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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대학에 붙기 시작했다. 24일 창원대 정문 게시판에 여러 개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관련한 대자보는 2개다. 대자보를 붙인 학생은 한 달 뒤에 자진 철거하겠다고 해놓았다.

대학생은 "학우들의 침묵을 깨고 우리가 대학생이란 자부심을 가지는 대학의 자존심을 지키는 조그마한 계기가 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자"고 호소했다.

또 청와대 비선실세인 최순실씨의 딸(정유라)과 관련해서도 표현해 놓았다. 대학생은 "우리가 밤샘 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을 때 우리 또래의 '정유라'라는 사람이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전 국가적 자원을 받으며 이화여대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고 해놓았다.

다른 대학생은 부검 시도하는 경찰에 대해 "인간애도 없는 국가공권력의 잔인함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유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시신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창원대 정문 게시판에 붙어 있는 대자보 2개의 전문이다.

창원대학교 정문 게시판에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대학생의 관심을 호소하는 글이 붙어 있다.
 창원대학교 정문 게시판에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대학생의 관심을 호소하는 글이 붙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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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보1> 우리 학교는 왜 조용할까요

우리 학교는 왜 조용할까요. 2015년 11월 14일, 쌀 수입만은 하지 않겠다는 정부에 약속을 지켜 달라며 서울에 올라갔던 농민 백남기씨는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두개골이 박살난 채 317일 동안 사경을 해매시다 올해 9월 25일 사망하셨습니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현장에서, 영상으로 이 사실을 목격하였음에도 담당 주치의는 어떠한 외압이 있었는지 병사로 진단하였고, 실제로 유리, 목판, 철판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는 강고한 물대포를 사람에게 조준 사격하여 죽게 만든 경찰은 이 의혹을 부검을 통해 해소하자며 물대포를 쏜 제 손으로 다시금 시신을 탈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끔찍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왜 우리 대학교는 조용할까. 전 생각했습니다. 대학에 오기 전 저는 대학이 자유롭고 이성적이며 열정적인 공간일 거라 기대했습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가장 앞장서서 이야기 하고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하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동생뻘 혹은 동갑인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바다에서 구출되지 않았을 때도, 우리가 밤샘 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을 때 우리 또래의 '정유라'라는 사람이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전 국가적 자원을 받으며 이화여대에서 특혜를 받고 있을 때에도, 심지어 우리의 학교가 '미래융합단과대학'사업이란 이름으로 '직업전문대학'으로 전락해 가는 와중에도, 우리 학교는 그다지 시끄러워져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리포트 과제에 시험에 스펙 쌓기, 과제 준비하기 바빠서? 행동으로 나서면 누군가에 공격 대상이 될까봐 무서워서? 아니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 같아서? 혹자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우리 학교는 소위 '지잡대'라서 학우들이 그럴 수준이 안된다고. 저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며 만났던 수많은 학우들은 옳지 못한 것에 분노할 줄 알고, 자신이 대학에 온 이유가 단순히 취업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옳은 것은 이야기 하는 데에 올바른 정보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고 해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행동은 우리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틀릴 수도 있고, 그것을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도 우리 대학생만의 특권이라 생각합니다. 이 자보를 쓰는 저도 단어 하나 틀리진 않을까, 누군가의 공격 대상이 되고 안줏거리로 오르내리진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이 글이 학우들의 침묵을 깨고 우리가 대학생이란 자부심을 가지는 대학의 자존심을 지키는 조그마한 계기가 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용기를 냅니다. 

<자보2> 백남기 농민을 애도해 주세요

공권력은 최소한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강화유리가 산산조각이 날 정도의 물대포 앞에, 예순 아홉의 노인이 왜 있어야 했는지 말해주는 언론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왜 거리로 나왔을까요?

박근혜정부의 쌀값 21만원 보장이라는 공약이 무색해질 만큼 쌀값은 폭락해 개사료보다 헐값에 팔리고, 30년 넘게 지켜온 농업은 쌀시장 개방과 함께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식량주권을 지키고자 나서게 되었습니다. 소외된 약자의 목소리를 그의 죽음을 깎아내리려 하나요.

사람이 죽었습니다. 317일 동안 경찰은 침묵했습니다. 어떤 입장 발표 하나 없이 침묵하다 운명을 달리한 그날 서울대병원에 병력을 배치하고 시신을 강제 부검하려 했습니다. 인간애도 없는 국가공권력의 잔인함에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유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시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1996년 3월 29일, 등록금 인상 반대와 김영삼 대통령 대선 자금 공개 촉구대회에서 최루탄과 곤봉에 진압 당하여 사망한 연세대 법대 노수석씨는 경찰의 부검에 의해 심장질환으로 인한 급성심장마비로 사인을 밝혔지만, 추후 소송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었습니다. 경찰이 부검을 하려는 이유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해 면피를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10월 25일이 영장 만기입니다. 강제 부검을 막을 수 있도록 많이 알려주세요.


태그:#백남기, #창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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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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