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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뭐, 걸리기나 하겠나. 무슨 큰 일이라도 나겠어?"

재고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고했던 나에게 K중사가 했던 말이다. K중사는 2008년 1월부터 00연대에서 직책을 수행했다. 육군훈련소 내에서도 장기간 재직했던 케이스였다. 그만큼 경험이 풍부했을 텐데도 이런 사고가 난 것은, 역설적으로 이 사고가 K중사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물자 관리를 철저히 했더라면, 물자가 없어져서 전산을 조작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물자 관리가 철저히 되지 않았던 데에는 구조적인 원인이 컸다.

우선 간부들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우리 군은 보급 관련 전산망을 '국방물자정보체계'라는 이름으로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병참 특기 부사관들이 이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라서, 병사들에게 업무를 일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급부대에서도 병사들에게 프로그램을 맡기지 말라는 지시를 누차 내렸지만, 예하부대에는 변화가 없었다.

상급부대에서는, 간부보다 병사들이 무능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였기 때문이다. 권한과 책임을 가진 부사관들이 업무를 주도하려면 반드시 재교육을 통해, 최소한 전산 처리만큼이라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

MBC <진짜사나이>에 소개된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 보급창고
 MBC <진짜사나이>에 소개된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 보급창고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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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는 허술한 시설이다. 육군훈련소 보급창고에는 CCTV가 없다. 화재 위험 때문에 전기 시설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누군가 창고에 침입해도 알아낼 길이 없었다. 당시 군 검찰 조사와 재판정에서는 물론, 이 기사에서도 다루지 못한 사실들이 여러 가지 있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민간에서였다면 스마트폰이 있으니 당연히 입증할 증거를 갖고 있었겠지만, 군대는 다르다. 최소한 창고 외부에라도 CCTV를 설치한다면, 횡령과 도난을 예방하고 사고 시에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튼튼한 방범창과 침입 경보센서 등을 설치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군수품 현장관리 자동화체계 시스템을 사용 중인 병사의 모습
 군수품 현장관리 자동화체계 시스템을 사용 중인 병사의 모습
ⓒ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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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무너진 감시 체계다. 내가 복무하던 2년여 동안 육군훈련소는 정기 재물조사를 2번 실시했다. K중사로 인해 긴급 재물조사를 실시한 것을 포함해도 3번이었다. 그나마도 사전에 재물조사 일정을 모두 공지한 채 이뤄졌기 때문에, 부대별로 일정에 따라 모자란 재산을 옆부대에서 빌리는 등 '돌려 막기'가 성행했다.

상급부대의 실무자들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지만, 인력과 시간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번번이 알면서도 넘어가기 일쑤였다. 상급부대가 예하부대에 대한 관리 감독을 경시한다면 제2, 제3의 K중사는 그 틈을 타고 다시 활개칠 것이다.

종합보급창에서 물품을 나르는 보급병
 종합보급창에서 물품을 나르는 보급병
ⓒ 국방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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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역한 지도 어느덧 2년이 넘었다. 뒤늦게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힌 것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K중사가 손실을 낸 물자는,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것들이다. 그리고 K중사의 손실을 처리한 보험금도, 국민의 세금으로 납입한 보험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군이 국민의 안위를 수호한다는 이유로, 국민의 세금을 허투루 낭비하는 일은 되풀이되서는 안 된다.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업무를 철저히 수행하고, 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것 또한 군의 의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나는 이 사건을 초기에 막을 수 있었는데도, 스스로 병사라는 한계에 갇혀 주저했다. 골든타임을 놓친 채 뒤늦게 침묵을 깬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잘못한 사람을 처벌받게 하는 과정도, 그의 잘못으로 인해 엉켜버린 재산을 복구하는 것도 순탄치 못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거나, 개인적 악감정 때문에 K중사를 음해한다는 온갖 괴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근본적인 잘못은 침묵했던 나에게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다시는 비겁하게 침묵하지 않으려 한다. 세 편의 기사는 그래서 어느 보급병의 반성문이면서, 우리 군의 발전을 위한 제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육군훈련소, #군수물품, #재고부족, #전문성,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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