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탑에서 진행된 특별한 토크콘서트. 인조잔디 위에서 OX게임을 하며 깔깔 웃을 수 있었던 시간.

루프탑에서 진행된 특별한 토크콘서트. 인조잔디 위에서 OX게임을 하며 깔깔 웃을 수 있었던 시간. ⓒ 최하나


한 가지 먼저 고백할 사실이 있다. 요즘 나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말이다. 호환·마마 보다 무섭다는 마감의 공포와 압박이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지 이제 3년이 좀 넘은 나는 요즈음 주 7일 근무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방바닥을 훔치다가도 눈물을 쏟고 싶어지는 시기.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주위 사람들 마저 피곤하게 만드는 시기. 좀비마냥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어디 아프냐는 말 한마디를 듣고야 마는 시기가 와버렸다. 솔직히 짐을 싸서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었다. 여행이 주는 기쁨보다 귀찮음이 더 커서 방바닥에 붙인 궁둥이를 떼지 못했던 나는 누군가 거리만 던져주면 당장에라도 이 모든 걸 외면하고 떠날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나는 글 쓰는 사람이자 직장인이자 개 엄마이자 한 사람이 아내로서 해야 할 의무와 역할이 분명했다. 그래도 나는 힐링이 필요했다.

그래서 타협을 했다. 여행 가방을 싸는 대신에 가벼운 짐들을 챙겨 서울 청량리 부근의 시장 한복판에 위치한다는 상생장으로 떠나기로 했다. 하루 정도는 근심·걱정을 잊고 웃고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나는 하지영의 토크콘서트인 '하톡왔숑'에 가게 된 것이었다.

청량리 시장 한 가운데 비밀의 공간이 있어

 시장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시장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 최하나


 브루클린의 느낌을 살려 빈티지하면서도 예술가의 감성을 듬뿍 담았다고.

브루클린의 느낌을 살려 빈티지하면서도 예술가의 감성을 듬뿍 담았다고. ⓒ 최하나


지난 10일 토요일 오후 6시. 여름이라 아직 대낮처럼 밝은 날씨. 불금보다 더 뜨겁다는 불토를 즐길 이 시간에 많은 사람은 청량리역 앞 시장 한가운데 자리한 '상생장'이라는 건물의 옥상에 모여들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장소를 내비게이션에 찍고도 반신반의했다. 토크콘서트가 열리는 장소로 알고 있는데 주변에는 온통 시장 마실을 나온 어르신과 물건을 파는 상인 어르신들로 복작댈 뿐이었다. 한 마디로 시장통이었다.

'여기에 공연할 장소가 있다고?'

건물 외벽에 걸린 현수막이 아니었다면 꽤 헤맬 뻔했다. 주말 서울의 주차 대란을 간신히 뚫고 차를 세워둔 우리는 그 건물을 향해 인파를 뚫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러자 그 수고를 치하라도 하듯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생장'은 전통시장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상가건물이지만 안에 들어서면 정말 '힙'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예술가들의 동네인 브루클린의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는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신경을 쓴 듯 안 쓴 듯 무심하면서도 거친 인테리어. 하지만 그런 안목과 디테일들이 모여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오래된 물건을 사용하되 그 쓰임새를 바꿔서 재활용한 업사이클링의 형태가 눈에 많이 띄었다.

 상생장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한 팁이 벽면에 걸렸있다.

상생장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한 팁이 벽면에 걸렸있다. ⓒ 최하나


거기에 한 가지 더, 상생장에서는 음식을 판매하는데 모든 재료가 이곳 시장에서 공수해온 것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상생효과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상품을 소비하면 시장이 살고 그러면 다시 사람들이 모여드는 선순환의 구조였다. 어렵게 말했지만, 혼자 먹고 잘살다가 아닌 함께 잘 먹고 잘살자는 선한 의도가 엿보였다.

우리에게는 놀이가 필요해

 어디서 가져온 걸까? 원래의 목적과는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근사한 테이블로 활용되고 있다.

어디서 가져온 걸까? 원래의 목적과는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근사한 테이블로 활용되고 있다. ⓒ 최하나


하지영의 토크콘서트는 사실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이 없다. 오픈된 장소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으면 그 앞에서 이야기를 건네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된다. 서로 거리감이 있거나 어색해한다면 분위기를 끌어내기 힘들 게 뻔했다. 그래서인지 공연의 첫 순서는 '레크리에이션'이었다. <가족오락관>에서 차용한 형식의 게임들은 익숙한 내용들이었는데 하지만 사람들은 어쩐 일인지 진행이 되는 내내 깔깔 웃고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참여했다.

쭈뼛거리며 나서는 이가 없을 거라는 건 나의 기우였다. 오히려 참여를 희망하는 인원이 너무 많아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나는 느꼈다. 어른인 우리에게도 놀이가 필요하다는 걸. 몸을 써서 구르고 뛰고 달리는 동안 어쩌면 잃어버렸을 내 안의 아이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의자 뺏기 놀이 하나에도 온 몸을 던지는 거겠지. 이벤트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나 역시도 신나게 소리를 지르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춤을 추기도 하면서 맘껏 풀어질 수 있었다.

열정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거야

 방송인 하지영이 엠마 스톤으로 분해 영화 <라라랜드> 신의 춤을 직접 소화했다.

ⓒ 김인철


 방송인 하지영이 엠마 스톤으로 분해 영화 <라라랜드> 신의 춤을 직접 소화했다.

ⓒ 김인철


 방송인 하지영이 엠마 스톤으로 분해 영화 <라라랜드> 신의 춤을 직접 소화했다.

방송인 하지영이 엠마 스톤으로 분해 영화 <라라랜드> 신의 춤을 직접 소화했다. ⓒ 김인철


<한밤의 TV 연예>(현 <본격 연예 한밤>)의 간판 리포터로 9년 동안 활동해온 방송인 하지영이 진행하는 오늘의 토크 콘서트는 벌써 10회를 맞이했다. 이번 10회의 부제는 '하하랜드'였다. 영화 <라라랜드>의 콘셉트를 따왔다고 했다. 영화의 팬인 내게는 춤, 음악 그리고 청춘이 어우러져 몸과 마음을 힐링하고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다. 그 믿음에 부흥이라도 하듯 공연 내내 라라랜드의 주요장면에서 등장하던 댄스 신을 방송인 하지영이 직접 소화했다. 피날레에서는 관객처럼 앉아있던 댄서들이 예고 없이 일어나 그녀와 함께 군무를 추는 바람에 꽤 놀라기도 했다. 사실 그걸 보면서 나도 그사이에 껴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영화와 같다면 좀 덜 꾸깃꾸깃하고 아름답게 보일 터라는 잡념도 함께 말이다.

"저랑 같이 연습하던 파트너가 크게 부상을 입어서 어쩔 수 없이 함께할 수 없게 되었어요. 디스크에 무리가 와서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저 또한 갈비뼈에 금이 갔지만, 최선을 다해 볼게요."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던 건 대화를 나누기 위해 관객석으로 다가온 그녀의 네 번째 양쪽 발가락이 반창고에 칭칭 감겨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 열정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졌을 거다.

낯선 이의 눈가를 젖어들게 만드는 건 참 놀라운 일이야

 사연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우리들. 방송인 하지영은 주저없이 자신의 가장 아픈 경험도 기쁜 경험도 솔직하게 모두 공유했다.

사연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우리들. 방송인 하지영은 주저없이 자신의 가장 아픈 경험도 기쁜 경험도 솔직하게 모두 공유했다. ⓒ 최하나


토크콘서트 '하톡왔숑'에는 매번 주제가 정해져 있는데 '오늘은 당신에게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였나요?'로 스페셜게스트인 방송인 정가은과 함께 진행되었다. 공연 시작 전 미리 사연을 받는데 몇 개를 골라 그 이야기의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을 뿐인데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관객들은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면 눈시울을 붉혔다. 모르는 사람 앞에 울면 안 된다고 자신을 감춰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낯선 이들 앞에 무장해제가 되어버렸다. 참으로 놀라운 순간이었다.

'사랑의 소중함을 느꼈을 때.'
'엄마의 얼굴을 마주 볼 때.'
'서울로 상경해 첫 출근을 하던 날.'

 스페셜 게스트인 방송인 정가은이 직접 준비한 선물을 소개하고 있다.

스페셜 게스트인 방송인 정가은이 직접 준비한 선물을 소개하고 있다. ⓒ 최하나


결은 다를지 몰라도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가장 빛났던 순간을 떠올릴 때면 마음 한편이 뭉클해지니까 말이다. 이날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항상 2002년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이제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역할을 주고 부담도 커졌지만, 그만큼 행복하다고.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그걸 떠올리자 그간 답답했던 가슴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실은 나는 행복했구나 하며 말이다.

쓰기 전에는 분명 냉철한 분석과 평가를 곁들인 리뷰를 작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마법 같은 하루를 보낸 덕분이었을까. 어느새 나의 글은 감성적으로 되어버렸다. 다시 지우고 쓰려고 했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은 듯싶었다. 낯선 이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처럼 내 글도 젠체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도 괜찮겠다 싶었다. 오늘만큼은 말이다.

덧붙이는 글 하지영의 토크콘서트 <하톡왔숑>은 2개월의 한 번씩 진행되는 공연으로 매 회 다양한 게스트가 등장한다. 사연을 받아 이야기의 주인공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가 함께 어우러진다. 지난 6월 10일 오후 6시에 진행되었던 공연에는 방송인 정가은이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했으며 영화 <라라랜드>를 오마쥬한 댄스 퍼포먼스를 함께 선보였다.
하지영 하톡왔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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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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