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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빅토리아 폭포 입구에 있는 리빙스턴 동상
▲ 잠비아 리빙스턴 동상 잠비아 빅토리아 폭포 입구에 있는 리빙스턴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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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입구에 서 있는 리빙스턴 동상
▲ 짐바브웨 리빙스턴 동상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입구에 서 있는 리빙스턴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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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이과수,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중의 하나인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폭포 입구에는 특이하게도 두 나라 모두 각각 영국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1873)의 동상이 서있다.

이곳에서 살고 있던 토박이 아프리카 원주민인 콜로로 족의 사람이 아닌 영국사람인 리빙스턴이 정말로 빅토리아 폭포를 처음 발견하였을까? 그리고 잠비아와 짐바브웨라는 국가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자연유산을 왜 영국사람인 리빙스턴에게 최초발견이라는 영광을 돌리고 양보하였을까?

잠비아 쪽에서 바라 본 빅토리아폭포
▲ 빅토리아폭포 잠비아 쪽에서 바라 본 빅토리아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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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쪽에서 바라 본 빅토리아폭포
▲ 짐바브웨 빅토리아폭포 짐바브웨 쪽에서 바라 본 빅토리아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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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리한 자에 의하여 쓰여진다고 한다. 빅토리아 폭포를 리빙스턴이 발견하였다고 쓰는 역사는 이미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의 많은 부족들이 살고 있었던 아메리카 대륙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묘사하는 것과 같다. 또 미지의 대륙을 처음 콜럼버스가 발견했다고 서술하는 서양의 역사인식과 다름이 아니다.

아프리카 남부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을 가르며 인도양으로 흘러가는 잠베지 강 중류에는 폭 1676m, 최대 낙차 108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빅토리아 폭포(보통 줄여서 "빅폴"이라고 부른다)가 있다. 폭포의 동쪽은 잠비아이며, 서쪽은 짐바브웨이다.

영국에서 신학과 의학을 공부한 리빙스턴은 런던선교회의 일원으로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하였고 이후 탄자니아에서의 노예제도 투쟁과 이 후 잠베지 강의 진로에 따르는 남부 아프리카를 횡단하는 탐험을 하게 되었다. 이 때의 탐험에서 리빙스턴은 빅토리아 폭포에 도달하게 되었고 스스로 폭포의 이름을 당시 영국 여왕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 빅토리아 폭포라고 불렀다.

하지만 당시 이 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인 콜로로족은 멀리서는 치솟는 물보라만 보이고 굉음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에 빅토리아 폭포를 '천둥 치는 연기'라는 뜻의 '모시오아툰야' 라는 이름으로 이미 부르고 있었다.

폭포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리빙스턴의 동상만으로도 유럽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관광수익을 창출하며 상업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을 것이다.

현재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주요 관광객은 거의 대부분이 유럽과 미국사람들이다. 동양사람들의 경우 여행객이 조금씩 늘어나기는 해도 동양의 여러 나라들과 아프리카는 역사적으로 연관성도 없을뿐더러 거리상으로도 지구 거의 반대편이어서 짧은 기간에 방문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의 경우에는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오랜 기간 동안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배 하였던 향수도 있고 지리적으로도 그리 멀지 않아 휴양을 하거나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객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잠비아 빅토리아폭포의 상류에 뜬 무지개
▲ 폭포의 무지개 잠비아 빅토리아폭포의 상류에 뜬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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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빅토리아폭포의 무지개
▲ 폭포의 무지개 짐바브웨 빅토리아폭포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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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볼 때 리빙스턴의 동상들은 한시적으로 잠비아나 짐바브웨의 상업적인 필요에 의해 일정기간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주적인 국가로서 영국의 정의롭지 못한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정책의 부당성을 인식하고 국가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이런 부당함에 국민들이 눈을 뜬다면 리빙스턴의 동상은 콜로로족 아프리카 원주민의 동상으로 대체되리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시각으로 발견하였고 또한 이미 "모시오아툰야" 라고 불리던 폭포의 그 이름을 빅토리아라는 당시 영국여왕의 이름을 따서 불렀다는 이야기는 영국의 입맛에 맞게 각색한 그들만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한 때는 일제 강점시절 조선총독부였던 건축물을 오랫동안 정부시설로 또는 박물관으로 사용하였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일본 사람들의 관광목적 중에는 강점기 조선총독부를 관광하는 것이 식민지배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이 처럼 불순한 목적의 관광을 식민지 시대의 피지배 국가들이 단지 상업적인 이유로 언제까지나 지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빅토리아 폭포는 '모시오아툰야' 라는 원래 원주민들이 부르던 이름으로 불려야 하고, 아프리카의 역사에서 리빙스턴은 '모시오아툰야' 폭포를 최초로 방문한 서양사람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태그:#빅토리아폭포, #모시오아툰야, #잠비아, #짐바브웨,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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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의 니나 또는 슈타인처럼, 여행과 사진 그리고 건축, 머나먼 이베리아 반도의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숭산 스님의 선의 나침반, 수타니파타의 그물에 걸리지않는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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