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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이샘은 가짜다."

시조시인 이은상(1903∼1982, 노산)의 생가에 있었다고 해 '은상이샘'으로 불리고 있는 샘이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김영만 '3·15의거 모독하는 은상이샘철거시민대책위' 공동대표는 10일 오후 창원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갖가지 자료를 들어 '은상이샘은 가짜'라고 역설했다.

창원시의회 민주의정협의회가 '은상이샘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제목으로 '은상이샘 진위논쟁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민주의정협의회는 '진짜'라 주장하는 창원시에도 토론회 참석을 요구했지만 불참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동 소재 도로 옆 작은 공원에는 옛 마산시가 1999년에 만들어 놓은 '은상이샘'이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동 소재 도로 옆 작은 공원에는 옛 마산시가 1999년에 만들어 놓은 '은상이샘'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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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은상이샘'(우물)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동 104번지에 있다. 인근에 있던 우물과 '3.15의거기념비'를 도로 확장공사로 1999년 이곳으로 옮겨 놓았고, 지금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2001년부터 '은상이샘' 철거를 요구했다. 이은상은 3․15의거를 폄훼했던 인물로, '은상이샘'이 3·15의거기념비와 나란히 있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은상 추앙 문인'(이추문)은 그동안 계속해서 "은상이샘은 이은상 생가에 있었던 우물"이라며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창원시는 지난 5월 '은상이샘 철거 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에 은상이샘철거시민대책위가 창원시의회에 토론회를 열어 줄 것을 요청했다. 창원시의회가 토론회를 열지 않기로 하자, 의정협의회가 '공개 토론회'를 연 것이다.

"<지적도> 보면 우물은 이은상 생가에 포함되지 않아"

김영만 대표는 '우물'이 이은상 생가에 포함되지 않았고, 동네 공동우물이라 했다. '지적도', '토지대장'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은상 생가는 일제 강점기 '마산부 상남동 102번지'에 있었다. 지금의 '노산동'은 옛 '상남동'이다.

김영만 대표는 최근 등기소에서 이 번지의 '지적도', '토지대장'을 뗐다. 그런데 이 번지 지적도에는 우물터가 상남동 102번지 382평 대지 안에 있지 않고, 담장 바깥에 있었다는 것.

시조시인 이은상 생가가 있었던 '마산부 상남동 102번지' 일대의 지적도. 빨간색 테두리가 이은상 생가 터이고, 파란색 원안 표시가 '샘'으로, 샘은 이은상 생가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서 공동우물이었던 것이다.
 시조시인 이은상 생가가 있었던 '마산부 상남동 102번지' 일대의 지적도. 빨간색 테두리가 이은상 생가 터이고, 파란색 원안 표시가 '샘'으로, 샘은 이은상 생가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서 공동우물이었던 것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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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창원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은상이샘,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제목의 '은상이샘의 진위논쟁 공개 토론회'에서 김영만 '3.15의거 모독하는 은상이샘철거시민대책위' 김영만 공동대표가 "이은상 생가 지적도에 보면 '샘'(파란색 원안)은 생가(빨간색 테두리)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10일 오후 창원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은상이샘,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제목의 '은상이샘의 진위논쟁 공개 토론회'에서 김영만 '3.15의거 모독하는 은상이샘철거시민대책위' 김영만 공동대표가 "이은상 생가 지적도에 보면 '샘'(파란색 원안)은 생가(빨간색 테두리)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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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는 1910~1918년 사이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토지조사'를 했다. 이은상의 부친 이승규(1860-1922, 장로)는 당시 자신 소유의 토지에 대해, 1912년 실지조사를 통해 확정되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조선총독부 토지조사 과정으로 볼 때 소위 이은상 생가우물이라고 하는 문제의 우물이 상남동 102번지의 경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것은 애초부터 이승규의 소유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며 "법적으로 소유권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토지 관련 자료에서 우물이 이승규의 소유임을 인정할 수 있는 자료나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그는 "우물터는 일제강점기 때나 매립 직전의 지적도상에는 분명 도로이고, 도로에 있는 우물을 공동우물이라 하지 않고 무어라 하겠는가"라 했다.

김 대표는 "이는 이승규뿐만 아니라 그 누구의 개인 소유가 아닌 마을 공동우물이라는 것이 바로 증명이 되었다"며 "주민들이 공동으로 식수로 이용하며 '은새미'라고 불렀던 이 우물을 은상이샘으로 부를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라 했다.

"이은상 부친, 전 재산 기부한 게 아니다"

'은상이샘' 주장은 그동안 <동아일보> 기사(1978년 4월 6일자, "신팔도기")와 문인(김복근, 김교한)들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신문 기사와 문인들의 기고글에 대해, 김 대표는 '셀프자료'라 했다.

'이추문'이 은상이샘이라는 근거로 제시한 "노산의 인간과 문학"(경남신문, 1982년 10월 6일자 이광우 기자의 기사)에 대해 언급했다.

이 기사에 보면 "이 샘은 노산 선생이 태어나시기 전부터 '운상이샘' '은샘'이라고 불리어졌다고 전한다. 또 노산 선생의 함자도 이 우물 이름 은(殷)에서 땄다는 이야기도 있다"라 되어 있다.

10일 오후 창원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은상이샘,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제목의 '은상이샘의 진위논쟁 공개 토론회'에서 김영만 '3.15의거 모독하는 은상이샘철거시민대책위' 김영만 공동대표가 발제하고 있다.
 10일 오후 창원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은상이샘,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제목의 '은상이샘의 진위논쟁 공개 토론회'에서 김영만 '3.15의거 모독하는 은상이샘철거시민대책위' 김영만 공동대표가 발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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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대표는 "당시 '운상이샘' '은샘'이라는 증언을 해준 사람은 의신여중 교장이자 독립유공자인 최봉선 여사로, 이은상과 같은 또래였으며, 우물을 사이에 두고 아래윗집에 살았다"며 "이 증언에서 그 우물은 '운상이샘' 내지 '은샘'이라는 게 증명되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최근 이광우 당시 기자를 만났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최봉선 등의 증언을 통해 이 우물이 노산 생가 우물이 아니며 노산의 출생 이전부터 운상이샘 또는 은샘으로 불려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기사 작성시 중요시 하지 않았을 뿐이라 했다"고 전했다.

'이추문'은 이승규가 말년에 전 재산을 마산시에 기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령 김복근 시조시인은 <경남신문>(2011년 1월 27일자) 기고글에서 "이승규 선생은 1922년 3월 29일, 만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작고 전에 자신의 전 재산을 아무 조건 없이 마산시에 기부했다"고 썼다.

김영만 대표는 "당시는 '마산시'가 아니가 '마산부'였고, 조선총독부 지방관청인 마산부에 자신의 전 재산을 조건 없이 기부했다면 그것은 친일에 해당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런데 일제가 만든 '토지등기부'에 보면 이승규가 재산을 마산부에 기부했다는 기록은 없다.

'토지등기부'에 보면, 이승규 사망 뒤 '상남동 102번지'와 '104번지' 일부 대지 모두 이승규 부인(김영유)한테 상속 등기한 것으로 되어 있고, 그 시기는 1924년(대정 13년)이다.

그리고 1929년(소화 4년) 김영유 소유의 모든 대지는 일본인(井上重, 이노우에 시게)한테 판 것으로 되어 있고, 이 땅은 다시 다른 일본인이 매입했다가 1936년 조선경찰협회 경남도지부 후원회에 증여되었으며, 그해 8월 5일 일본순사 주재소가 들어섰다.

김영만 대표는 "토지등기부만 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며 "그런데 '이승규는 전 재산을 기부했고, 이를 추모해 사회장을 치러주었다'고 하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이 주장은 이은상 부자를 미화하고 우상화하는 데 정신이 매몰되어 자신들의 주장이 어떤 역효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생각해볼 여유조차 가지지 못한 '이추문'들이 만들어낸 한 편의 코미디 작품"이라 했다.

마산에서 이은상 우상화 언제부터

이은상 우상화 과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은상은 1972년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적극 지지했고, 1975년 '반공청년회' '재향군인회' 등 98개 관변단체를 총결집한 '총력안보국민협의회'의 서울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77년에는 전국중앙회 의장직무대행을 맡았다.

이 단체에 대해, 김 대표는 "박정희가 월남패망을 빌미로 안보 불안을 최고로 고조시켜 비상시국임을 강조하고 반유신세력인 야당과 학생, 노동자, 재야인사들을 탄압하고, 저항의지를 꺾는데 이용된 공식적인 관변단체였다"고 했다.

그는 "이은상을 추종하고 추앙하는 문인들이 마산에서 조직화되고 이은상을 체계적으로 우상화하기 시작한 것은 1977년 1월 사단법인 민족문화협의회 마산지회가 결성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단체는 이은상이 마산에 내려와 지역 후배문인들과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권유하여 생긴 사실상 이은상의 단체였다"고 했다.

민족문화협의회 마산지회는 이은상이 사망한 뒤인 1982년 합포문화동인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0년 나온 <조선지리지>에 '운생이내' 기록

10일 오후 창원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은상이샘,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제목의 '은상이샘의 진위논쟁 공개 토론회'에서, 박영주 경남대 박물관 비상임연구원이 "1910년 조선총독부가 발생한 <조선지리지, 경남 마산편>에서 우물 바로 옆에 흐르는 하천을 '운상천'이라 하고, 당시 사람들이 '운생이내'라 부른다는 기록을 해놓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10일 오후 창원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은상이샘,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제목의 '은상이샘의 진위논쟁 공개 토론회'에서, 박영주 경남대 박물관 비상임연구원이 "1910년 조선총독부가 발생한 <조선지리지, 경남 마산편>에서 우물 바로 옆에 흐르는 하천을 '운상천'이라 하고, 당시 사람들이 '운생이내'라 부른다는 기록을 해놓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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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이샘은 가짜라는 또 다른 증거도 있다. 1982년 10월 6일자 <경남신문> 기사에 언급되었던 '운상이샘'과 관련 있다. 1910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지리지 경남 마산편>이란 자료다.

이날 토론회에서 박영주 경남대 박물관 비상임연구원은 "이 자료는 조선총독부가 1909년에 조사하고, 이듬해에 발행한 것"이라며 "당시 지역의 이름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자료에 보면 '운상천' '운상이내'이라 적혀 있다. 이 우물 바로 옆에 흐르는 하천(교방천)을 사람들은 '운상천'이라 불렀고, 당시 사람들은 '운생이내'라 불렀던 것이다.

김영만 대표와 박영주 연구원은 "당시 일제가 통치 목적으로 산과 하천 이름을 기록했다"며 "우물 이름이 '운상이새미→운생이새미→은새미'라는 변화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고, 이는 최봉선 여사의 입을 통해서도 입증된다"고 했다.

"친일, 친독재 인물 내세워 문화예술도시 하나"

김영만 대표는 창원시의 정책을 비판했다. 안상수 창원시장은 '창원문화예술특별시'를 내세우고 있다. 창원시는 최근 도시재생사업을 벌이면서 마산합포구 노산동 일대에 11억 7000만원을 들여 '가고파 테마골목' 사업을 벌였다.

김영만 대표는 "가고파 테마골목 조성사업은 사실상 이은상을 기념하는 사업"이라 했다. 또 그는 "창원시는 친일인 이원수와 조두남, 친독재인 이은상을 내세워 문화예술도시 정책을 하려는 것이냐"고 말했다.

그는 "창원시가 낸 보도자료를 통해 내놓은 은상이샘 철거 불가 이유들은 '이추문'들의 주장과 한 자, 한 획도 틀리지 않는 그대로다"며 "그에 비해 철거를 주장하는 측의 의견은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는 창원시 시장과 공무원들의 편파적이고 비상식적인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는 송순호 의원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박재혁 6월항쟁정신계승경남사업회 공동대표도 토론했다. 또 김하용 의장과 김종대 부의장, 김장하·주철우·공창섭·한은정·김석규·정영주·김태웅·강영희·김삼모 의원 등이 지켜보기도 했다.

창원시의회 민주의정협의회는 10일 오후 대회의실에서 "은상이샘,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제목의 '은상이샘의 진위논쟁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창원시의회 민주의정협의회는 10일 오후 대회의실에서 "은상이샘,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제목의 '은상이샘의 진위논쟁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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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은상, #친독재, #은상이샘,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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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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