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톱>의 포스터. '반핵'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영화 <스톱>의 포스터. '반핵'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 김기덕 필름


2016년 겨울, 원자력 발전소를 소재로 삼은 두 편의 영화가 나란히 관객들과 만났다. 150억 원이란 제작비와 유명 배우들을 투입한 한국형 재난 영화 <판도라>는 현재 박스 오피스 1위를 달리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이 외환 한도액인 1000만 원을 가지고 일본에 가서 배우들을 섭외해서 만든 22번째 장편 영화 <스톱>은 극장 개봉을 생략하고 바로 IPTV 등 다운로드 시장으로 직행했다. 극장가와 가정으로 원자력발전소 사건이 동시에 찾아간 것은 어떤 징후처럼 느껴진다.

원전 사고를 정면으로 응시한 <희망의 나라>를 연출했던 소노 시온 감독은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났을 때 3.11 대지진을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 형식으로 다룬 영화는 자신이 처음이라고 밝히면서 일본에서는 원전 문제가 금기시되기에 영화를 찍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판도라>의 개봉 지연을 두고 외압이 작용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스톱> 역시 민감한 소재를 다룬 탓에 김기덕 감독 혼자 비밀리에 기획하고 찍었다고 한다.

감독·조명·촬영·편집·음향 김기덕

김기덕 감독은 <스톱>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에 일본에서 배우와 통역만을 둔 채, 자신이 감독, 조명, 촬영, 편집, 음향 등 모든 제작 과정을 도맡았다. 그는 2015년에 일본에서 10회차 촬영을 마친 <스톱>을 "첫 작품인 <악어>를 찍었을 때 치열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라고 설명한다.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돈이 없다고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와 메시지가 중요했다고 강조한다.

김기덕은 2008년 <비몽>을 끝으로 공백기를 가진 다음에 2011년 <아리랑>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아멘><피에타><뫼비우스>를 쏟아냈다. 그런데 2014년에 내놓은 <일대일>부터 김기덕은 인간에서 사회로 시선을 돌린다. <일대일><스톱><그물>은 김기덕의 사회파라 칭할 만하다. <스톱>은 그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직설적이며, 명령어로 붙여진 제목이다. 그는 무엇을 멈추고 싶었던 걸까?

 방사능에 오염된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방사능에 오염된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 김기덕 필름


<스톱>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에 거주하던 부부, 안도(나카에 츠바사 분)와 미키(호리 나츠코 분)가 도쿄로 이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방사능에 오염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을 것인가, 아니면 지울 것인가의 문제로 두 사람은 대립한다.

방사능 유출 사고를 뉴스로 접한 김기덕 감독은 두려운 마음을 느끼며 시나리오를 작업했다고 한다. 방사능 사고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원전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는 바람은 <스톱>의 안도와 미키가 겪는 상황으로 극화되었다. 여기에 정부 관계자가 낙태를 요구한다거나, 오염된 지역에 살던 임산부가 기형아를 출산하고, 방사능 때문에 버려졌던 가축을 도살해서 다른 도시에 밀매하는 이야기 등 영화적인 상상력을 더했다.

<스톱>에서 미키의 뱃속에 있는 '아기'는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생명, 즉 내일의 뜻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가려진 진실이고, 원전 사고를 일으킨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이것은 극 중에서 미키가 "아기가 어떤 모습이라 해도 그게 우리의 모습이야. 아이가 괴물이면 우리도 괴물이야. 우리가 만든 괴물이니까 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돼"라는 대사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키의 아이를 없애려는 정부 관계자는 은폐와 조작으로 기능한다. 그는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선 원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수를 덮으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적절한 행동이라 정당화하는 그의 태도는 일본 정부, 나아가 원전은 절대 안전하니까 안심하라는 지구촌 곳곳의 주장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 것에 대하여

 영화 <스톱>은 대안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실을 환기한다.

영화 <스톱>은 대안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실을 환기한다. ⓒ 김기덕 필름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나타나는 '구원'을 주목했다. 그는 "이창동의 영화가 구원의 가능성을 묻지만, 신의 세계로 귀의하지 않고 인간 세상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에게 주목한다. 박찬욱의 영화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원을 갈구하지만, 폭력으로 얼룩진 복수를 행함으로써 진정한 종교적 구원과는 더욱 멀어지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김기덕은 죽음을 통해 구원을 그린다. 야수적 폭력을 저지르던 남성의 죽음을 통해 구원의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스톱>에도 유효하다. 정부를 신뢰하던 안도는 기형아의 죽음을 목격하며 생각을 바꾼다. 그리고 도쿄로 들어오는 전기를 끊겠다고 결심한다. 마치 구원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스톱>에서 말하는 원전 문제는 쉽사리 대안을 도출할 사안이 아니다. 원전을 줄이고 전기를 절약하면서 대체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 옳다. 그러나 이미 전기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에게 경제 둔화를 받아들이라는 강요이기도 하다. 김기덕 감독도 <스톱>에서 "전기가 없었다면 일본의 발전도 없었어"란 대사를 빌려 딜레마적인 상황에 놓였음을 인정한다.

<스톱>은 대안을 내놓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사람들이 혐오하거나 불쾌해하는 이미지를 보고 현실을 환기하고 현재를 고민하길 원한다. 김기덕 감독은 "내 아이는 원전이 있는 세상에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안도의 대사를 빌려 사람들에게 외친다. 현실을 방관하거나 외면하는 행위를 멈추고, 올바르게 직시하면서 원전을 중단해야 한다고.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스톱>과 <판도라>는 우리에게 온 경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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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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