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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양심가게에서 만난 박충렬 장성 신촌마을 이장. 지난 2005년 마을에 무인 양심가게를 연 당사자다.
 무인 양심가게에서 만난 박충렬 장성 신촌마을 이장. 지난 2005년 마을에 무인 양심가게를 연 당사자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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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가 다 됐는데, 후임자에 대한 논의가 없네요. 어르신들한테 '임기 다 됐다'고 넌지시 말씀드렸다가,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오히려 핀잔만 들었습니다. 바쁘면 어르신들이 도와주겠다고 하시는데요. 난감합니다. 그만 하겠다고 말할 수도 없고요."

지난 11월 22일 만난 박충렬(57) 장성 신촌마을 이장의 말이다.

신촌마을은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단전2구에 속한다. 72세대 136명이 살고 있다. 박 이장은 지난 2004년 12월 20일 처음 이장을 맡은 뒤 2년 임기의 이장을 지금까지 여섯 차례 연임했다. 12년 동안 이장직을 수행했다.

사실, 박 이장이 마을에 항시 머무는 것도 아니다. 사업을 하는 관계로 마을을 자주 비운다. 그럼에도 주민들이 이해를 해준다. 주민들이 돌아가며 이장의 일을 대신 해주기도 한다.

장성 신촌마을 풍경. 집집마다 대문이 열려 있고, 집밖 빈터에서 늦가을 햇볕에 농산물을 말리고 있다.
 장성 신촌마을 풍경. 집집마다 대문이 열려 있고, 집밖 빈터에서 늦가을 햇볕에 농산물을 말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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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양심가게 풍경. 가게 앞에 주민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모습이다.
 장성 양심가게 풍경. 가게 앞에 주민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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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준 사람이 지금 이장이여. 항꾸네(다함께) 모여서 사는 재미를 가르쳐줬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 우리 마을을 경향각지로 알린 것도 이장이고. 우리 주민들한테 자부심을 심어줬어. 충렬이 이장이."

무인 양심가게에서 만난 주민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박 이장은 이 마을의 상징이 된 무인 양심가게를 연 당사자다. 무인 양심가게는 지난 2005년 4월 5일 문을 열었다. 박 이장이 이장을 맡은 지 석 달 보름 만이었다.

신촌마을 무인 양심가게 안 풍경. 생필품이 전시돼 있고, 주민들이 앉아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눌 의자가 놓여 있다.
 신촌마을 무인 양심가게 안 풍경. 생필품이 전시돼 있고, 주민들이 앉아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눌 의자가 놓여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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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렬 이장이 양심가게에서 물건을 진열하고 있다. 박 이장은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가 진열하고 가격을 써놓는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박충렬 이장이 양심가게에서 물건을 진열하고 있다. 박 이장은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가 진열하고 가격을 써놓는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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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하나 있던 구멍가게가 문을 닫았어요. 주민들이 불편했죠. 이웃마을에 슈퍼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도시를 자주 나가는 제가 어르신들의 심부름을 했어요. 필요한 물건을 사다 드리는 심부름이요. 솔직히 한두 번도 아니고, 번거로웠죠. 깜박 잊어버리고 그냥 올 때도 있었고요."

박 이장이 무인가게를 생각한 이유다. 언젠가 일본에서 봤던, 꽃 파는 할머니한테서 힌트를 얻었다.

"사람들이 돈을 놓고 꽃을 가져가는 거였어요. 주인 할머니는 저만치 떨어진 데서 꽃을 다듬고 계셨고요. 누가 꽃을 가져가는지, 돈을 놓고 가는지 관심 갖지 않고요. 주인은 있었지만, 주인이 없는 것과 매한가지더라고요."

지난 2010년 양심가게 풍경. 지금처럼 그 때도 마을주민들이 가게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2010년 양심가게 풍경. 지금처럼 그 때도 마을주민들이 가게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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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양심가게에 놓여 있던 거스름돈을 담은 비누통과 외상장부. 주민들이 스스로 돈을 거슬러가고 외상을 할 때는 장부에 적어두고 갔다.
 예전 양심가게에 놓여 있던 거스름돈을 담은 비누통과 외상장부. 주민들이 스스로 돈을 거슬러가고 외상을 할 때는 장부에 적어두고 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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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이장은 그 꽃집과 같은 가게를 마을에 만들고 싶었다. 소주 두 병 사다 달라, 라면 몇 봉지 사다 달라는 주민들의 민원(?)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을 주민들한테 제안을 했다. 마을의 기금으로 가게를 차리고, 주인 없이 운영을 하자고.

주민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박 이장은 계속 고민했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서로 어울려 노는 공간 마련을 위해서라도 가게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박 이장은 사비 500만 원을 들여 가게를 열었다. 실패하면 손해 본 셈 치자는 생각이었다. 손사래를 치던 마을사람들도 한번 해보자며 거들었다. 방치됐던 가게를 다시 청소하고 술과 음료수, 과자, 생활용품 등을 들여놨다.

가격표도 어르신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큼지막하게 써 붙였다. 나무로 짜서 금고를 만들고, 금고 위에 거스름돈을 담은 비누상자도 놓았다. 외상장부로 쓸 수 있도록 공책과 볼펜도 가져다 놨다.

박충렬 이장이 양심가게에 견학 온 어린이들에게 가게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박충렬 이장이 양심가게에 견학 온 어린이들에게 가게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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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양심가게를 찾은 어린이들이 가게 앞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다. 박충렬 이장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고 있다.
 무인 양심가게를 찾은 어린이들이 가게 앞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다. 박충렬 이장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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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우려는 괜한 걱정이었다. 주인이 따로 없는 데도 문제가 생기기는커녕 운영이 잘 됐다. 가게가 마을주민들의 회관 겸 사랑방 역할까지 했다.

소문을 들은 외지사람들도 찾아왔다.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견학하려고 부러 찾아온 부모도 많았다. 학교나 마을의 매점을 주인 없이 운영해보겠다고 찾아오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곳이 있냐'며 감동을 했다. 마을주민들도 뿌듯했다.

"가게가 우리들 놀이터요. 여기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집안의 대소사도 논의하고. 술도 한 잔씩 마시고, 커피도 나누요. 자식들이 사갖고 온 과일도 여기 갖고 와서 나눠먹고. 텔레비전도 한데 모여서 보니 더 재밌고. 주인이 없응께 더 좋아. 눈치 안 봐도 되고."

가게에서 만난 정한도(85) 어르신이 환하게 웃으며 자랑한다.

신촌마을의 무인 양심가게는 그 사이 새 건물로 지어졌다. 지난 2010년 낡은 가게를 헐고 새로 지을 당시의 모습이다.
 신촌마을의 무인 양심가게는 그 사이 새 건물로 지어졌다. 지난 2010년 낡은 가게를 헐고 새로 지을 당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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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가게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쓰던 외상장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외상마저도 주민들의 양심에 맡기고 있다.
 양심가게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쓰던 외상장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외상마저도 주민들의 양심에 맡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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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무인 양심가게가 들어선 지 12년째. 그 사이 바뀐 것도 많다. 장성군의 지원을 받고 지역주민과 출향인들이 힘을 보태 건물을 새로 지었다. 대형 텔레비전과 지폐 교환기, 싱크대, 담배 자동판매기도 갖췄다. 장성농협과 면사무소 등 유관기관이 설치해줬다.

외상장부가 없어진 것도 눈에 띈다. 돈은 없는데, 생필품이 급히 필요할 때 쓰던 장부였다.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이 스스로 외상을 장부에 달아놓았다가 나중에 갚은 다음, 장부에서 삭제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처음엔 별다른 생각 없이 놔뒀는데요. 운영을 해보니, 외상장부가 필요 없더라고요. 물건을 가져갔다가 돈을 갚지 않는 어르신도 안 계시고요. 그래서 없앴어요."

박 이장의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주민들이 양심껏 가져가고, 계산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무인 양심가게가 잘 운영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양심가게에 대한 주민들의 자긍심도 높다. 나아가 마을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신촌마을 주민들이 양심가게 앞에 모여서 윷놀이를 즐기고 있다. 지난 2014년 2월 정월대보름 날이었다.
 신촌마을 주민들이 양심가게 앞에 모여서 윷놀이를 즐기고 있다. 지난 2014년 2월 정월대보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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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마을 주민들이 양심가게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지난 11월 22일이다.
 신촌마을 주민들이 양심가게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지난 11월 22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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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형제같이 우애하고 사요.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다 형님이고, 동생인데. 마을에서 '뭘 합시다' 하고 결정하면 다 따르고. 단합도 잘돼. 무인가게 잘 되는 거 보시오. 우리마을 최고 아니요?"

김기선(79) 어르신이 말을 잇는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사람이 안 살면 무너진다잖아요. 어르신들이 여기 나오셔서 같이 어울리시니까, 제가 더 고맙죠. 어르신들 모두 가게를 내집처럼 아끼고요. 청소까지 직접 하시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아요. 무인가게 만든 거요. 갈수록 마을이 고령화돼 가는데, 무인가게의 가치는 앞으로 더 빛날 것 같습니다."

박 이장의 말끝에 힘이 잔뜩 실려 있다. 함께 사는 마을공동체를 만든 이장으로서 느끼는 보람이다. 그 중심에 무인 양심가게가 있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오손도손 정겹게,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장성 신촌마을 경로당과 무인 양심가게 풍경.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들이다.
 장성 신촌마을 경로당과 무인 양심가게 풍경.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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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충렬, #신촌마을, #장성, #양심가게, #무인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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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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