰 요청을 한 바 있다. 이 날 많이 바쁘고 공중파 언론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도 필자와 꼭 인터뷰를 해 달라 하니 성호씨가 웃으면서 흔쾌히 수락했었다. 미리 인터뷰 예약을 못해서일까? 전영수씨는 많은 일정과 피로 때문에 다음날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성호씨는 많은 100일 투쟁 일정들로 몸이 힘든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다행히 이날 밤은 바람이 불어 평소보다 시원하다고 했다. "100일 선물인가 보다" 하니 이성호씨가 웃는다.

영수씨는 처음에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힘들었는데, 이젠 그 날씨가 그립다고 했다. 더운 환경이 계속 되다 보니 이젠 적응이 돼서 '원래 그렇구나' 하고, 바람이 조금 불면 '오늘 더 낫구나' 하며 생활한다.

두 사람은 100일 저녁에 된장국과 오이냉국, 콩나물 등에 밥을 먹었다고 했다. 성호씨가 성내 삼거리에 있는 '선아식당' 사장님이 현대자동차 식당에서 근무하며 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분이라 하청노동자들의 마음을 잘 알아 음식을 잘 챙겨주신다며 고마움을 표현한다.

"평소에 반찬을 늘 5~6가지 씩 해주세요. 오늘은 100일이라고 더 해주셨더라고요. 제가 계란 후라이 좋아한다고 하니 그것도 잘 챙겨주셨습니다."

100일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되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가수 박준씨와 연영석씨가 음향 자유와 함께 새벽 3시에 고공농성장에 와서 음향기기를 설치하고 오전 4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출근선전전 시간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주었다.

7월 19일 새벽, 울산 고공농성장에서 공연 중인 가수 박준(오른쪽)?연영석 씨
 7월 19일 새벽, 울산 고공농성장에서 공연 중인 가수 박준(오른쪽)?연영석 씨
ⓒ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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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제대로였어요. 음향도 정말 빵빵하고요. 2리터 짜리 생수병으로 3시간 넘게 두드려댔더니 팔이 빠지려고 합니다. 밑에서는 힘드니까 편한 자세로 들으라고 하는데, 박수를 얼마나 쳤는지..."

성호씨가 "감동~ 감동~" 을 연발한다. 그가 연대동지들의 응원을 받을 때 즐겨 쓰는 표현이다. 박준씨가 <나그네 설움>, <흙에 살리라> 등 '뽕짝'도 불러주어 정말 즐겁고 신이 났다고 했다. 전영수씨는 고맙기도 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못 싸워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고 했다. 영수씨는 이 날 처음 본 가수 연영석씨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목소리 톤이 정말 좋아요. 새벽에 노래를 들었는데, 정말 멋지더라고요. 진짜 반했습니다."

"죽으려고 올라가는 거 아니라고 얘기했습니다"

음악에 남다른 관심이 있다 느껴졌던 전영수씨는 알고 보니 고등학교 때 밴드 활동을 했다고 했다. 드럼을 치면서 보컬도 했다고 했다. '음악 폐인'이었던 영수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락밴드를 좋아해서 '부활', '시나위', '백두산' 등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큰 형님이 디제이를 하셨는데, 월드 팝 음반을 선물로 주셨어요. 락밴드 발라드 곡들이었는데, 그때부터 거기에 빠졌습니다. 지금도 좋아해요."

영수씨는 자신이 좋아했던 가수 김광석, 김현식, 유재하씨가 빨리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 했다. LP판을 많이 모았는데, 자신이 갖고 있던 유제하 LP 음반을 둘째 형이 친구에게 '팔아먹은' 대한 성토도 한다. 노래패를 할 생각은 없는지 물어보니 민중가요 는 자신이 했던 음악과는 다르다며, 요즘은 노래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와서 밑에서 손도 흔들어주고, 옷도 올려주고 간다고 했다. 영수 씨는 고공농성이 결정되고 나서 고민 끝에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다.

"제가 최고로 힘들 때 만난 사람이에요. 다 망해먹고 잘못 살았다 생각할 때 내 옆을 지켜준 사람이죠. 이 사람한테는 거짓말 안 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비자금 한 번 챙긴 적 없었고요. 얘기했는데, 많이 놀라더라고요. 안전해서 올라가는 거라고, 같이 살려고 올라가는 거지, 절대 죽으려고 올라가는 거 아니라고 얘기했습니다."

고공농성 초기에는 고공농성이 "괜찮다" "안 괜찮다"를 갖고 많이 다투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아내를 생각하면 그저 미안할 뿐이다.

 ‘금속울산지부 끝장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
 ‘금속울산지부 끝장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
ⓒ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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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성호씨와 전날 타결된 동진오토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속노조 울산지부가 끝장투쟁을 전개하고,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 힘을 실어주면서 요즘 좋은 소식이 많다고 했다. 블랙리스트 문제가 원청에 압박이 되면서 해고 조합원들도 복직되고 있다고 했다. 이 날 오후에는 고공농성장에서 금속노조 울산지부와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주최하는 결의대회가 진행되었다.

"100일이 실감 안나요. 언제 100일이 됐지? 마음 같아선 1년도 버틸 수 있을 것 같고, 10년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지들이 잘 챙겨주니 해결 되서 내려오라 해도 안 내려가고 싶을 것 같습니다. 여긴 열심히 일 안해도 밥 주는데, 내려가면 열심히 일 해야 하잖아요. 농담입니다."

성호씨가 웃고, 나도 웃는다. 교각에 오르던 4월 11일 큰 가방을 메고 새벽 4시부터 움직였다. 비가 많이 와서 사다리도 땅도 미끄러워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오직 목표지점에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올라오고 3일이 지나서야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성호씨는 이번 기회에 '노조탄압 하는 버릇'을 고쳐주고 싶다며, 가능하기만 하다면 희망버스가 오는 것도 환영한다고 했다.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내려가면 사측은 또 다른 방법으로 하청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탄압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자본이 10년을 버틴다면 자신은 11년을 버틸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하청지회에서 그리는 큰 그림이 있으니까요. 하청노동자들을 노동조합에 가입시키려면 현장에 들어가야 하니까 지회 방침을 따라야겠지요. 빨리 현장에 복직해서 하청노동자들이 용기 내서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 해야지요."

"내려가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으세요?"

그동안 묻고 싶었던 여러 번 참았던 질문을 100일이 되어서야 했다.

"전영수 동지하고 사우나 가서 원 없이 때 한 번 밀어보고 싶습니다. 그 다음에 집에 가서 와이프도 보고, 아이들 하고 놀아줘야지요. 그리고 동지들하고 같이 1박 2일로 여행도 가고 싶습니다. 정말 신나게 놀고 싶어요. 연대동지들 인사도 하러 다니고 병원 치료도 받아야지요."

성호씨는 이가 좋지 않아 올라오기 전에 치과 치료를 받았는데, 절반만 받고 올라왔다. 올라와서 잇몸이 많이 부어 그동안 심한 통증이 두 번 왔다. 통증이 한 번 오면 3일 정도 가는데, 밑에서 올려준 약을 먹고 이쑤시개로 잇몸을 찔러 피를 빼며 버티었다고 했다.

7월 19일, ‘금속울산지부 끝장 총력투쟁 결의대회’ 장면
 7월 19일, ‘금속울산지부 끝장 총력투쟁 결의대회’ 장면
ⓒ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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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되어버린 고공농성

"내려가면 일단 제대로 씻어야 될 거 같고요. 저는 네 글자에요. 일상생활. 정해져 있죠. 씻고 나서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술 한 잔 하면서 TV 보는 거, 스포츠 보면서 '이렇게 해야지' 하면서 욕하는 거, 그리고 음악 듣는 거. 내려가면 LP판으로 듣고 싶어요.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싶고요."

영수씨에게도 내려가면 하고 싶은 것을 물었다. 지극히 소박한 말 그대로 '일상생활'이다.

"(고공농성이) 일상이 되어버린 거 같아요. 그냥 사는 거다, 생각되는 것도 있죠. 100일 집회 때는 이런 집회를 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100일에도 쪽팔렸고, 101일에도 쪽팔리고 102일 103일도 그러겠죠. 어제 전화 발언에서도 연대 고맙고, 쪽팔린다고 했어요. 현장에서 안 쫓겨나고 안 밀려나도록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영수씨는 현장에서 제대로 못 싸워서 쫓겨나 밖에서 고공농성을 해야 하는 상황이 속상하다고 했다. 성호씨가 자주 하는 말이 "감동~ 감동~"이라면 영수씨는 "쪽팔림"이다.

전영수씨가 고공농성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동지를 잃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다고 했다. 밑에서 하는 게 한계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장외투쟁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다음에 다른 사람이 올라간다고 하면 말릴 거라고 했다. 영수씨는 고공농성 초기에는 희망버스를 기대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외부의 힘보다는 조선소 하청노동자 한 명 한 명의 힘이 더 절실하다고 느끼고 있다.

"현장이 불같이 일어나면 희망버스가 오지말래도 올 겁니다. 희망버스는 정말 빡시게 싸우는데도 밀리는 데를 가야죠. 내가 안 하면서 다른 힘을 기대할 수는 없잖아요."

7월 19일, ‘금속울산지부 끝장 총력투쟁 결의대회’ 중에 이성호(왼쪽)?전영수 씨
 7월 19일, ‘금속울산지부 끝장 총력투쟁 결의대회’ 중에 이성호(왼쪽)?전영수 씨
ⓒ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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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도 이런 공간에서는 비슷했을 것"

그동안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의견이 다를 때는 있었지만, 크게 싸우거나 다툰 적은 없었다고 했다.

"처음엔 대화를 많이 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둘 다 배려한다고는 하지만, 일상생활이 없으니까 신경이 날카로워지게 되더라고요. 서로의 상황이 다르다 보니 어느 날부터 자기만의 공간이 생기더라고요. 이만큼 시간이 흐를 줄 몰랐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도, 전 세계에서 가장 성격 좋고 멋있는 사람이라도 이런 공간에 함께 있었으면 비슷했을 거 같아요. 그냥 서로 배려하면서 있는 거죠."

영수씨는 고공농성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내려가면 사람 대 사람으로 하청노동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내려가면 일주일에 2~3시간이라도 운동을 할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청노동자들을 만나 술 많이 마시려면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가 신기 같은 게 좀 있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생생한 꿈이 있어요. 그러면 그게 꼭 현실로 오더라고요. 여기 올라와서도 아침에 일어나서 뭐 먹고 싶다고 하면 그게 올라왔습니다. 올라와서 아직 승리하는 꿈은 못 꾸었습니다."

성호씨는 예지몽을 종종 꾼다고 했다. 그래서 안 좋은 꿈을 꾸면 주변에 조심하라고 이야기해주고 그도 주의한다고 했다.

"오늘 좋은 꿈 꾸길 바랄게요."

고공농성 100일 인터뷰가 끝났다. 내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101일이 시작될 것이다. 문득 9년 전 GM대우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 철탑 고공농성을 하던 당시 고공농성 100일이 되던 날에 한 조합원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위에서는 날이 갈수록 자기와의 싸움이 힘들어지고, 밑에서는 너무 일상처럼 되어버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잠에서 덜 깬 채로 눈을 비비면서 '100'을 붙였어요. 외부에서는 100일을 기념하려 하기도 하죠. 특별한 날이요? 저는 오늘의 100일보다 내일의 101일, 102일이 더 힘들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특별한 날이 아닙니다. 내일 또 잊혀 질 고공농성... 정말 답답합니다..." (금속노조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이준삼 조합원)

7월 19일, 울산 고공농성장
 7월 19일, 울산 고공농성장
ⓒ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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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울산 고공농성, #이성호 전영수, #블랙리스트, #비정규직 ,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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