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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무나물 볶음 일러스트
ⓒ 배수진,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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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요리했던 무나물 볶음은 실패했다. 숟가락으로 무나물 볶음을 국물과 함께 푹 떠서 밥에 얹은 후 슥슥 비벼먹고 싶었는데 영 모양새가 나오지 않았다. 나의 무나물 볶음은 질척이지도 않았고 무가 푹 익지도 않았는데 새카맣게 타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 엄마에게 실패를 알렸다. 엄마는 실패하기도 어려운 음식을 잘도 실패했다며 혀를 찼다. 그리곤 더 묻지도 않고 "물 더 넣어" 하셨다.

엄마는 단박에 내가 무나물 볶음을 태워 먹었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 엄마의 말대로 물을 더 넣어 요리를 완성했다. 하지만 물과 참기름이 입 안에서 겉돌아 느끼했고 살캉거리는 무의 표면에 배어든 쓴맛은 불쾌했다. 꾸역꾸역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던 어느 날 난데없이 이별통보를 받은 맛이랄까. 완성된 무나물 볶음의 쓴 맛은 내게 관심이 없던 그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엄마의 말마따나 무나물 볶음은 참 쉬운 요리이다. 무를 채 썰어 참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간을 하고 기호에 따라 들깨가루 정도를 넣어 마무리하면 된다. 맛있게 완성된 무나물 볶음은 물기가 질척일 정도로 흥건하고 푹 익은 무가 입 안에서 순식간에 짓눌리며 달큰한 맛이 난다.

반면에 실패한 무나물 볶음은 물기가 없고 무가 뻣뻣하며 쓰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건 요리기술이 아닌 식재료이다. 간단한 요리인 만큼 무가 전부다.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는 제철의 무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볶아지며 나오는 무의 달큰한 수분이 무를 부드럽게 익힌다. 그걸 모르고 한 여름에 바람 든 무를 슈퍼마켓에서 집어와서 요리했던 나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한숨이나 퍽퍽 내쉬었다.

애써 꾸미려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내 모습을 보이려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야, 어차피 그는 나에겐 관심도 없었어. 애초부터 우린 실패했던 관계였던 거야. 실패하지 않는 연애를 하려면 내가 관계에 걸맞은 상대여야 했던 것일지도 몰라. 실패하지 않는 무나물 볶음을 하려면 가을, 겨울에 제철인 무를 써야만 하듯이, 라고 생각했다.



태그:#배수진의음식사전, #무나물볶음, #음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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